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가 인정됐다고 끝난 게 아닙니다. '제2의 덕준이'가 발생하지 않도록 안전한 근로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지난해 10월 12일 경북 칠곡 쿠팡 물류센터에서 야간 업무를 끝낸 후 자택 욕실에서 숨을 거둔 고 장덕준(당시 27세) 씨.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년이 지난 가운데, 장 씨 어머니 박미숙(53) 씨는 "아들이 생전에 사놓은 건담 프라모델을 보면 눈물이 난다"며 "쿠팡이 재발방지대책을 하루빨리 마련하고 적용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아들의 죽음에 대한 의문 파헤쳐
지난 1년간 박 씨는 아들 죽음에 대한 의문을 혼자서 밝혀내야 했다. 박 씨는 "쿠팡이 노동자들을 하나의 기계 부속품으로 보고 있다"며 "노동자들이 최소한의 인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근로환경에서 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씨가 병원으로부터 받은 아들의 사망진단서에는 '원인미상', 부검결과도 '급성심근경색'이었다. 박 씨는 이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러다 아들의 장례식장에서 만난 쿠팡 동료들로부터 쿠팡의 열악한 근로환경을 전해 듣고 이상하다는 것을 직감했다.
박 씨는 "아들 직장동료들이 '덕준이가 근로 기간 동안 일이 많았고, 고생도 많았다'고 말했다. 또 사망하기 전날에도 덕준이가 증상을 호소했지만, 쿠팡이 어떠한 조치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산재 인정은 쉽지 않았다. 박 씨는 "산재 신청을 위해선 임금대장이 필요하지만 쿠팡이 준 서류는 근로계약서와 근무기록지가 전부였다"면서 "임금대장 요구는 거절당했다. 아들의 급여 통장과 4대보험 납부 내역을 역추적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급여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지난해 8월 장 씨가 7일 연속 야간근로를 하는 등 과도한 노동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아들의 업무강도 자료를 근로복지공단에 요구했지만, 쿠팡으로부터 '제공할 의무가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올해 2월 산재가 인정됐다. 산재를 신청한 지 약 4개월 만이었다.
◆ "쿠팡의 미온적인 태도는 비난받아야…"
박 씨는 아들 장 씨를 떠나보낸 지난 1년간을 회상하면서 쿠팡의 태도가 미온적이었다고 지적했다. 특히 유족에 대한 진심 어린 사과와 과로사 재발방지대책 마련에 미흡했다고 강조했다.
박 씨에 따르면 장 씨가 사망했을 때 쿠팡에서는 어떠한 사과의 메시지도 없었다고 한다. 그는 "짧은 시간도 아니고 1년 4개월이나 일한 직원이 사망했는데 흔한 조화 하나를 받아보지 못했다. 우리가 산재 인정을 위한 자료를 요청할 때 말고는 연락을 주고받은 게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다 올해 2월 9일 산재가 공식적으로 인정되자, 그날 저녁 7시쯤 박 씨는 쿠팡 측으로부터 첫 전화를 받았다. 이후 박 씨는 아들과 같은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재발방지대책'을 요구했지만 진전이 없었다.
이후 박 씨는 물류센터 내 야간근로자들에 대한 건강검진 용역 실시와 결과를 공개해 달라고 쿠팡 측에 요구했다. 쿠팡이 이 같은 요구를 받아들였지만, 결과에 대한 공개는 지금까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안전한 근로환경 조성의 시작이 되길
박 씨는 쿠팡 내 근로환경은 여전히 열악하며 바뀐 게 없다고 했다. 가장 먼저 물류센터 내 냉·난방기가 없다는 점을 꼽았다.
박 씨에 따르면 아들은 여름이 다가오기 전인 4월에도 땀에 흠뻑 젖은 채 집에 돌아오곤 했다. 아울러 물류센터에서는 휴게시간이 보장될 수 없는 구조라는 점도 지적했다. 쿠팡 물류센터 내 근로자들은 40분의 식사 시간과 20분 휴게시간이 주어진다. 하지만 물류센터가 워낙 큰 탓에 이동하는 데에만 수 분이 소요된다. 배식을 기다리는 긴 행렬 탓에 식사 시간도 부족하다.
박 씨는 쿠팡 물류센터 내 근로자들은 밥을 먹는 게 아니라 '밥을 퍼 몸에 넣고 있다'고 표현했다.
이 같은 근로환경을 두고 박 씨는 쿠팡이 재발방지대책을 하루빨리 마련하고 적용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코로나19로 단순 아르바이트였던 쿠팡의 일을 생업으로 생각하고 있는 젊은이들이 많다. 지금과 같은 환경에서는 누구나 제2의 덕준이가 될 수도 있다. 쿠팡은 근로자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을 우선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쿠팡은 근로자들의 안전과 건강관리를 우선시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쿠팡 측 관계자는 "야간근로자를 위한 건강진단 대상을 현행법 기준보다도 대폭 확대해 시행하고 있다. 또 대형선풍기 외 탁상용 에어서큘레이터 등 물류센터 곳곳에 수천 대 냉방기가 운영 중이며, 얼음물과 쿨토시·스카프도 지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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