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에 이데마(edema)가 있어 우선 머리를 열어놓았어요. 교통사고 환자라 미드라인(midline, 뇌중심선) 도 밀려 있어서 의식이 돌아와도 예전처럼 생활하기 힘들 수 있습니다."
수년 전 방영된 의학 드라마 '닥터스'에 등장하는 젊은 신경외과 의사가 뇌출혈로 입원한 환자의 보호자에게 한 설명이다. "이데마가 뭐예요?" 보호자는 의사의 표정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묻는다. "이데마가 뭐냐면…. 으음, 부종" 의사가 우리말이 생각나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대답하자 보호자는 다시 묻는다. "머리가 부었다는 말이에요?"
우연히 이 광경을 목격한 신경외과 과장은 젊은 의사들을 따로 불러 따끔하게 훈계한다. "환자분께 의학용어 우리말로 풀어서 설명하라고 몇 번이나 말했어? 의사끼리만 아는 용어로 환자와 난 다르다는 특권 의식 갖지 말라고."
실제로 중국, 일본, 한국의 흉부외과 의사들이 진료 현장에서 쓰는 의학용어를 비교해보니 우리나라 의사들의 영어용어 사용 비율이 가장 높았다. 환자의 눈높이에서 쉽게 설명하는 방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탓도 있지만, 영어 위주의 의학 교육과정에서 저절로 몸에 밴 것이다.
어려운 의학용어는 환자와 의사 간 공감과 소통의 걸림돌이다. 하지만 쉬운 의학용어는 진료의 질을 높이고, 의학 지식의 일반화를 통해 국민 건강을 증진한다.
영어권 의료 선진국에서는 의학 용어와 일상 언어 간의 거리를 좁히려는 노력을 꾸준히 해왔다. 미국 의사들이 환자에게 말하는 의학용어의 80% 이상은 일반인도 일상에서 쓰는 쉬운 용어다.
훈민정음 창제 당시에는 어려운 '한자'라는 장벽으로 뜻을 펴지 못하는 백성이 많았지만, 지금은 어려운 '의학용어'라는 장벽으로 어려움을 겪는 환자들이 많다.
'아름답고, 알기 쉽고, 간명하며, 어감이 좋고, 보편성 있는 우리말 의학용어를 제정해 비전문 일반 국민들도 자연스럽게 널리 쓰고(중략)' 영어, 일본어, 한자어 의학용어를 한글 의학용어로 대체하기 위해 1977년 처음 펴낸 '의학용어집 제1집'의 서문이다.
그동안 담마진(蕁痲疹)은 두드러기로, 좌창(痤瘡)은 여드름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아직도 병원 곳곳에서 어려운 의학용어를 들을 수 있다. 무엇보다 의료인들의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코로나19 대유행도 우리말을 위협했다. '비말(飛沫)', '드라이브 스루', '코로나 블루' 등 낯선 용어가 갑자기 등장했다. 국어문화원 연합회가 코로나19 브리핑에 쓰인 용어의 이해도를 조사해보니 국민 10명 중 6명이 의미를 모른다고 답했다.
새로운 용어일수록 의미 파악이 쉬운 우리말을 써야 한다. 국립국어원 '새말모임'에서는 '비말'은 '침방울'로, '드라이브 스루'는 '승차 검사'로, '코로나 블루'는 '코로나 우울'로 바꿔 쓸 것을 권고했다.
"우리는 고유한 말과 글을 가진 자주 민족이다. 의학에서도 필요하다면 외국 것을 수입은 하되 그것을 흡수하여 내 것으로 만들고 우리말과 우리글로 표현해야 할 것이다."
1949년 우리말 의학용어 제정을 처음으로 시도한 대한안과학회 신정균 선생의 말씀이 더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 제575돌 한글날이었다.
김동은 계명대 동산병원 이비인후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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