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계의 창] 어찌 하오리, 냉랭한 한일 관계

고선윤 백석예술대 교수
고선윤 백석예술대 교수

지난 6일 화상으로 진행된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주일 한국대사관 국정감사에서 강창일 주일한국대사는 부임 9개월 동안 일본 총리와 외무상을 한 번도 만나지 않은 것과 관련,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 "총리를 만나겠다고 신청할 일이 없어서 면담을 신청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이어 남관표 전임 대사가 일본을 떠날 때도 총리와 외무상이 만나주지 않았다면서 "그만큼 한일 관계가 냉랭한 것"이라고 했다. 또한 "한일 관계 갈등은 구조적인 문제"라며 "한 사람의 힘으로 될 문제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강 대사는 4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 내각이 새로 출범한 것과 관련해서도 "급격한 변화는 당분간 기대하기 어렵다고 생각된다"며 "우리 정부는 새 내각과 한일 관계의 미래지향적 발전을 위해 계속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일 관계에 대해서 "냉랭하다" "구조적인 문제" "기대하기 어렵다" 등에 크게 낙담하면서도 새 내각과 미래 지향적 발전을 위해서 무엇을 협력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코로나19를 이유로 한국인에 대한 사증 면제 조치가 정지돼 있는 상황이다. 이른바 특별한 사정이 인정되는 경우에만 비자 발급이 가능하다.

온천을 찾아 가볍게 찾아간 기억이 있는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일본'은 점점 멀어지고 있다. 관광은 말할 대상도 아니다. 친지 방문도 유학도 취업도 어렵다. 이런 가운데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서 노력해 주길 바라는 일본 주재 외교관의 말을 들으니, 손끝이 차갑게 식어가는 느낌이다.

기시다는 아직도 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아베 전 총리의 지지를 얻으면서, 국민 여론조사에서 우세하다는 개혁파 고노 다로(河野太郎)를 누르고 새 총리로 취임했다. "겸손하고 침착하지만, 독자적 색깔이 없고 밋밋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는 외무상을 지낸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를 이끌어낸 인물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위안부 문제는 이제 매듭을 지어야 한다"면서 아베 전 총리의 승인을 얻어냈지만, 이 합의는 사실상 파기됐다. 일본은 양보할 여지가 없다는 입장이다. 고로 역사 문제를 둘러싼 한일 갈등 등에서 아베・스가 정권과 다른 모습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강 대사의 말 그대로, 한일 관계의 변화는 당분간 기대하기 어렵겠다.

하나 희망이 있다면, 그는 자민당 내에서 아시아 태평양 외교를 강조하는 명문 파벌 고치카이(宏池會)를 이끌고 있다는 점이다. 고치카이는 전통적으로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과의 외교를 중시한다. 태평양전쟁에 대한 반성과 책임을 주장한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를 비롯해서 이케다 하야토(池田勇人), 오히라 마사요시(大平正芳)가 대표적인 고치카이 출신 총리이다.

또 하나, 그가 정치에 꿈을 둔 것은 어렸을 때 겪은 인종차별 때문이라는 말을 기억한다. 관료였던 아버지의 부임으로 초등학교를 미국에서 보냈다. 당시 같은 반 학생들과 동물원에 갔을 때 짝이랑 손을 잡아야 했는데, 짝이었던 여자아이가 아주 싫은 얼굴을 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정치를 통해서 인종차별과 같은 부조리를 없애고 싶다"는 말을 했다. 이런 경험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함께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고 희망을 가져본다.

나는 작은 희망을 가지고 8일 오후 기시다 총리의 소신 표명 연설을 기다렸다. 소신 표명 연설은 총리로 선출된 자가 당선 후 국회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소신을 연설하는 자리이다. 의장이 "기시다 후미오 군"이라고 호명했고, 그는 코로나19 대응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20분이 넘는 긴 연설 중 '국민을 지키는 외교・안전보장' 정책 부분에서 미국을 시작으로 호주, 인도, 중국, 러시아 등의 나라에 대해서 열거한 다음, 마지막으로 "한국은 중요한 이웃 나라다. 건전한 관계로 되돌리기 위해서는 우리(일본)의 일관된 입장을 바탕으로 한국 측의 적절한 대응을 강력하게 요구할 것"이라고 했다. 이게 다다.

왜 여기서 이명지 작가의 "뜬금없이 용서하고 싶지 않은 얼굴들이 떠오른다. (중략) 눈길을 거두던 사랑했던 이의 비겁한 뒷모습"이라는 글귀가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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