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내멋대로 그림읽기] 구지량 작 'I walk the line' fabric on canvas 150x105cm

이슬람 문화에서 광범위하게 볼 수 있는 장식 무늬가 아라베스크 문양이다. 아라베스크 문양은 넓은 뜻으로는 복잡하게 이어진 기하학 도형이나 무늬화된 아라비아 문자도 포함된다. 또한 그 무늬들은 넓은 화면에 그려졌다기보다는 타일로 만든 모자이크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구지량 작 'I walk the line'를 보자마자 떠오른 게 아라베스크 문양의 패턴과 무척이나 비슷하다는 점이다. 기하학적 도형을 바탕으로, 혹은 뻗어나가거나, 혹은 같은 문양을 되풀이하면서, 혹은 겹쳐진 듯이 전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작품 또한 물감으로 작업한 게 아니라 천(Fabric)을 이용했다. 구지량에게 천은 그 자체가 물감이고 붓인 셈이다. 작가는 천이 물감이나 손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다양한 색감과 질감을 표현하는 최상의 소재로 여긴다. 하지만 이 작품 전체가 품고 있는 이미지나 상징성을 포착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구지량은 어떤 생각을 갖고 천을 잘라 이렇듯 캔버스 위에다 갖다 붙인 걸까. 그는 왜 한 겹 한 겹 자르고 붙이는 반복적이고 섬세한 작업을 하며 캔버스 위에 선과 획을 그리고 그 형태들을 만들어 간 것일까.

이에 대해 작가는 천은 그 재료의 성질과 기법에 따라 양각과 음각, 질감 표현에서 물감보다 훨씬 다양한 작업을 가능하게 만든다고 했다. 마치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삶의 순간순간을 채우듯이 수많은 선(線)의 조합을 캔버스에 채워나가다 보면 어느덧 작가의 삶의 에너지도 채워져 간다는 것이다. 이 때 삶의 에너지가 오롯이 작품에 스며들면, 한편의 뮤지컬처럼 때론 화려하고, 때론 비현실적 세계가 눈앞에 펼쳐진다.

구지량에게 선은 시작이며 에너지가 나아가는 방향이자 끝이 없음을 의미한다. 새로운 선의 시작과 끝이 없는 무한성을 통해 작가는 새로운 긍정과 희망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작가의 작품에서는 밝은 기운도 물씬 풍겨난다. 작품의 테두리보다 작품의 한가운데를 월등하게 밝은 색으로 처리해 마치 어디선가 불빛을 비추는 듯한 명암처리 기법이 또한 그러하다.

사실 세상의 모든 창작행위에서 무의미한 것이란 없다. 어떤 작가든 작품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싶어 하는 점은 매한가지다. 구지량도 예외일 수 없다.

"제 작품을 대하는 이들과의 소통이 작품을 통해 얼마나 중요할까하는 생각이 늘 듭니다. 어떤 사물이나 작품을 볼 때 작가의 의도와 관람자의 해석 사이에는 차별성과 다양성이 존재하기 마련이며, 그 다양성 가운데 공감과 소통이 이뤄지지 않을까요."

이런 이유로 해서 작품에 대한 여러 해석과 다각도의 소통은 반복적 창작행위의 원동력이 되며 동시에 작가들에게는 더 매진할 채찍이 되는 것 아니겠는가.

누구나 세상살이하면서 자기만의 색깔이나 언어로 자신을 표현하고 있다. 어떤 이는 춤, 어떤 이는 글, 어떤 이는 수다로 말이다.

화가는 그림으로 자신을 드러낼 뿐이다. 이 작품 이후 구지량은 또 어떤 그림을 통해 우리와 소통하려고 할 것인가. 삶의 긴 선 위에서 걷고 있는 작가의 끝나지 않은 이야기가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자못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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