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이후 10년 만에 대구에서 프로농구 경기가 열린다. 대구를 연고지로 채택한 한국가스공사가 10일 오후 6시 대구 북구 산격동 대구체육관에서 안양 KGC인삼공사를 상대로 2021-2022 시즌 첫 홈경기를 치른다. 앞서 9일 한국가스공사는 울산에서 열린 현대모비스와의 창단 첫 경기에서 94대83으로 승리하며 힘찬 출발을 했다.
기자는 1997년 프로농구 출범과 함께 대구에 둥지를 튼 동양 오리온스(현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가 2011년 경기도 고양시로 '야반도주'한 후 국내 프로농구와 완전히 담을 쌓았다. TV 중계뿐만 아니라 스포츠뉴스에 농구가 나오면 채널을 돌렸다.
2011년 6월 14일 이른 아침 오리온스의 특별한 이사 소식을 대구체육관을 경비하는 청원경찰의 전화로 알게 됐고, 이후 취재를 통해 오리온스 구단과 한국농구연맹(KBL)의 부도덕함을 파악했기 때문이다. 오리온스는 도망가기 전 대구시의 몇 차례 확인에도 끝까지 연고지 이전을 부인했고, KBL은 뚜렷한 명분 없는 고양시로의 연고지 이전을 승인했다. 세계 프로 스포츠 역사상 최악인 32연패(1998-1999 시즌)를 당할 때도 응원을 아끼지 않은 대구 농구 팬들을 버린 것은 오리온스와 KBL의 가장 큰 잘못이다.
대구에는 미국프로농구(NBA) 중계를 꾸준히 지켜보고 생활체육으로 농구를 즐기는 농구팬들이 상당수 있다. 이들 중 일부는 오리온스를 대체할 대구 연고 프로농구단의 출범을 기대하며 이를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인천을 연고지로 한 전자랜드 엘리펀츠 농구단이 2020-2021 시즌을 끝으로 해체한다는 소식은 대구 농구팬들에게 좋은 기회가 됐다.
한국가스공사가 지난 6월 2일 전자랜드 농구단을 인수한 것은 엘리트 선수 출신인 대구 원로 농구인 2명의 숨은 노력 덕분이었다. 농구 명문인 대구 계성고를 나온 대구농구협회 김동규 회장과 대구 효성여고 양효석 전 농구부 감독이다.
애초 한국가스공사와 대구시는 프로농구단 창단과 유치에 관심이 없었고 지역 여론도 싸늘했다. 하지만 김 회장과 양 전 감독은 집요하게 문을 두드렸다.
영남대 체육학과 교수를 역임한 김 회장은 은퇴 후 엘리트와 생활체육이 통합한 대구농구협회장으로 추대받았고, 대학 재직 때부터 언론 기고를 통해 겨울 프로 스포츠가 없는 대구의 현실을 지적하고 농구단 창단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 회장은 대구 프로농구단 유치를 위한 모임을 만들어 활동했으며 지역 정치인과 언론인 등을 찾아다니며 프로농구단 유치를 역설했다.
양 전 감독은 한국가스공사 농구단 창단의 가교역할을 톡톡히 했다. 전자랜드와 한국가스공사의 사령탑을 맡은 유도훈 감독, 신선우 전 한국여자농구연맹 총재 등과의 친분을 바탕으로 양 전 감독은 전자랜드의 해체 움직임을 파악하고 대구시를 통해 한국가스공사의 전자랜드 인수를 요청했다. 지역 국회의원 등 정치인들까지 힘을 보태면서 대구 연고 프로농구단은 다시 빛을 보게 됐다.

'페가수스'로 별칭을 단 한국가스공사의 대구 안착은 '야반도주'한 오리온스의 어두운 그림자 지우기에 달려 있다. 앞으로 한국가스공사는 경영진을 비롯한 구단 프런트, 코칭스태프를 포함한 선수단이 농구 팬 등 대구시민들에게 프로농구 운영의 가치와 진정성을 보여야 할 것이다.
유도훈 감독의 어깨가 가장 무겁다. 유 감독 등 약 20명으로 짜인 선수단은 공기업인 한국가스공사와 연고지 대구에 뿌리내리려는 강한 의지를 지니고 있다. 농구단 인수 확정 후 선수단은 곧바로 대구로 내려와 집을 구하고 집 가까운 곳의 훈련 장소를 찾았다. 주장 차바위는 대구시민들과 가까이하겠다며 맛집 탐방에 나섰다.
유 감독은 "언제 어디서나 팬과 함께하겠다. 시간이 허용하는 대로 재능기부 등 자원봉사활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겠다. 대구 연고 프로 스포츠인 대구FC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장을 찾아 응원도 할 계획"이라고 의욕을 보였다.
이를 위해 유 감독은 대구에서 환영받고 싶다는 바람을 표시했다. 그는 "지난 시즌까지 인천 전자랜드에서 유지한 경기력을 바탕으로 모 기업과 대구의 정서를 반영하는 팀 색깔을 만들겠다. 인천에서 우리 선수들은 투지 넘치는 플레이를 통해 열정적이고 감동을 주는 경기력을 선보였다. 덕분에 우리는 10개 구단 중 3위 내의 관중 동원력을 과시했다"면서 "대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투혼을 불사르는 경기력으로 팬들에게 감동을 줄 자신이 있다. 우리에겐 이제 대구시민들의 사랑이 필요하다"고 했다.
모 기업과 대구 팬들이 처음부터 선수단 의지에 화답한다면 페가수스의 앞날은 밝을 것이다. 국내 풍토상 성적이 뒷받침하지 않으면 자리 잡기가 쉽지 않은 만큼 이를 위한 투자가 필요하다. 성적을 위한 투자는 오롯이 한국가스공사 몫이다.
한국가스공사는 또 연고지 협약 과정에서 문제가 된 전용구장에 대한 비전을 분명히 제시해야 한다. 대구시는 삼성 라이온즈와 대구FC 전용구장 문제로 홍역을 치른 경험이 있기에 이를 대충 넘기지 않을 태세다. 삼성 라이온즈와 대구FC는 전용구장을 기반 삼아 자생력을 부쩍 키우고 있다. 한국가스공사도 하루빨리 전용구장을 마련해 명군구단으로 발돋움하는 자체 운영 기반을 닦아야 한다. 대기업이나 공기업이 주인인 국내 프로구단이 시민(팬)을 볼모 삼아 지방자치단체에 인프라를 요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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