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백화점서 '골프' 대형마트서 車 구매…유통업계 공간 혁신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백화점·대형마트 등 전통적인 대형 유통업체들
'물건을 사고파는 공간'의 의미를 넘어 그 의미 이상의 공간으로 패러다임 전환

'변해야 산다'.

코로나19 시대 백화점·대형마트 등 대형 유통업체들이 취하고 있는 전략을 한 마디로 압축한 말이다. 팬데믹 직후 위축됐던 대형 유통업체들은 오프라인 점포를 줄이는 방법을 택했지만 어디까지나 공간을 계속 줄일 수는 없다. 이에 유통업체들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공간에서의 의미를 뛰어넘는 새로운 공간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고 있다.

◆백화점 내 '리빙 모델하우스' 등장

지난해 백화점 매출이 주춤했을 때 가구·주방용품 등 리빙 제품은 호황을 누렸다. 이를 발판으로 삼았다. 롯데백화점 상인점은 지난달 말 대구 지역 백화점에선 처음으로 '한샘 리하우스'를 열었다. 674㎡(약 204평) 규모로 조성된 한샘 리하우스는 리빙 트렌드를 겨냥해 거실·부엌·욕실·안방 등에 최신 인테리어를 구비해 놓은 모델하우스를 조성한 것이다. 두 가지 인테리어 모델을 적용했다. 하나는 '모던 베이지 내추럴'로 장식적인 요소를 최소화한 동양적인 느낌의 가구를 활용하고 벽면엔 나무 색상 마감재 등 자연스러운 인테리어 요소를 조합했다. '수퍼 화이트'는 최근 리모델링에서 많이 활용되는 화이트 색상을 활용한 것이다. 또 가상현실(VR) 체험으로 다르게 디자인된 모델하우스의 벽지·마루·판넬 등 건자재 색상을 바꿀 수도 있다.

한샘리하우스 모습. 롯데백화점 제공
한샘리하우스 모습. 롯데백화점 제공

이는 단편적인 리빙 아이템을 접목해 입체적인 하나의 리빙 공간으로 창출한 것이다. 그림을 보고 소비자가 자연스레 리모델링에도 관심을 가질 수 있게 콘텐츠를 구성했다. 롯데백화점 대구점에도 조만간 그룹 계열사인 롯데건설의 모델하우스가 입점할 예정이다. 아파트 분양시 홍보 목적뿐만 아니라 판매 목적의 가전·가구도 함께 전시한다.

◆골프 치러 백화점 가요

주목받는 골프 열풍에 스크린골프장도 백화점에 들어섰다. 체험·놀이의 공간으로 변모한 것이다. 지난 6월 롯데백화점 대구점 6층에 연 'GDR 아카데미'에선 LPGA 공식 시뮬레이터인 GDR을 통해 체계적인 레슨 코칭을 하고 있다. 백화점 관계자는 "최근엔 회원 중 'MZ세대(밀레니얼 세대+Z세대)'의 등록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라며 "퇴근 후, 그리고 주말에 골프로 여가를 즐기려는 젊은층 움직임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골프 아카데미 주위로 골프웨어·장비 등 스포츠 아이템을 진열해 고객들의 구매 욕구를 강화한 것도 특징이다.

◆'전통적인 층별 분류법' 변화

백화점의 전통적인 층별 분류법도 변화하는 모양새다. 반드시 의류 전시 층에는 의류 제품만 있어야 하고, 리빙 전시 층에는 리빙 제품만 있어야 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대구백화점 프라자점은 최근 4층 여성캐주얼 등 여성패션을 전시하는 층의 중앙부에 식기·머그잔 등 리빙 제품을 전시했다. 원칙대로라면 9층 리빙관에 있어야 할 제품들이지만, 전시에 변화를 주면서 의류 구경을 온 사람들의 구매를 유도한다는 전략이다. 대구백화점 관계자는 "최근 뜨는 리빙 트렌드 수요에 맞춰 가벼운 리빙 제품을 전시했더니, 예상보다 판매량이 늘었다"고 말했다.

◆자동차 보러, 또 사러 '마트'에 갈 수도

대형마트도 온라인 전성시대에 오프라인 매장을 올 이유를 만들고 있다. 홈플러스는 4개 점포(부천상동점·간석점·김해점·전주효자점)에 최근 '현대자동차 캐스퍼 쇼룸'을 선보였다. 지난달 현대자동차가 출시한 경형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인 캐스퍼의 실물을 대형마트에서 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캐스퍼는 비대면으로 판매하는 차량인 만큼 실물을 보기 위해 많은 고객이 홈플러스 매장을 찾았다"고 설명했다. 홈플러스는 이외에도 시승센터·전기차 충전소·인증 중고차 판매 서비스 등을 운영하며 '모빌리티 서비스 플랫폼'을 구축했다. 마트에서 자동차를 타볼 수 있고 자동차까지 구매할 수 있는 것이다.

홈플러스 제공
홈플러스 제공

기존 공간을 활용한 특색 있는 공간도 창출했다. 그 예로, 홈플러스 풋살파크가 전국 12곳 점포에서 운영 중이다. 체육을 즐기는 시민들을 위해 친환경 인조잔디, 1.5m 세이프 쿠션, 야간 경기를 위한 스포츠 LED 조명을 갖췄다. 이외에도 점포 내 공간을 활용해 개인 물품을 보관해주는 '더 스토리지'를 3곳 점포(경기 고양 일산점·수원 원천점·부산 서면점)에서 운영 중이다. 도심 내에서 부피가 큰 물품을 보관할 수 있어 호응이 좋은 편. 8월 기준 전체 평균 이용률은 80%를 넘어선 상태다. 또 전국 138개 점포에 '중고폰 ATM'도 운영하고 있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든지 간편하게 거래할 수 있는 게 특징이다. 홈플러스는 ''경험'을 쇼핑한다'는 전략으로 소비자 욕구에 부합하는 서비스를 늘려갈 계획이다.

◆MZ세대 겨냥한 '미닝아웃' 트렌드

MZ세대 사이에서 화두가 된 소비로 자신의 신념·가치관을 드러내는 '미닝아웃(Meaning Out)'을 제품에 접목시키기도 했다. 이마트는 자체 패션 브랜드인 '데이즈'가 유니세프와 손잡고 'Fit for Children' 캠페인을 벌인다고 밝혔다. 7일부터 13일까지 일주일간 데이즈 아동의류 10종을 30% 할인하고, 행사상품을 구매하면 '유니세프 그립톡(한 개당 1천원)'을 증정하고 유니세프에 기부되는 식이다. 확보된 기금은 깨끗한 물을 마시지 못해 고통받는 전 세계 어린이들을 위해 식수정화제 구매 등 식수 개선 사업에 쓰이게 된다. 이마트 관계자는 "아동 의류를 구매하는 과정에서 나눔과 기부 의미를 자연스레 떠올릴 수 있게 캠페인을 기획했다"고 말했다.

데이즈 유니세프 캠페인 포스터. 이마트 제공
데이즈 유니세프 캠페인 포스터. 이마트 제공

◆'물건만 잘 팔면 된다' 는 옛말

이처럼 백화점·대형마트 등 전통적인 오프라인 유통업체가 발빠르게 변화하는 까닭은 '좋은 물건만 잘 팔면 된다'는 전략만으로 경쟁력을 갖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온라인으로 물품을 주문하면 하루 만에 받을 수 있고, 미국·유럽 등 전 세계 물품 역시 해외직구를 통해 쉽게 받아볼 수 있는데, 비대면 시대에 이런 라이프스타일이 강화됐기 때문이다. 유통업계의 한 관계자는 "오프라인 매장은 이제 체험과 유희의 공간 이상의 역할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며 "더 이상 근처의 유통업체만이 경쟁자인 건 아닌 시대다. 분주하게 노력해 유연하게 대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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