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거꾸로읽는스포츠] 인기 없는 전국체전 4년 주기로 바꾸자

개최주기 변경, 메달 경쟁으로 바꿔 위상 높이자…매년 개최, 종합점수제는 체육 단체 기득권 유지 수단

지난 8일 경북 구미시민운동장에서 열린 102회 전국체육대회 개회식에서 선수단이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8일 경북 구미시민운동장에서 열린 102회 전국체육대회 개회식에서 선수단이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대한민국 체육인들의 대잔치 전국체육대회가 찬밥신세가 되고 있다. 국가대표를 육성하는 엘리트 체육의 산실이란 명분 아래 한때 전 국민적인 인기를 누린 적도 있지만 먼 과거가 된 느낌이다. 일부 체육인들의 잔치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나 코로나19 대응 정부 정책에 된서리를 맞았다.

제102회 전국체육대회가 지난 8일부터 14일까지 7일간 구미시 등 경상북도 일원에서 열렸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지난해 같은 장소에서 예정된 제101회 대회는 열리지 않았고, 올해 대회는 대학부와 일반부를 제외한 고등부만으로 축소 개최됐다.

전국체전을 주최하는 대한체육회와 올 대회를 주관한 경상북도·경상북도체육회 등은 대회 정상 개최를 주장했으나 정부 방역 당국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키 등 일부 종목이 대학일반부를 사전 경기로 치른 상태에서 정부가 뒤늦게 대회 축소 방침을 세우자 체육 단체는 정상 개최를 주장하는 성명서를 내는 등 반발했다. 하지만 감염병이 나도는 시대적인 상황에 체육인들은 애초 의지와는 달리 제대로 항변하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일만은 아닐 것이다. 체육 단체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눈치를 보거나 예산을 지원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운영된 때는 근대 체육 도입과 광복 전후 시기뿐이다. 박정희 군사정부가 들어서면서 민간인 회장 체제의 지방 체육회가 회장 자리를 관선 시장·도지사에게 넘겨주면서 우리나라 체육은 정치권에 예속됐고, 행정의 들러리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시·도가 순위 경쟁을 펼치는 구도인 전국체전은 민선 지자체가 출범한 1995년을 기점으로 일부 변화를 읽을 수 있다. 1995년 이전 관선 시대에는 향토 출신 선수들이 개인과 시·도의 명예를 걸고 경쟁했다. 이후 선거로 시장과 도지사가 선출되면서 전국체전은 지자체장의 치적으로 순위 경쟁을 펼친다. 이에 따라 체육 단체는 시·도 간부 출신 낙하산 인사가 자리 잡으면서 지자체장의 치적 쌓기와 선거 이용에 몰두한다. 일부 지자체와 체육회는 체전 성적에 과도하게 몰입, 다른 시·도 출신의 '국내 용병'을 대거 영입해 전국체전의 본질을 흐리게 했다.

이 시점부터 전국체전은 점점 국민 관심사에서 벗어나며 인기를 잃어갔다. 전국체전에 대한 언론 관심도 줄어들었다.

근본적으로 전국체전이 인기를 잃은 것은 프로 스포츠 때문이다. 1982년 프로야구, 1983년 프로축구를 시작으로 구기 종목이 프로화되고 국내 스타 선수들의 해외 진출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등 유럽 축구, 메이저리그와 일본프로야구 등이 인기를 끌었다. 한 단계 수준 높은 경기력과 볼거리, 미디어 중계 등으로 스포츠 팬들의 관심사가 프로 스포츠에 집중된 것이다. 전국체전은 자연스럽게 관람객과 팬들을 빼앗기며 외면받았다.

생활체육 활성화와 저변 확대도 전국체전 위상 저하에 일정한 역할을 했다. 시민들은 동호회를 결성해 직접 선수로 나서며 스포츠 욕구를 충족시키고, 엘리트 체육의 기반인 학교 체육은 민간의 운동 클럽에 자리를 내주는 실정이다. 이를 위한 생활체육 대회는 종목별로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과도한 경쟁에 따른 폭력 등 지도자 갑질, 운동선수들의 높아진 인권 의식과 권익 등은 엘리트 체육에 치명상을 입히고 있다. 여성 선수들의 '미투'로 지도자들이 처벌받고 팀을 떠나는 등 어수선한 분위기가 계속되고 있다.

지난 8~14일 경북 예천 진호국제양궁장에서 열린 제102회 전국체육대회 양궁 남자 고등부 개인전과 단체전에서 금메달 4개, 은메달 1개, 동메달 2개를 획득한 경북 대표 김제덕이 7개의 메달을 들어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8~14일 경북 예천 진호국제양궁장에서 열린 제102회 전국체육대회 양궁 남자 고등부 개인전과 단체전에서 금메달 4개, 은메달 1개, 동메달 2개를 획득한 경북 대표 김제덕이 7개의 메달을 들어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체육 단체는 제도적인 변화를 외면하고 기득권 지키기에 급급했다. 지난해 민간인 회장 체제의 체육회가 다시 출범했지만, 정치와 행정 예속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체육 단체가 여전히 지자체 예산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등 자생력을 키울 방안이 없기 때문이다. 체육 단체는 전국체전이 끝나면 개선 방안 등 인기를 되살린 대책 마련에 나서지만, 형식에 그치고 있다. 전국체전의 하위 격인 전국 지자체의 시민·도민체전도 마찬가지이다. 대회를 개선하려는 의지가 없다.

전국체전은 파격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체육 단체와 일부 체육인들이 기득권 지키기에 급급해하면 정부와 시민이 나설 필요성이 있다.

전국체전의 큰 골격인 개최주기와 시·도 순위를 매기는 종합점수제부터 변화를 주어야 한다. 전국체전을 매년 개최하는 이유는 우리나라를 빛낼 국가대표 선수 육성에 있다. 시·도 순위를 가리는 방편은 아닐 것이다. 여기에 초점을 맞춰 대회 규모를 줄이는 게 권위를 높이는 일이다.

전국체전 위상을 높이려면 격년이나 4년으로 개최주기를 확대하는 게 좋지 않을까. 세계적인 체육 강국인 중국은 4년 주기로 전국체전을 개최하는데 선수들이 웬만한 국제 대회보다 전국체전 출전을 더 중요시할 정도로 대회 위상이 높다. 경북체육회가 국내 지도자들을 대거 파견하고 있는 인도네시아의 전국체전은 4년 주기로 열린다.

일반부와 대학부, 고등부로 나눠 기량을 겨루는 방식은 대회 취지에 맞춰 부별 구분 없는 왕중왕전으로 단일화하고, 나눠먹기식의 종합점수제는 올림픽처럼 금메달 경쟁으로 변경해야 한다. 국내 최고 선수를 뽑는 대회에서 메달별로 점수를 부여해 시·도 순위를 가리는 방식은 체전 취지뿐만 아니라 시대적인 흐름에도 안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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