매일신문

[그립습니다] 장정숙씨 부친 故 장남중 씨

1987년 11월 30일 제주도 천지연폭포 앞에서 찍은 아버지 장남중(왼쪽) 씨의 회갑 여행 기념 사진. 가족제공.
1987년 11월 30일 제주도 천지연폭포 앞에서 찍은 아버지 장남중(왼쪽) 씨의 회갑 여행 기념 사진. 가족제공.

'어메이징 그레이스!'

시골 들녘에 국민학교 운동회가 열렸다.
운동회임을 알리는 경쾌한 리듬의 노랫소리는 앰프를 통해 사방 10리 넘게 울려 퍼진다.
시골 운동회는 만국기가 펄럭이고, 인산인해를 이루며 지역축제이기도 했다.
운동장 달리기 라인을 벗어나, 만물상 노점은 없는 것 없이 다 차려지는 시골 오일장 수준!
그중에 우리 아버지도 한자리를 내셨으니, 우린 감, 먹시감을 파셨다. 운동회 며칠 전부터, 우리 방 구들장 아랫목에는 엄청나게 큰 항아리가 들여놓고, 먹시감, 땡감을 사다가 따뜻한 물과 뭔가를 넣고 구들장을 따뜻하게 불을 지피고, 이불로 몇 겹을 덮어주고 며칠간 감을 우려 냈다. 그리고 운동회날 꺼내서 팔러 나오셨다. 잘 우린 먹시감은 지금까지 먹어본 감 중에 제일 달고 연한 감이라고 기억한다. 그래서 감 장사 딸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아버지는 계기가 되어 인천에서 직장을 가지셨고, 몇 년 후 군산으로 전근되어 근무하시면서 우리 가족은 군산으로 이사하게 되었다. 엄마가 하시던 시내버스 터미널 앞에 조그만 구멍가게에서 아버지가 조기퇴직을 하시고 엄마와 같이하셨다. 하지만 시내버스 터미널이 옮겨가면서 가게를 접고, 얼음 장사를 하셨고, 피서철이 지나면 아버지는 센베과자를 파셨다.

아버지의 그 모습이 창피해서, '이제 좀 쉬세요' 하면, 아버지는 '야~ 얼음 장사가 힘들지만, 갑절을 남겨서 재미있다. 샌베과자는 집에 있는 것 심심하니 괜찮다고 하시면서, 아버지 나름의 일 규칙을 가지고 계셨다. 여름 피서철이 지나 얼음 장사가 끝나면 아버지는 훌훌 털고, 아버지 형제분들을 찾아서 기차 여행을 떠나신다. 큰아버지, 작은아버지, 특히 인천에 사시는 하나밖에 없는 누이동생에게 극진한 대접을 받고 오셔서는 다음 일을 열심히 하시는 분이셨다.

늘 6남매 중 맏딸인 내게 항상 하신 말씀은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라고 하셨다. 동생들한테 본이 되어 보이시라고 하셨던 아버지! 맏딸인 나에게 관심을 보이시면서 학년 올라가면 담임선생님께 찾아와 나의 학습 태도를 묻고 부탁하는 과잉보호에 부끄러워했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아버지 천국 가시고 나니, 나에 대한 진정한 관심과 사랑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근면 성실하게 사셨던 분인데, 아버지께 불치의 피할 수 없는 병이 찾아왔다. 6개월의 시한부 인생을 의사는 고지했다. 우리 가족은 너무 청천벽력이라서 우리 6남매는 목을 놓아 울었다.

1987년 11월 28 아버지 장남중(앞줄왼쪽 세번째) 씨 회갑연 기념사진.
1987년 11월 28 아버지 장남중(앞줄왼쪽 세번째) 씨 회갑연 기념사진.

아버지 곁에 엄마는 헌신적으로 병 간호를 해주셨다. 병원도 멀리 있어서 자주 갈 수 없는 상황. 건강이 좀 호전되어 퇴원하시고 집으로 오셔서 새벽 예배드릴 것을 부탁하셨다. 내가 교회에서 새벽예배 마치고, 아버지께 가면, 항상 녹음기에서 '어메이징 그레이스' 가 흘러나온다. 어메이징 그레이스는 서울에 사는 막내딸이 평소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방송국에 신청하여 녹음해서 선물한 테이프다.

아버지는 당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아시면서도, 외손자에게 군대 면회를 하러 같이 가셔서 6.25 참전 당시 군대 상황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해 주시면서, 세대를 초월한 공감대가 이루어졌다. 단 한 번도 아버지는 죽음에 대해서 가족들에게 언급하지 않으셨다. 천국 소망을 가지셨던 분이다. 아버지 소천하시기 전날, 엄마한테 '나봐, 이 방에 예쁜 꽃들이 가득 피었네! 무슨 꽃들이 이렇게 예쁜가?' 하시기에 엄마는 '무슨 꽃들이 있다고 해요' 하셨던 것은 아버지에게 천국이 열림을 보이셨던 것인데. 몰랐다며 후회하셨다.

다음 날, 점심까지 잘하셨는데, 상태가 갑자기 안 좋아지시면서, 병원에서 준비하라는 전갈이 있었다는 엄마의 전화를 받고 우리는 준비하고 황급히 달려갔었다. 고속도로에 웬 장대비는 그렇게 쏟아지는지? 가는 길이 지체되면서, 우리 차가 먼저 도착해서 들어갔더니, 엄마는 반가워하시며, 큰딸 왔다며 이름을 대자, 아버지의 심장 모니터는 평형 밑줄을 그으면서, 간호사가 달려오고 운명하셨다고 했다. 자녀들을 기다리신 것이다.
가족들의 간절한 기도와 엄마의 헌신적인 병간호로 아버지는 3년을 더 사신 것이었다.

'너는 언제나 윗물이여, 네가 맑아야 동생들이 본을 받어'라고 하셨던 아버지! 아버지 덕분에 청렴하게 공직생활 잘 마치고 은퇴했습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을 즐겨 부르시는 아버지를 회상하며, 우리는 아버지 추도식 때마다 항상 불러드립니다. '어메이징 그레이스'!
아버지! 그립습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매일신문이 유명을 달리하신 지역 사회의 가족들을 위한 추모관 [그립습니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가족들의 귀중한 사연을 전하실 분들은 아래 링크를 통해 신청서를 작성하시거나 연락처로 담당 기자에게 연락주시면 됩니다.

▷추모관 연재물 페이지 : http://naver.me/5Hvc7n3P

▷이메일: tong@imaeil.com

▷사연 신청 주소: http://a.imaeil.com/ev3/Thememory/longletter.html

▷전화: 053-251-1580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