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문명사를 웅변하는 유물의 보고 루브르로 가 보자.
1793년 문을 열었으니 230년 가까운 역사를 자랑한다. 루브르는 원래 12세기 군사 요새였고, 1546년 프랑수아 1세 때 왕이 거주하는 궁전으로 개조됐다. 이어 1682년 태양왕 루이 14세 때 파리 북서쪽에 베르사이유를 완성해 옮기면서 왕실 전시관으로 사용하다 프랑스 대혁명 기간에 정식 박물관으로 개장했다.
3개의 건물로 구성된 루브르에서 가장 오래된 중앙 전면의 설리관 2층에 5만여 점의 이집트 유물을 전시 중이다. 그중 람세스 3세(재위 B.C 1182~B.C 1151년, 널리 알려진 람세스 2세와 다른 인물) 조각을 보자.
사자 갈기 형상의 네메스관을 쓰고, 헤카(양치기용 갈고리 지팡이)와 네카카(밀 타작용 도리깨)를 양손으로 교차해 들고 있는 전형적인 파라오 차림새다. 람세스 3세 조각은 비록 작지만, 그의 석관은 보는 이를 압도할 만큼 크다. 이시스, 네프티스 두 여신의 가호를 받는 디자인의 붉은색 화강암 석관의 무게는 18톤이나 된다.

람세스 3세가 남긴 업적은 B.C 13세기 동지중해 연안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떠돌이 해양민족(Sea Peoples)의 침략으로부터 이집트를 구한 점이다. 그리스 미케네 문명과 터키 땅 히타이트라는 철기 강국을 무너트린 해양민족의 침략을 재위 8년 차에 물리친 람세스 3세가 반역 음모 사건에 휘말렸다. 여러 명의 왕비에게서 많은 아들을 뒀는데, 그만큼 제위 계승 문제가 복잡했을 것이다. 축구 스타 호나우두가 활약했던 유벤투스의 연고지 이탈리아 토리노에 있는 이집트 박물관의 '하렘 음모 파피루스'에 해당 사건이 자세히 적혀 있다.
람세스 3세는 재판관 14명으로 재판부를 꾸리도록 했다. 체포된 혐의자 40여 명 가운데 1차로 28명이 사형, 2차로 6명이 자살형, 3차로 4명이 자살형을 선고받았다. 이어 4번째 재판이 열렸는데, 재판정에 선 5명은 역모 혐의자들이 아니라 정반대, 3명의 재판관과 2명의 고위공직자였다.
역모 혐의자 재판 과정에서 뇌물과 접대를 받은 재판부 수뢰 혐의다. 결국 1명의 재판관을 제외한 나머지 4명은 혐의가 인정돼 귀와 코가 잘렸다. 요즘도 근절되지 않는 법조 비리의 가장 오래된 사례다. 물론 이보다 600여 년 앞서 B.C 18세기 만들어진 함무라비 법전에 비리 재판관을 판사석에서 내쫓는 규정이 있는 것을 보면 고대부터 뇌물 재판이 문제가 됐음을 알 수 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9월 14일 자신이 설계했다고 밝힌 성남시 대장동 '화천대유' 의혹이 국민의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 1조 원 가까운 폭리나 대리급 사원의 50억 원 퇴직금을 넘어 눈에 띄는 대목은 권순일 전 대법관이 퇴임 직후 변호사 활동을 할 수 없음에도 '화천대유' 경영고문이라는 미명 아래 월 1천500만 원씩 받은 점이다.
심지어 임직원으로 등록해 월급까지 받았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그는 퇴임 직전 이 도지사의 선거법 위반 대법원 판결 때 이 도지사의 무죄 의견을 주도하며 대법관들 표가 5대 5로 팽팽할 때 무죄 표를 던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2심까지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은 이 도지사에게 무죄 선물과 함께 오늘의 유력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로 올라설 수 있도록 판을 깔아준 장본인이다.
그는 현재 사후 수뢰 혐의로 검찰에 고발된 상태이며, 평론가 진중권이 '부패완판 대장민국'으로 규정한 대장동 사건이 터지자 고문료 1억5천만 원을 재빨리 사회단체에 기부하는 순발력을 보였다. 권력과 법조인, 뇌물이라는 지긋지긋한 수천 년 인류 역사 부패의 고리를 지혜로운 국민의 손으로 끊어낼 시점이 눈앞에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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