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처럼 논쟁적인 대통령은 없었다. 최근 미국 역사학자들 대상의 역대 대통령 리더십 평가에서 그는 끝에서 네 번째의 부정적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그를 단지 아버지 덕에 부를 쌓고 리얼리티 쇼로 명성을 얻은 후 대중의 심리에 영합해 대통령에 오른 사람으로 치부하면 미국 정치의 중요한 단면을 놓치게 된다.
트럼프는 미국의 어느 엘리트보다 더 똑똑했다. 트럼프는 2016년 대선에서 유색인종이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백인 블루칼라의 공포심을 간파,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구호를 내걸고 '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하여 주요 경합 주에서 모두 승리했다. 그는 배짱도 좋았다. 그해 대선 막바지에 트럼프의 음담패설이 담긴 녹음 파일이 공개되자, 공화당 핵심 인사들이 모두 멀리 도망가는 상황에서 그는 흔들리지 않고 그들을 향해 "나는 반드시 승리한다. 만약에 내가 지더라도 혼자 무너지지 않는다. 공화당과 함께 몰락할 것이다"고 엄포를 놓았고, 결국 승리했다.
트럼프는 재임 내내 인종주의적 언행으로 전국적 시위 격화 등 문제가 많았지만 공적도 적지 않다. 그는 미국이 힘으로 세계질서를 유지해야 한다는 책무에 의문을 품고 군의 반대를 무릅쓰고 아프간전 종전의 길을 열었으며, 재임 중 전쟁을 새로 시작하지 않았다.
그리고 코비드19 사태에 직면해 '초고속 작전'(warp speed operation)을 통해 작년 10월까지 약 180억 달러를 제약회사 등에 지원하고 FDA 승인 절차를 신속히 진행하는 등 민관 협력 체계를 만들어 1년 이내에 백신을 제조하는 쾌거를 이뤘다. 또한 중국의 지식재산권 침해 및 철강, 태양광산업 등의 정부 보조금 지급 부당성을 제기하고 대결을 불사함으로써 무역 불균형 해소를 위한 논의의 틀을 바꿨다.
재선에 실패한 그가 조용히 물러났다면 그런대로 평가를 받았을 수도 있었지만, 트럼프는 작년 대선 결과에 끝내 승복하지 않았다. 올해 1월 6일 백악관 앞에 모인 지지자들은 그의 연설을 들은 후 의회 의사당으로 난입했다. 트럼프는 사상 최초로 재임 중 두 번째로 탄핵 위기에 직면했으며, 트위터 등 SNS 계정이 폐쇄되는 굴욕을 당했다. 대신에 그는 미국의 어느 전직 대통령보다 강력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달 CNN 여론조사에 의하면 공화당원 59%가 트럼프가 작년 대선에서 승리했다고 믿는 것이 공화당원의 정체성과 관련이 있다고 답변했다.
이처럼 트럼프는 보수층의 뜨거운 지지를 바탕으로 케빈 매카시 등 공화당 지도부가 자주 플로리다로 찾아올 정도로 당을 장악하고 있다. 트럼프는 자신에 대한 탄핵 소추안에 찬성했던 딕 체니 전 부통령의 딸 리즈 체니 등 10명의 공화당 의원들에 대해 보복을 공언했다. 공화당 주변에서는 다음 선거의 당내 경선을 위해서는 트럼프의 지지를 얻거나, 적어도 그가 다른 후보를 지지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이런 현상은 대중심리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구호와는 달리 그는 군사력을 제외하고는 미국을 진정으로 위대하게 만들 생각이 없었다. 공화당원들은 미국이 인류 보편적 가치와 세계평화를 증진해야 한다는 대의보다는 국제 관계에서는 국익을, 국내 관계에서는 주류층의 이익을 중시하는 트럼프의 현실적 접근을 지지하는 것이다.
지난 6월 맨해튼지방검찰청은 트럼프의 재무 책임자를 탈세 등 혐의로 기소했다. 검찰이 트럼프를 기소할지 예측하기 어렵지만 아마 쉽지 않을 것이다. 필자는 2009년 주미 한국대사관에 근무할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와 관련해 미국의 전직 대통령 기소 사례를 찾아보았는데 그런 예가 없었고, 미국인들은 전직 대통령 처벌에 대해서 매우 신중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전직 대통령이나 그 자녀들이 구속되는 것이 관례처럼 되었고 현재도 2명의 전 대통령이 수감 중이다. 그 나름의 사정이야 있더라도 대통령 퇴임 후 처벌이 반복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는 언제 이 악순환에서 벗어날까.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이재명, 민주당 충청 경선서 88.15%로 압승…김동연 2위
전광훈 "대선 출마하겠다"…서울 도심 곳곳은 '윤 어게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