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중기의 필름통] 리뷰 ‘스틸워터’

영화 '스틸워터'의 한 장면.
영화 '스틸워터'의 한 장면.

입이 달렸다고 다 말하고, 발이 달렸다고 다 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못하는 말이 더 많고, 못 해본 일이 더 많다. 아버지의 돌아선 등이 한없이 지쳐 보이고, 슬퍼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참고, 견디고, 지키는 것이 아버지의 길이다. 힘이 들고, 고통스럽지만 그래도 그 길을 가야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중단하거나 쉴 수가 없다.

6일 개봉한 '스틸워터'(감독 토마스 맥카시)의 맷 데이먼이 그런 아버지의 길을 걷는다. '굿 윌 헌팅'(1997)에서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말에 오열하던 청년이 이제 아버지가 돼 딸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스틸워터'는 친구를 살해한 혐의로 먼 이국땅에서 수감 생활을 하는 딸을 위해 헌신하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딸이 살인 혐의로 감옥에 갇힌다. 그것도 먼 프랑스 마르세유 감옥이다. 아버지 빌(맷 데이먼)은 딸의 결백을 믿는다. 딸 앨리슨(아비게일 브레스린)의 부탁으로 무죄를 입증할 단서를 변호사에게 전달하지만, 다시 사건을 조사하는 것은 어렵다는 답변만 돌아온다. 딸을 실망시킬 수 없었던 아버지는 아예 프랑스로 날아와 진범을 찾아 나선다.

'스틸워터'는 아버지의 부성애로 출발한다. 빌은 평생 미국 오클라호마를 벗어나 본 적이 없고, 평생 공사장만을 전전하며 살아왔다. 석유 채굴 기술자지만, 정리해고된 후 지금은 건설 현장을 옮겨 다니는 노무자다. 배운 것이 없다보니 알코올 중독에, 가정에도 소홀했던 실패한 아버지다. 딸의 믿음도 저버린 지 오래다.

그래서 아버지와 딸의 팽팽한 긴장감은 필연적이다. 딸은 과거의 아버지를 기억하지만, 아버지는 과거를 잊고 딸의 미래를 위해 온몸을 던진다.

영화 '스틸 워터'의 한 장면.
영화 '스틸 워터'의 한 장면.

가족사를 담은 둘의 인물 묘사가 끝난 후 버지니(카밀 코탄) 모녀가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풍성하게 가지를 뻗는다. 버지니 모녀는 프랑스어를 못하는 빌을 도와주는 선의를 가진 프랑스인이다. 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빌은 이제까지 느껴보지 못한 따뜻한 가족애를 느낀다. 버지니의 딸 마야를 통해 오래 전에 느꼈어야 했고, 이미 했어야 했던 아버지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깨닫는다. 그리고 늦었지만 빌은 간절한 마음으로 딸과의 관계를 개선해 나간다.

'스틸워터'의 기본 설정은 살인사건이다. 미국인 유학생이 타국에서 룸메이트를 살해한 것이다. 2007년 이탈리아에서 벌어진 아만다 녹스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아만다 녹스라는 미국인 유학생이 이탈리아 페루자에서 유학 중, 남자친구를 사주해 영국인 룸메이트를 강간 살해한 혐의로 26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아만다 녹스가 금발에 뛰어난 미모로 세인의 관심을 가지면서 전 세계 언론이 주목한 것으로 유명하다. 아만다 녹스는 사건 발생 8년 만에 무죄판결을 받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감독이자 시나리오를 공동 집필한 토마스 맥카시는 "아만다 녹스의 이야기에서 직접적인 영감을 얻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영화 '스틸 워터'의 한 장면.
영화 '스틸 워터'의 한 장면.

그렇다고 영화가 실화의 풍성한 화제성을 다루지는 않는다. 당시 무죄로 판명되면서 아만다 녹스를 향한 '악녀인가 천사인가'와 같은 논쟁과 인종차별 등 황색저널리즘이 난무했다. 영화는 이 같은 비이성적인 편향과 선입견, 차별적인 태도를 버리고 우리가 잊고 있었던 묵직한 삶의 방향을 제시하며 관객의 동의를 구한다.

딸에게 헌신적인 아버지, 늦었지만 모든 것을 정상적으로 돌려놓고 싶은 회한과 깨달음, 잘못된 선택에 대한 책임, 그럼에도 보편적인 사랑을 던지는 이웃 등 삶의 본질적인 부분을 터치한다.

138분이라는 제법 긴 러닝타임 대부분에서 카메라의 시선은 맷 데이먼에게 머문다. 모든 책임을 혼자 지려는 듯 고독한 부성애를 맷 데이먼이 잘 연기한다. 한때 참지 못해 벌어진 모든 과거를 묻고, 혼자 묵묵하게 걸어가는 그의 걸음이 상당한 울림으로 전해진다.

'스틸워터'는 올해 칸영화제에 공식 초청돼 갈채를 받았다. 감독 토마스 맥카시는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문제를 은폐해 온 가톨릭교회의 부패를 폭로한 기자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스포트라이트'(2015)로 아카데미 2관왕에 오르기도 했다.

사회성 짙은 전작처럼 '스틸워터'는 딸의 무죄를 입증한 아버지라는 상투적인 감동 라인 대신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삶의 방향성을 제시하는데 공을 들인다. 그리고 그 화자를 세상의 무게를 어깨에 얹고 살아가는 아버지로 설정했는데, 스틸워터시(市)를 흐르는 강물처럼 묵직하게 다가온다. 138분. 15세 이상 관람가.

김중기 문화공간 필름통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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