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의심하기 위한 노력

김지영 극단 만신 대표

김지영 극단 만신 대표
김지영 극단 만신 대표

성경에 이런 일화가 있다. 부활한 예수가 자신의 제자들을 찾아갔다. '도마'라는 의심 많은 제자는 그가 자기 눈앞에서 죽었던 스승이 정말 맞는지 의심이 되었다. 그래서 그의 몸에 못자국, 창자국이 있는지 보여달라 청했고, 그 자국들을 확인한 뒤에야 마침내 의심을 거둬들였다. 그러자 예수는 말했다고 한다.

"너는 보는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 되도다."

하지만 '믿었던' 나는 연극사를 공부하며 심한 배신감을 느꼈던 순간이 있었다. 예전에 장면의 연결구성을 실습해보는 한 수업에 참여했을 때의 일이다. 갑자기 나에게 질문이 떨어졌다. 그때 상황을 희곡 형태로 기록해보면 이렇다.

선생 : 삼일치 법칙을 가지고 설명하자면 지금 이 구성에서는 뭐가 일치하고 뭐는 일치가 안 된거죠?

지영 : …예?

선생 : (사이) 삼일치 법칙 몰라요?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주장했잖아요. (註=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Poetica·詩學)이라는 저서에서 자신의 예술론을 정리하고 문학의 다양한 형태, 그중에서도 특히 비극을 자세히 분석했다.)

지영 : (침묵)

선생 : … (한숨을 내쉬고) 연극은 시간, 장소, 행동을 반드시 일치시켜야 한다고 했죠. 여러분, 시학은 굉장히 중요한 책이에요. 당연히 읽었어야죠. 더군다나 지영 씨는 연출 지망이잖아요.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한 삼일치가 뭔지 정도는 기본적으로 알고 있어야겠죠.

당시 느꼈던 수치심을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였을까. 그 뒤로도 시학을 읽지는 않으면서, 그가 주장했다는 삼일치 법칙만은 혹시나 잊을까 열심히 외웠다. 하지만 몇 년 뒤 책에서 관련 내용을 확인했을 때, 아… 그때 느꼈던 그간 내 믿음에 대한 배신감과 후회란…….

본래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연극은 삼일치 법칙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 아니라 당시 연극의 특징을 분석한 결과를 적어놓은 것이며, 셋 중 행동의 일치 정도만 강조했을 뿐이란다. 삼일치를 지켜야할 규범의 위치에 올려놓은 것은 거의 1천500년 뒤 후대 학자들의 솜씨라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실문제와 가치문제를 혼동했던 게 틀림없다고 (당시 연극에 나타났던 특성들을 연극이 지녀야 하는 본질, 규범으로 오해했던 거라고) 멋대로 오해까지 했던 나였다.

나는 왜 의심해보지 않았을까. 왜 멋대로 오해해버렸을까. 오해받고 싶어하는 사람이 세상에 그 누가 있겠는가. 흙 속에 묻혀있을 고대의 철학자에게 참으로 미안해지는 순간이었다.

삶에서도 이것과 비슷한 순간은 꽤 많은 것 같다. 누군가의 주장을 무작정 믿어버리는 순간 한편에서는 수많은 오해가 생겨날 수 있다. 그렇기에 나는 늘 '의심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되었다. 의심하기 위한 노력은 무엇인가를, 누군가를 오해하지 않기 위한 노력과 같은 말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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