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제칼럼] 쓸모없음의 쓸모 있음

이재일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장

이재일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장
이재일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장

옛말에 하로동선(夏爐冬扇)이라는 말이 있다. 여름의 화로와 겨울의 부채라는 의미로, 제철을 만나지 못한 아무 쓸모없는 존재를 뜻한다. 하지만 무더운 여름일지라도 화로는 장마철 젖은 옷을 말릴 수 있고, 부채는 겨울에 화로의 불씨를 살리는 것에 쓰일 수도 있다. 무용지용(無用之用)이라는 장자의 말처럼, 언뜻 보아 쓸모없는 것으로 생각되는 것이 도리어 큰 쓰임이 될 수도 있는 법이다. 강력 접착제를 개발하던 중 실수로 만들어낸 약하고 끈적임 없는 접착제가 포스트잇으로 거듭난 것처럼 쓸모없는 것에서 쓸모 있음을 찾는 것, 의외의 혁신들은 그렇게 시작된다.

브랜드 제국으로 일컬어지는 다국적 기업 P&G는 과거 전통적인 비누 제조사였다. 그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제품인 아이보리 비누의 탄생은 세간에 알려져 있듯 우연의 소산이었다. 제조 과정에서 실수로 열을 지나치게 가하는 바람에 밀도 높은 공기층이 생겨 물에 뜨는 비누가 탄생한 것이다. 주로 강가에서 목욕했던 당시에 기존의 무거운 비누는 잃어버리는 일이 많았기에 물에 뜨는 비누는 많은 사람에게 환호를 받았다. 이후 아이보리 비누는 물에 뜨는 비누와의 동의어로 여겨질 정도로 소비자의 뇌리에 각인되었다. 오늘날 생활 소비재 부문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며 수많은 브랜드를 거느리고 있는 P&G의 초석을 그때 그 실패가 마련한 것이다.

이처럼 모든 실패는 도전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정해 놓은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목표에 도전하는 과정에서 더 나은 해답을 찾을 수도 있고, 실패한 도전에서 의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실패 속에 잠재된 숨은 성공 요인을 찾고, 그 안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려는 노력이다.

삼성전자 사내 벤처 프로그램인 C랩에서도 쓸모없음의 쓸모 있음이 검증된 바 있다. 스마트 헬멧 '어헤드'(Ahead)를 개발한 기업 '아날로그플러스'가 그 사례이다. '어헤드'는 우연히 만난 김동성 전 스키선수와의 대화에서 초기 아이디어를 얻었다. 스키를 탈 때는 헬멧을 쓰게 되는데, 헬멧을 쓰고 두 손이 자유롭지 않은 상태에서는 전화 통화가 어렵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어헤드'는 헬멧을 쓴 채 전화 통화를 할 수 있는 스마트 헬멧을 개발했지만, 단가 측면에서 문제에 부딪혔다. 얼마나 많은 사용자가 몇십만 원에 달하는 비용을 헬멧을 위해 지불할 것인가? 어헤드 첫 모델은 아쉽게도 실패였다.

하지만 '아날로그플러스'는 이를 실패로 간주해 내버리지 않고, 끊임없이 그 쓸모를 찾으려 노력했다. 기존 개발한 스마트 헬멧에서, '두 손을 쓰지 않고' '헬멧을 쓴 채로 통화'하는 가장 간단하고 기본적인 개념에만 다시 집중했다. 그들은 간단한 기능의 소형 기기로 기술을 다시 구현하고자 했고, 결국 어떤 종류의 헬멧이든 외부에 간단히 부착하기만 하면 되는 저가의 소형 기기를 개발해냈다. 첫 실패를 딛고 소위 대세 분야의 아이템으로 자리 잡고 있는 '어헤드'는 현재는 스키 헬멧뿐 아니라 라이더들에게 안전을 선사하는 딜리버리 분야로 확장하며 성장 가능성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고 했다. 겉으로 볼 때 쓸모없어 보이는 덕에 미처 베이지 않은 못생긴 나무들이 남아 결국 산을 지키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앞서 소개한 포스트잇, 아이보리와 같이 마치 쓸모없어 보이는 것도 누군가에게는, 혹은 어느 상황에서는 유용한 가치를 제공하는 것처럼 아무도 관심 없거나 쓸모없다고 여기는 것으로부터 유용하고 혁신적인 가치가 탄생할 수 있다.

이처럼 쓸모없음이라는 것은 사람의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된 성급한 개념일 수 있다. 같은 가치를 누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그 쓸모와 유용함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고 쓸모없는 것이라 여겼다면 우리의 일상에 포스트잇과 아이보리, 그리고 어헤드는 있을 수 없다. 확연한 실패로 보일지라도 자세히 보면 성공이 되는 요인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실패를 실패로 묻지 않고, 숨은 가치를 찾아낼 의지와 열정, 도전만이 우연의 소산이 되어 세상을 변화시키고 앞으로의 미래를 이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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