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열린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이 끝난 지 한참 됐지만, 끊임없이 오명을 낳고 있다. 북한의 김여정 일행이 개회식에 참석하면서 정치 행사로 변질하고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구성은 공정성 논란을 낳았다. 대회 전후로 터진 여자 스피드 스케이팅의 김보름과 노선영의 왕따 논란, 여자 컬링 '팀킴'의 지도자 갑질 폭로 사태 등은 잘못된 여론을 형성하면서 진실 공방을 일으켰고, 법정으로 가 시비를 가리고 있다. 이런저런 잡음 탓에 가장 중요한 대회 후 경기장 시설 활용 문제는 뒷전으로 밀린 상태다.
이번에는 평창 대회 이전부터 말썽이 끊이지 않았던 쇼트트랙에서 터질 것이 터졌다. 지난 8일 한 매체가 공개한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와 A 코치가 나눈 메시지 내용이 충격적이다. 조재범 코치에게 성폭행을 당한 일로 국민 다수의 동정을 받은 심석희의 이중적인 행위 등 도덕 불감증이 대중의 관심을 끌지만, 스포츠 팬들에겐 대회 당시 심석희의 고의충돌 의혹이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매체 폭로에 이어 심석희의 라커룸 도청 의혹, 조 코치의 승부 조작 시도 등이 알려지면서 쇼트트랙 세계 최강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민낯이 속속히 드러나고 있다.
심석희의 고의충돌 의혹에 피해자 격인 동료 선수 최민정 측은 진상조사를 요구했다. 최민정의 매니지먼트사 올댓스포츠는 "최근 공개된 평창 대회 당시 심석희와 A 코치의 대화 내용 및 실제 경기에서 일어난 행위를 엄중한 사항으로 판단, 대한체육회와 대한빙상경기연맹에 지난 11일 공문을 보내 여자 1,000m 결승전 고의충돌 등 의혹을 낱낱이 밝혀 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2018년 2월 11~16일 두 사람이 나눈 메시지에는 '브래드버리 만들자'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브래드버리'는 호주 출신 쇼트트랙 선수 이름으로, 그는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남자 1,000m에서 5명 중 꼴찌로 달리다가 앞서 달리고 있던 선수들이 우르르 넘어지며 우승했다.
평창 대회에서도 '브래드버리'와 같은 일이 벌어졌다. 2월 22일 여자 1,000m 결승전에서 심석희와 최민정이 충돌하면서 최민정은 4위를 차지하고 심석희는 실격 처리됐다. 올댓스포츠는 "해당 경기 당일 밤 심석희는 A 코치와 '그래도 후련하겠다. 최고였어 ㅎㅎ'라는 대화를 주고받았다. 이는 충돌이 우연이 아닌 고의성을 짐작하는 결정적 증거로 여겨진다"고 주장했다. 올댓스포츠는 또 "최민정을 고의로 넘어뜨려 '브래드버리' 했다면 위해를 가한 범죄행위로 볼 수도 있다"며 "최민정은 이번 일로 충격을 받아 심석희와 함께 훈련하거나 대회에 출전하면 평창 대회 때와 같은 상황이 재발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정신적으로 불안해하고 있다"고 했다.
심석희는 매체의 문자 공개 후 충북 진천 국가대표선수촌에서 퇴촌, 최민정 등 쇼트트랙 대표팀 선수들과 분리된 상태다. 심석희는 지난 11일 매니지먼트사인 갤럭시아SM을 통해 "제가 일부러 넘어진다거나, 이 과정에서 다른 선수를 넘어뜨려야겠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고, 실제로도 그런 행동은 절대 하지 않았다"고 의혹을 부인했다.
이번 사태는 대한체육회나 대한빙상경기연맹 등 관련 단체의 진상조사로 이어지고 있다. 심석희 측은 전문가 조사를 통해 고의충돌 의혹이 해소되기를 바라지만 앞으로의 상황은 그에게 불리할 것으로 보인다.

고의충돌 의혹은 평창 대회 당시에도 불거져 언론의 갑론을박으로 이어졌다. 여자 1,000m 결승전 후 일부 언론이 '심석희가 최민정을 방해했다'는 보도를 하자 다른 언론은 '경솔한 추측'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의혹의 핵심은 심석희가 어떤 이유로 심판의 페널티를 받아 실격 처리됐느냐에 달려 있다. 경기 당시 마지막 한 바퀴를 남겨둔 상황에서 5명의 선수 중 뒤에 처진 아리아나 폰타나(이탈리아)와 심석희, 최민정이 추월을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폰타나와의 3위권 경쟁에서 밀린 심석희가 바깥에서 다시 안으로 파고들던 최민정을 몸으로 밀면서 함께 넘어졌다. 이를 놓고 최민정이 심석희에게 밀려 넘어졌다는 분석과 심석희가 폰타나를 가로막아 페널티를 받았다는 분석으로 엇갈렸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보기에 따라 해석이 다를 수 있다.
당시에는 심석희의 고의성이 명확하지 않아 별로 문제 되지 않았지만, 메시지가 공개된 현재 시점에서 보면 심석희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심석희가 최민정에게 드러낸 혐오감 등 여러 정황상 고의성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최민정의 3관왕 등극 견제 등 심석희의 머리에 잠재된 의지가 보이지 않는 손으로 작동한 것이 아닐까. 고의성 입증에 따른 처벌 여부를 떠나 심석희는 이번 사태로 어렵게 쌓은 스포츠 스타로서의 명예를 깡그리 잃고 있다.
한편으로 인격적으로 성숙하지 않은 운동선수의 경쟁심리가 드러난 것을 비난 일색으로 봐서는 안 될 것이다. 선수에게 올바른 인성을 심어주지 못하고 나쁜 행동을 부채질한 코치의 잘못이 더 크다. 우리나라가 쇼트트랙 세계 최강으로 군림하면서 메달 경쟁에서 피해를 본 선수들은 숱하다. 쇼트트랙 종목 특성상 다른 나라 선수들을 견제하는 작전이 중요하기에 누군가는 동료의 우승을 위한 희생양이 되어야 했다. 쇼트트랙이 올림픽 종목이 된 초창기에는 감독 등 지도자의 조정이 큰 잡음 없이 이뤄졌지만, 지도자와 학교 등에 따른 파벌이 형성되고 경쟁이 심화하면서 곳곳에서 마찰이 빚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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