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달성문화재단 10년의 기록] <5>도동서원 사액 봉행제 재현

선조가 하사한 현판 봉행 전국 첫 재현…'문화 고장 달성' 널리 알려

도동서원 사액 봉행 재현 행사에서 김문오(오른쪽 세번째) 달성군수가 당시 현풍현감 역을 맡아 왕으로부터 사액된 현판을 봉행하고 있다. 달성군 제공
도동서원 사액 봉행 재현 행사에서 김문오(오른쪽 세번째) 달성군수가 당시 현풍현감 역을 맡아 왕으로부터 사액된 현판을 봉행하고 있다. 달성군 제공
도동서원 사액 봉행 재현 행사에서 김문오(앞줄 가운데) 달성군수가 당시 현풍현감 역을 맡아 거리 퍼레이드를 벌이고 있다. 달성군 제공
도동서원 사액 봉행 재현 행사에서 김문오(앞줄 가운데) 달성군수가 당시 현풍현감 역을 맡아 거리 퍼레이드를 벌이고 있다. 달성군 제공
도동서원 사액 봉행 행렬단이 거리 퍼레이드를 벌이고 있다. 달성군 제공
도동서원 사액 봉행 행렬단이 거리 퍼레이드를 벌이고 있다. 달성군 제공

◆전국 최초 서원의 사액 봉행제 재현

달성문화재단이 조선의 유학자 한훤당 김굉필을 배향한 도동서원을 중심으로 '서원의 사액 봉행' 과정을 전국 최초로 재현, 지역사회는 물론 전국의 유림으로부터 큰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도동서원은 지난 2019년 7월 전국의 8개 서원과 함께 '한국의 서원'으로 등재된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이다.

달성문화재단이 지난 2013년 '도(道), 동(東)에서 꽃피다, 도동서원'을 테마로 주관한 도동서원 사액 봉행 행사는 달성군의 문화유산 가치를 재발견하고 품격높은 역사와 문화의 고장임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됐다.

사액(賜額)은 왕이 사립교육기관인 서원을 공식 인정해 해당서원의 액호를 지정, 판각한 현판을 내려준다는 의미다. 사액의 제반절차는 왕명에 의해 진행됐다. 조선시대 왕과 관련한 명령, 기물, 행사 등은 여타 관료나 민간에서 행하는 것과는 달리 매우 엄격하게 치러졌다.

그렇기에 사액된 현판이 조정에서 제작돼 내려오고, 이를 서원에 거는 과정에서 일정한 의식이 이뤄졌다. 이 때 조정의 해당 관서(예조)에서는 관리를 파견해 감독하고, 해당 현과 인근의 수령들이 참석한 큰 행사였다.

도동서원(달성군 구지면)은 김굉필 선생의 도학을 계승하기 위해 퇴계 이황과 한강 정구 선생의 주도로 세워졌다. 조선의 왕인 선조로부터 '도동서원'으로 이름지은 현판을 하사받고 사액서원이 됐다.

◆조선 선조로부터 '도동서원' 현판 하사

달성문화재단은 지난 2013년 9월 7일 400여년 전 도동서원이 사액된후 봉행하는 장면을 재현하는 행사를 가졌다. 이 행사는 크게 달성의 도동서원과 대구 경상감영 공원으로 나누어 진행됐다.

이날 사액 봉행제는 조정에서 내려온 사액 봉안사(예관) 행렬을 대구 경상감영에서 영접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나졸 2인으로 구성된 인로군이 선두에서 서서 길을 인도하고 그 뒤로 영기(令旗) 1쌍과 부월(斧鉞) 1쌍을 든 의장대가 뒤따랐다.

이어 향축(香祝)을 실은 용정자(龍亭子)와 서적, 현판을 실은 채여(彩轝) 뒤로 예관과 서리 및 기타 인원이 배종(背腫)하는 43명의 봉안사 행렬이 도착했다. 이 때 경상감사 일행 67명과 취타대 30명, 유림 및 지역 주민들이 맞이했다.

사액 봉헌단이 대구 종로초등학교에서 출발해 경상감영까지 나팔과 필율, 태평소 등 풍악을 울리며 퍼레이드로 경상감영에 도착하자 미리 나와있던 경상감영의 감사 이하는 허리를 굽혀 공손히 맞이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향촉과 액판이 전정(前庭)에 들어서자 제례악이 연주되고 67명의 관원들이 일자로 서서 지영례(왕이 보낸 칙서와 고명을 맞이하는 의식)를 가졌다. 이후 감사가 네 번의 절을 한 후 사액은 선화정에 임시 봉안됐다. 지영례에서 제례악 연주와 더불어 태평무 공연이 펼쳐졌다.

◆취타대, 풍물패 등 사액봉행 퍼레이드 장관

지영례가 끝나고 다시 사액은 달성군으로 옮겨져 군민체육관에서 포산고등학교까지 봉행 퍼레이드가 진행됐다. 봉행단 100명과 경상감영 행렬 90명, 취타대 30명, 풍물패 30명, 유림, 95개 법정동을 알리는 깃발이 줄을 이었다.

사액 행렬이 도동서원에 도착하고 봉안례가 재현됐다. 유생이 액판과 향촉을 들고 서원에 들어가 중정당에 봉안하는 영액례에서 집례가 큰소리로 창을 하자 제생은 동서로 나누어 서서 차례로 북쪽을 향해 네 번 절을 했다.

이어서 사액현판을 거는 게액례, 위패를 봉안하는 봉안례, 사은례, 축하무 순서로 사액봉헌 행사가 이뤄졌다. 봉안례에서 김문오 달성군수가 당시의 현풍현감, 배사돌 전 달성군의회 의장이 조정의 사액관리 담당인 예조판서 역을 맡았다.

1610년 4월 22일 작성된 도동서원 '봉안시제집사분정기(奉安時諸執事分定記)'에는 조정에서 한강 정구의 제자 교서관 손린을 예관으로 보내 축을 담당토록 했다. 아울러 조정의 예조에서 관문을 보내 헌관으로 도사 배상유, 의령현감 이함, 현풍현감 권양에게 사액 봉안의식을 맡긴 것으로 기록돼 있다.

◆조선 선비 곽주의 편지에도 도동서원 제사 기록

달성의 도동서원이 조정으로부터 사액될 당시인 1610년 전후에 현풍의 소례에서 살았던 시골선비 곽주가 아내 하씨에게 보낸 편지(현풍곽씨언간)에서도 도동서원에 대한 제사의 모습이 잘 묘사되고 있다.

'내일 새벽에 한훤당(도동서원) 제사를 나라에서 거행하는데 우리더러 그 제사에 참여하라고 하오. 내가 오늘 소례로 도로 나갈 터이니, 내 철릭하고 두건하고 한수가 가져간 낡은 명주 중치막하고, 이불 베개 포대기 빗접 수건과 갓보에 등 재자리보를 한데 싸서 연수로 하여금 오늘로 소례 못골로 보내소. 나는 내일에야 갈 것이오.'

이처럼 도동서원 사액 봉행제 당시 참석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곽주의 언간에는 '한훤당 제사(도동서원)를 나라에서 거행한다'는 내용이 있다. 이는 국가에서 예관을 파견하고 주관한 것을 암시하고 있다. 곽주는 자신의 언간에서 도동서원의 사액 봉행 준비과정도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도동서원의 사액에 큰 역할한 한강 정구 선생이 감사 최관에게 보낸 글에서 '한훤당 가묘(家廟)에 나라에서 봄가을로 사제(賜祭)하는 것을 폐지하지 않고 있다'는 내용을 보아 사액 이전부터 관심을 갖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에도 도동서원 주변 곽재우의 후손인 현풍곽씨나 김굉필의 후손인 서흥김씨를 비롯한 유림들은 도동서원에 대한 제를 매년 정기적으로 지내고 있다. 도동서원제는 곽주의 편지에서도 드러났듯이 보통 집안의 제사나 문중의 불천위 제사, 시제와는 달리 나라에서 제사를 주도한 것을 알 수 있다.

◆도동서원 테마로 다양한 프로그램 운영

달성문화재단은 매년 도동서원의 역사적 가치를 활용한 다양한 문화콘텐츠 개발을 통해 선현의 지혜와 가르침이 담긴 '동(東)에서 피어나는 선비의 도(道)'를 운영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다양한 전통문화 체험을 통해 서원을 일상에 지친 지역민이 쉬어가고 풍류를 즐기는 치유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참여 대상별 맞춤 프로그램 구성으로 어린이는 '도동서원의 하루', 청소년은 '도동 선비생활', 성인은 '도동 문화교실' 등이다.

또 도동서원의 유교사상을 조명하고 한훤당 김굉필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담장 넘어 보는 선비의 하루' 프로그램도 관심을 끌고 있다. 서원은 '들어가서는 안되고, 만져서는 안되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탈피시키기 위한 프로그램이다.

어린이와 청소년 대상으로는 '도동서원의 하루', '나는야 소학동자'와 성인 대상은 '도동서원 보따리를 풀어보자' 등 3개 강좌가 있다.

특히 대구시와 달성군은 '낙동가람 수변 역사누림길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도동서원 일대에 조선오현 역사하우스(99㎡), 서원카페(64㎡), 서원문화원(129㎡), 서원스테이(229㎡)와 수변탐방길, 산림탐방로 등을 조성할 계획을 수립해 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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