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유행이 지나간 드라마를 뒤늦게 봤다. '나의 아저씨'라는 드라마는 꼭 봐야 한다는 추천을 여러 번 듣게 된 것이 계기였다. 내용은 흔한 사랑 이야기가 아닌 진정한 어른의 의미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인물들이 내뱉는 대사들은 나를 수차례 감동으로 몰고 갔다.
감동의 여운이 아직 남아 있던 중에 '어른이 읽는 동화'를 읽었다. 제목을 봤을 때 동화책이라고 여겼는데, 동시인으로 널리 알려진 이수경 작가의 삶이 담긴 동화같은 에세이였다. 짧은 에세이를 한 편씩 읽어나갈 때마다 그녀의 인간미 넘치고 정의로운 마음이 느껴지면서 '나의 아저씨'에서 주인공이었던 동훈의 모습이 겹쳐졌다.
요즘처럼 바쁘고 삭막한 세상에서 만나기 힘든 진정한 어른을 책을 통해 다시 만난 기분이었다. 새벽마다 책을 아껴가며 읽으면서 여러 번 눈물을 흘렸다. 감동과 반성이 뒤섞인 눈물이었다.
"다음에 만나면 불러 세운 뒤 담배를 끊었나, 안 끊었나, 후우 불어보라고 해야지. 고난은 누구에게나 찾아든다는 걸, 동시에 기회도 함께 온다는 걸 말해주면서 말이다."(77쪽)
그녀는 절대 건드려서도 안 된다는 담배 피는 낯선 중학생에도 한치의 망설임 없이 쓴소리를 건넨다. 쓴소리지만 진심이 듬뿍 담긴 마음이 통했는지 그녀 앞에서 꼬리를 내린다.
"그날부터 종현이는 못 이기는 척 우리 집으로 오게 됐다. 함께 밥을 먹고, 책을 꺼내 읽고, 글을 쓰다가 저녁 거미가 내리면 할아버지 트럭을 타고 돌아갔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행운을 빚는 장인이라고 했던가. 나도 종현이도 우리 서로에게 행운이 된 셈이었다."(198쪽)
낯선 아이를 선뜻 집으로 데려와 식구처럼 함께 밥을 먹고 독서를 하며 글쓰기까지 가르친다. 그녀의 오지랖에 가까운 넓은 마음이 종현이에게는 꿈의 터전이 되어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6개월쯤 지났을 때 내 휴대전화로 '고맙습니다. 세상에 진짜 이런 분이 있을 줄 몰랐습니다. 열심히 살겠습니다'는 문자 메시지가 온 것이다. 결핍은 고마워할 것이 많아지게 한다. 나 역시 결핍 속에서 자랐기에 나는 오히려 연우에게 고마웠다."(213쪽)
책의 서두에서 저자는 자신의 어린 시절 결핍을 고백했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받은 보상금을 큰 외삼촌이 가져가서 돌려주지 않았다고 했다. 그 후, 어머니는 병을 앓으면서도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네 자매는 축축한 지하방에서 바퀴벌레가 얼굴에 날아드는 끔찍한 상황을 겪으며 살았다고 한다.
저자는 그때의 힘듦을 불평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견디고 살아내며 심지어 이겨냈다. 또한 독서와 글쓰기, 문학 활동으로 스스로를 치유해 나갔다는 생각이 든다.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그녀의 내면에 잠재돼 있던 사람을 향한 따스한 마음 덕분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비슷한 아픔을 지닌 사람들을 절대 지나치지 않고 손을 내민다. 그녀의 진심을 본 사람들은 그녀를 통해서 다시 희망을 찾는다. 코로나19로 점점 더 팍팍해지는 인간관계에 놓인 많은 사람이 진정한 어른이 되고 싶다면 꼭 읽어야 할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수진 학이사독서아카데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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