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책] 무언가 위험한 것이 온다

김희선 지음/ 민음사 펴냄

화성을 배경으로 한 영화
화성을 배경으로 한 영화 '마션'의 한 장면.
무언가 위험한 것이 온다 / 김희선 지음 / 민음사 펴냄
무언가 위험한 것이 온다 / 김희선 지음 / 민음사 펴냄

김희선 작가의 신작이 나왔다기에 지난해 6월부터 올해 초까지 '주간 문학동네'에 연재했던 '천리안브라더스'가 단행본으로 나온 줄 알았다. 제목이 '무언가 위험한 것이 온다'였기에 더 그렇게 여길 만했다. 핵무기, 초능력이라는 키워드로 소설의 시작을 알린 '천리안브라더스'는 '무언가 위험한 것이 온다'는 제목과도 제법 어울렸던 것이다. (그러니 '천리안브라더스'도 곧 신간으로 만날 수 있으리라.)

'무언가 위험한 것이 온다'는 화성을 배경으로 한 영화, '배틀 온 마스' 촬영으로 시작한다. 붉고 광활하지만 허허벌판인 나대지. 몹쓸 땅이라는 이미지에 적확한 그곳, 극동리다. (작가는 이 소설의 공간적 배경을 W시 극동리라고 밝혔다.) 어떤 식으로든 외계인이 곧 등장할 것임을 암시한다.

김희선 작가의 소설에 외계인이 나서는 건, 그래서 SF 장르소설 느낌을 풍기는 건 새롭지 않다. 그의 단편 '지상 최대의 쇼'에서는 거대한 비행접시가 W시 상공에서 몇날 며칠 동안 그저 끊임없이 색종이만 뿌려대며 접근했다. 장편 '무한의 책'에서는 외계인이 신격화된 공룡의 모습으로, 그것도 떼로 등장했다.

무엇보다 그의 전매특허처럼 인식된 다큐멘터리 같은 전개를 떠올리면 극동리를 검색하지 않을 수 없다. 청주 내수읍 극동리만 검색 결과로 나온다. 그러나 소설 속 극동리는 폐광촌이다. 이곳에 '바이오제네시스'라는 회사 CEO이자 마을 출신인 노이균 회장이 단숨에 이곳을 바이오산업단지로 만들겠노라며, 실은 폐기물처리장을 짓는다지만, 한편으로는 영화 촬영지로 만들면서 마을 전체는 들떠있다. 영화 촬영 낙수효과로 마을주민들은 엑스트라로 대거 동원된다.

(김희선 작가의 작품에는 막상 찾아보면 없는 경우가 간혹 있다. 작가의 전작 장편 '무한의 책'에 등장했던 즈웨데 덜루 박사가 영혼의 단짝처럼 이번 소설에도 등장하는데 검색에 걸리지 않는 사람이다. 등단작인 '교육의 탄생'에 등장한 천재 소년 최두식도 마찬가지다. '그런 사람 없음'이다. 반면 '바이오제네시스'라는 이름은 라이언 브론, 알렉스 로드리게스 등을 약쟁이로 만든 메이저리그 약물 스캔들로 더 알려졌지만 국내에 현존하는 기업명이기도 하다.)

화성을 배경으로 한 영화
화성을 배경으로 한 영화 '마션'의 한 장면.

소설은 엽기적인 자살 사건으로 독자의 시선을 끌고 간다. W시 중심가에서 일어난 이만호라는 노인의 자살이다. 이게 도대체 가능한가 싶은 방식, 작동중인 드릴을 단단히 고정시킨 뒤 이마로 들이받는데 뱀파이어를 죽일 때 심장을 내리치듯 뇌에 있는 송과체를 공략한다는 설정이다. 뱀파이어야 누가 죽여주기라도 하지만 이건 스스로 달려든다. 순간 2011년 5월 문경 농암 폐광산에서 있은 십자가 자살사건과 흡사하다는 데 생각이 미친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상담전화 ☎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 129, 생명의 전화 ☎ 1588-9191, 청소년 전화 ☎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애플리케이션,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아벨 페라라 감독의 영화
아벨 페라라 감독의 영화 '보디 에일리언' 포스터. 원제는 '신체강탈자의 침입(Body Snatchers)'. 영혼을 말살하고 몸을 빼앗는다는 설정으로 소설 전개와도 연관이 있다.

웬만해서는 기억 못할 리 없는 전개다. 어디선가 분명히 봤음직한 강한 기시감이 든다. 민음사가 격월로 내고 있는 문예지 '릿터 27호'(2020년 12월/2021년 1월호)에 경장편소설로 실렸던 작품이다. 그때도 이상하리만치 상당량(소설 전체가 296쪽인데 121쪽까지 게재)이 실려 '맛보기 시식용치고는 양이 많다' 여긴 터였다.

'남은 이야기는 곧 출간될 단행본에서 이어집니다'로 마무리돼 전체 분량은 500쪽을 넘는가보다 했더니 296쪽 단행본으로 나온 거였다. (단행본의 122쪽부터 전직 경찰 우광일이 등장하는데 그의 출현으로 복잡해 보이던 사건의 퍼즐이 하나씩 맞춰진다.)

다이나믹하면서도 복합적인 구성으로 소설은 끝까지 몰아쳐간다. 자칫하다가는 스포일러가 될 개연성이 무척 높다. 하여 이 소설을 읽기 전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몇 가지 나열한다.

우선 펭귄을 닮은, 펭수 이미지가 절대 아니다, 미국 배우(대니 드비토)를 미리 찾아보고 읽자. 극동리 이장 오구식의 이미지 생성에 큰 도움이 된다. 오구식은 홍반장처럼 극동리의 모든 일에 관여한다. (그나저나 '대니 드비토'는 황정은 작가의 단편에도 제목으로 등장하더니 여러 모로 작가들의 캐릭터 상상에 지대한 영감을 준 배우임에 틀림없다.)

소설 속에서 극동리 이장 오구식을 닮았다는 미국 배우 대니 드비토
소설 속에서 극동리 이장 오구식을 닮았다는 미국 배우 대니 드비토

뱀이 꼬리를 물고 있는 장식('우로보로스'로 추정)의 이미지도 미리 그려놓으면 좋다. 조연 배우가 상징적인 액세서리를 장착하진 않는다. 소제목처럼 붙어있는 날짜는 이야기 흐름에 큰 지장이 없다. 추리소설 문제 풀 듯 여기저기 뒤적이지 않아도 괜찮다. 296쪽. 1만4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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