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해치지 않아’, 드라마 스핀오프 예능 전성시대

tvN ‘해치지 않아’, 드라마 ‘펜트하우스’ 배우들의 스핀오프로 주목

'해치지 않아'의 한 장면. tvN 제공
'해치지 않아'의 한 장면. tvN 제공

시즌제와 스핀오프. 이제 성공한 드라마의 제작 방식으로 자리하게 된 것일까. 최근 tvN '해치지 않아'라는 신규예능 프로그램은 SBS '펜트하우스' 배우들이 출연하는 스핀오프 예능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러한 스핀오프 프로그램은 어떤 강점을 갖는 걸까.

◆'펜트하우스' 스핀오프로 웃음 자아내

"결혼을 제가 두 번 했죠."

점심식사를 하던 중 갑자기 봉태규가 "결혼은 했냐"고 묻자 윤종훈은 그렇게 말했다.

"그럼 애도 두 명이에요?"라고 깔깔 웃으며 봉태규가 재차 묻자 윤종훈은 "원래 제가 한 명인 줄 알았는데…"라며 말을 줄였다. tvN의 새 예능 프로그램 '해치지 않아'에 등장한 이 대화는 물론 상황극이다.

이들이 출연했던 SBS '펜트하우스'에서 윤종훈이 연기했던 하윤철이라는 캐릭터 이야기다. 극중에서 그는 천서진(김소연)과 결혼해 하은별(최예빈)을 딸로 가졌지만, 나중에 오윤희(유진)의 딸 배로나(김현수)가 그의 또 다른 친딸로 밝혀진 바 있다.

'해치지 않아'에서 갑자기 벌이게 된 이들의 '펜트하우스' 상황극은 이제 함께 식사를 마친 엄기준과 이지아에게로도 옮겨 붙는다. 이지아가 "결혼을 세 번 했다"고 밝히자 엄기준도 "나도 세 번 했슈"라 덧붙였고, 윤종훈은 "여기 모인 사람 기본이 두 번이구만"라며 농담을 이어간다. 더 우스운 건 엄기준과 이지아가 "아이가 도대체 몇 명인지 기억이 잘 안 난다"고 말하는 대목이다.

드라마 속 캐릭터를 가져와 만든 이들의 상황극에는 '펜트하우스'라는 막장 드라마에 대한 은근한 풍자가 담겨 있다. 워낙 출생의 비밀 코드를 남발하는 통에 출연 배우들조차 아이가 몇 명인지 헷갈린다는 것. 그런데 이들이 이렇게 말하며 웃을 때 시청자들은 알게 된다. 이 배우들도 '펜트하우스'가 얼마나 무리한 설정의 드라마였는가를. 다만 배우로서 주어진 배역에 대해 최선을 다했을 뿐.

'해치지 않아'의 한 장면. tvN 제공
'해치지 않아'의 한 장면. tvN 제공

이 지점은 '해치지 않아'가 내세운 '국가대표 빌런들의 본캐 찾기 프로젝트'라는 기획의도를 명확히 보여준다. 워낙 큰 화제가 됐던 '펜트하우스'는 막장드라마로서 비판도 컸다. 또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이야기 속에서 극단적인 캐릭터들의 비뚤어진 욕망들도 그려진 바 있다. 그래서 여기 출연했던 배우들의 입장에서 보면 '해치지 않아'같은 스핀오프는 유용한 면이 있다. 어떤 식으로든 자신들에게 남게 된 '펜트하우스'의 왜곡된 이미지를 털어버릴 수 있기에.

하지만 그 차원을 넘어서 제작자 입장에서도 '해치지 않아'는 '펜트하우스'가 가진 화제성을 끌어오고, 그 드라마 속 캐릭터 이미지와는 정반대의 상황들을 극대화해 보여주는 방식으로 예능적 웃음을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실제로 이들의 아지트로 제공된 폐가는 '펜트하우스'에서 화려한 삶을 보여줬던 캐릭터들과 상반된 모습으로 웃음을 준다. 펜트하우스에 살던 이들이 구멍이 숭숭 난 문풍지를 새로 바르고, 장판을 새로 깔아 겨우 겨우 하룻밤을 지내는 모습이라니!

'해치지 않아'의 한 장면. tvN 제공
'해치지 않아'의 한 장면. tvN 제공

◆'폐가 개조 주택살이'라는 로망과 현실

물론 '해치지 않아'에는 '펜트하우스' 스핀오프로서의 기획요소만 들어있는 건 아니다. 시골집에서 삼시 세 끼를 챙겨먹는 로망을 담은 tvN '삼시세끼'의 다소 한가함을 즐기는 놀이 요소와 더불어, 이 프로그램에는 최근 시골에 빈집으로 남아있는 폐가를 개조해 농가주택으로 살아보려는 대중들의 욕망이 기획요소로 담겨있다.

드라마를 끝내고 바닷가 같은 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싶어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드라마를 함께 한 동료배우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엄기준은 제작진이 제공한 전남 고흥의 아지트를 봉태규, 윤종훈과 함께 찾아간다. 드론으로 촬영된 부감에 담겨진 초록색 논 사이를 달려 나가는 자동차가 아지트에 대한 설렘을 한껏 부풀어 올린 후, 이들이 막상 마주하게 된 폐가는 그 기대를 여지없이 깨버린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마당 가득 마구 자라난 풀들과 귀신이 나올 듯 방치된 폐가의 구석구석이 이들 앞에 현실로 다가온다. 뜨거운 햇살 속에 집수리에 들어간 이들은 거의 대화가 실종된 채 노동 속에 지쳐간다. 결국 "이게 무슨 힐링이야"라고 엄기준이 버럭하고, "아 뭐 이런 거지 같은 프로가 다 있어"라며 봉태규가 툴툴댄다.

그런데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귀신 나올 듯 무섭기까지 했던 폐가가 이들의 손길이 닿고 밥도 해먹고 이지아나 김영대, 한지현같은 손님들이 찾아와 북적이면서 조금씩 변화해간다. 평상 하나를 놓고 고기를 구워먹으며 좋은 사람들과 깔깔 웃으며 보내는 시간들. 도시의 갑갑한 아파트살이를 하는 이들에게는 이런 공간이 주는 로망이 남다를 터다.

특히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사실상 집에 묶여 살아가고 있는 현실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어딘가로 떠나 가까운 몇몇 사람과 농가주택 같은 곳에서 보내는 시간은 안전한 힐링으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잡아 끈다.

'해치지 않아'의 한 장면. tvN 제공
'해치지 않아'의 한 장면. tvN 제공

◆드라마 스핀오프 예능 전성시대

'해치지 않아' 같은 성공한 드라마가 예능으로 스핀오프 되는 일은 이제 익숙한 콘텐츠 제작의 한 경향으로 자리잡았다. 최근 종영한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나영석 사단의 '슬기로운 산촌생활'로 스핀오프된 것도 그 중 하나다. 시즌2로 마무리된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조정석, 유연석, 정경호, 김대명, 전미도 5인이 드라마를 끝내고 그 아쉬움에 산촌에서 삼 시 세 끼를 챙겨먹으며 보내는 시간들을 예능으로 담았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출연자들의 '삼시세끼' 산촌편에 해당하는 일종의 스핀오프다.

이런 방식의 스핀오프는 '슬기로운 의사생활' 신원호 감독이 과거 '응답하라' 시리즈를 했을 때부터 나영석 PD와 함께 해온 컬래버의 연장선이기도 하다. '응답하라 1994'가 성공을 했을 때 출연자였던 유연석, 차선우, 손호준은 '꽃보다 청춘' 라오스편에 출연한 바 있고, '응답하라 1988'이 끝나고 류준열, 고경표, 안재홍, 박보검은 '꽃보다 청춘' 아프리카편에 출연한 바 있다.

드라마 속 매력적인 캐릭터를 통해 스타덤에 오른 배우들이 예능으로 다시 뭉쳐 만들어진 스핀오프는 드라마 종영에 대한 아쉬움을 가진 팬들을 고스란히 끌어 올 수 있다는 점에서 효과적이다. 또한 드라마 캐릭터와 같거나 다른 배우들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도 팬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즐거움이다.

'슬기로운 산촌생활'의 한 장면. tvN 제공
'슬기로운 산촌생활'의 한 장면. tvN 제공

물론 이런 방식의 드라마 스핀오프 예능이 대부분 나영석 사단의 여행 콘셉트를 차용하고 있어 다양한 시도가 없다는 점은 아쉬운 점이다. '슬기로운 산촌생활'이야 그렇다 쳐도, '해치지 않아' 역시 여러 요소들을 떼어내면 사실상 '삼시세끼'와 크게 다르지 않은 재미요소들로 채워져 있는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의 성공적인 콘텐츠를 다양한 방식으로 이어가려는 의도로, 시즌제와 스핀오프는 이제 익숙한 전략으로 자리하고 있다. 시즌2까지 제작된 '슬기로운 의사생활'과 시즌3까지 제작된 '펜트하우스'가 각각 '슬기로운 산촌생활'과 '해치지 않아'로 스핀오프 예능을 이어가는 것이 단적인 사례다.

물론 여기에는 최근 배우들이 점점 예능 출연에 호의적으로 변하고 있는 세태도 한몫하고 있다. 작품 속 캐릭터가 강렬할수록 배우들은 자기 영역에 스스로 한계가 지워질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 '펜트하우스' 같은 드라마에 출연했던 배우들이 폐가에 들어가는 것조차 마다치 않고 예능 출연을 하는 건 그래서 배우로서의 향후 행보를 보다 자유롭게 해주는 일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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