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기의 필름통] 영화 '푸른 호수'

영화 '푸른 호수'의 한 장면
영화 '푸른 호수'의 한 장면

내가 좋아서 태어난 삶이 있으랴.

그러나 태어나면서 버림받아, 이국땅 먼 곳으로 가서 학대받으며 산 삶은 어떨까. 한 번도 선택해보지 못했고, 한 번도 선택받아보지 못한 삶이라면. 그들에게 가족이란, 고향이란, 자식이란 어떤 의미일까.

13일 개봉한 '푸른 호수'(감독 저스틴 전)는 한국에서 입양된 한 남자의 아픈 수난을 가슴 찡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상처와 회복에 대한 서정성을 한(恨)의 정서로 풀어낸 미국영화인데, 한국계 미국인 저스틴 전이 각본과 연출에 주연까지 맡았다.

안토니오 르블랑(저스틴 전)이란 이름의 동양인 남자. 히스패닉 이름에 프랑스 성을 가지고 있다. 동양인에게 어울리지 않는 이름 때문에 늘 "어디서 왔느냐"는 물음을 받는다. 그럴 때마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나라 '코리아'라고 말한다.

그는 3살 때 입양돼 이후 미국 뉴올리언스에 살고 있다. 아내 캐시(알리시아 비칸데르)와 딸 제시(시드니 코왈스키), 그리고 아내 뱃속의 작은 생명. 그가 선택한 가족이다. 문신 가게를 하지만 가족을 먹여 살리기 빠듯해 새로운 직장을 알아보고 있다.

우연히 쇼핑몰에서 아내의 전남편 에이스(마크 오브라이언)를 만나 사소한 말다툼을 벌이면서 사건이 터지고 만다. 전 부모의 불찰로 자신이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살아온 것이 밝혀진 것이다. 30년 넘게 살아온 미국이 조국이 아니었다. 국외 추방 명령서를 받아 든 안토니오는 가족과 함께 하기 위한 고군분투를 시작한다.

영화 '푸른 호수'의 한 장면
영화 '푸른 호수'의 한 장면

한국 엄마의 자장가로 시작하는 '푸른 호수'는 뜻하지 않은 고난의 길에 들어선 한 인생의 슬픈 삶의 역사와 외로운 싸움을 잘 그려낸 작품이다. 안토니오의 조각난 기억에는 한복 입은 엄마와 호수가 나온다. 푸른빛의 호수다. 차갑고 불안하고 슬픈 호수다.

뉴올리언스는 호수와 습지의 고장이다. 미시시피강보다 낮은 땅에 만들어진 도시다. 안토니오는 힘들 때마다 딸 제시와 함께 호수를 찾는다. 어린 기억의 끈을 잡으려고 하지만 호수는 말이 없다. 그가 찾는 호수는 습지다. 그것도 깊고 청명한 호수가 아니라, 물이 흐르지 않는 늪에 가깝다.

영화의 원제 'Blue Bayou'는 푸른 호수(Lake)가 아니라 푸른 늪(Bayou)이란 뜻이다. 안토니오의 삶에 대한 은유다. 어린 시절 기억에 갇혀 흐르지 못하고 펴지지 못한 안토니오의 슬픈 운명과 같다.

'Blue Bayou'는 1970년대 가수 린다 론스태트의 노래로 잘 알려진 팝송이다. '기분이 좋지 않아. 마음이 걱정되고 언제나 외로워… 언젠간 돌아갈 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블루 바이유로'라는 가사는 안토니오의 마음을 잘 대변해주고 있다. 푸른 늪 같은 곳이지만, 안토니오에게는 꼭 가야할 고향이자, 마음의 안식처이며, 거기에는 아내와 딸이 있다.

또 하나의 은유가 백합이다. 어느 날 그에게 베트남 난민이었던 파커(린 당 팜)가 다가온다. 백합 문장 타투를 받은 그녀는 시한부 삶을 살고 있다. 그녀 또한 베트남 패망으로 난민선을 타고 미국에 정착했다.

백합은 물가에 피어 뿌리가 없어 보인다. 그래서 부초(浮草)같은 우리네 삶은 은유하는데, 특히 안토니오와 파커처럼 뿌리없이 낯선 땅에 찾아든 인생이 바로 그런 풀과 같을 것이다.

영화 '푸른 호수'의 한 장면
영화 '푸른 호수'의 한 장면

'푸른 호수'는 제74회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과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월드 시네마 부문에 공식 초청돼 호평을 받았다.

'툼레이더'(2018), '파도가 지나간 자리'(2017), '제이슨 본'(2016)의 알리시아 비칸데르가 애면글면 안토니오 곁을 지키는 캐시로 출연해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파커 가족의 초대를 받은 자리에서도 애절하게 'Blue Bayou'를 불러 관객의 가슴을 짓누른다.

'푸른 호수'는 감독의 진정성 있는 연출 감각과 함께 또 하나 놓칠 수 없는 것이 촬영이다. 대부분 핸드 헬드(손으로 들고 찍기)로 촬영해 안토니오의 불안한 심리를 잘 드러내준다. 또 심도가 낮은 클로즈업으로 등장인물들의 심리도 잘 묘사하고 있으며, 모터사이클의 질주 장면 등에서는 저속촬영으로 몇몇 프레임을 삭제하는 방법으로 거친 묘사를 하는데, 이 또한 영화의 주제를 잘 드러내준다.

영화가 끝난 후 추방 또는 추방을 앞두고 있는 한인 입양인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미국에 정착하지도 한국으로 돌아올 수도 없는 이방인들이다. 어느 곳에서도 선택을 받지 못한 안타깝고 기구한 삶이다.

'푸른 호수'는 이야기 자체가 워낙 슬프고, 가슴 먹먹한 이야기여서 손수건을 꼭 챙기길 당부한다. 깊어 가는 가을, 영혼을 정화하고픈 관객에게도 추천한다. 118분. 12세 이상 관람가.

김중기 문화공간 필름통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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