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박미영의 '코로나 끝나면 가고 싶은 그 곳'] 美의 도시 잘츠부르크

알프스 경치·화려한 건축술…'도레미송'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을 찾아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는 알프스의 경치와 화려한 건축술의 독특한 조합으로 세계에서 아름다운 도시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있다.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는 알프스의 경치와 화려한 건축술의 독특한 조합으로 세계에서 아름다운 도시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있다.

어느 해 초가을, 큰 프로젝트가 하나 끝날 무렵이 되자 허탈감이랄까, 온 몸에서 힘이 죄다 빠져나간 듯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긴장되었다. 완벽한 마무리를 위해 사소한 일까지 챙겨야 했던 입장이라 그 끈을 놓아서는 절대 안 될 일이었다. 그 간극을 메꾸기 위해 나는 달콤한 사탕과 핫초콜릿을 엄청나게 먹어댔다. 힘을 내어 재차 몰입해 그 일의 마무리를 제대로 해야 했던 것이다. 마침내 정산까지 끝내고 나자 저절로 맥이 탁 풀려나가는 느낌이었다. 마치 몸에서 흰 연기 한 가닥이 빠져나와 공중으로 흩어지는 그런 환영을 보는 듯했다. 아, 잘츠부르크로 가자. 단발머리 중학생일 때부터 가고 싶었던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The Sound of Music)'의 그 곳, 나는 여행가방을 꾸리고 비행기를 탔다.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는 알프스의 경치와 화려한 건축술의 독특한 조합으로 세계에서 아름다운 도시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있다.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는 알프스의 경치와 화려한 건축술의 독특한 조합으로 세계에서 아름다운 도시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있다.

◆잘츠부르크(Salzburg), 모차르트, 카라얀 그리고 사운드 오브 뮤직

비엔나 중앙역에서 열차를 타고 2시간 30분 남짓 달려 잘츠부르크 역에 닿았다. '잘츠부르크는 알프스산 북부와 잘차흐강의 평평한 유역에 자리잡고 있다. 알프스의 경치와 화려한 건축술의 독특한 조합으로 세계에서 아름다운 도시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있다. 오스트리아의 주요관광지이며, 국제회의의 중심지이다. 모차르트의 출생지로도 유명하다. 매년 잘츠부르크축제가 열리는데, 축제는 각종 음악회와 모차르트의 음악으로 구성된다.' 이런 사전적인 정보와 숙소 주소까지 모두 철저히 챙겼지만, '내겐 지금 쓰디쓴 약에 입힌 당의정(糖衣錠) 같은 달콤함이 필요해'를 속으로 외치며 숙소에 짐을 부려놓고 곧장 미라벨궁전으로 달려갔다.

미라벨 정원의 햇살은 화사했다. 며칠 흐린 날씨를 보상이라도 하듯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정원은 역시 영화 속의 그 모습 그대로였다. 프랑스식 정원, 분수와 연못은 대리석 조각과 꽃들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어 마치 맛있는 사탕 같아 보였다. 문 쪽의 청동 페가수스상과 계단은 영화에서 줄리 앤드류스와 아이들이 낡은 커튼으로 만든 옷을 입고 '도레미송'을 부르던 곳이다. 어릴 적 아직 돌아가시지 않은 엄마와 무릎에 담요를 덮고 흑백텔레비전으로 본 그 영화, 엄마는 그때 영화 속 마리아를 가리키며 마치 우리 미영이 같네. 라고 했던가. 고개를 들어보니 산등성이의 호엔잘츠부르크성(城)이 그림 같다.

미라벨 궁전과 정원
미라벨 궁전과 정원

미라벨궁전은 1606년 대주교 볼프 디트리히가 성주의 딸 살로메 알트에게 선물한 바로크 양식의 저택이다. 알테나우로 불리다가 대주교가 세속과 성직의 권리를 잃자 연인 살로메와 그들의 자식들도 함께 추방된다. 나중에 그 흔적을 지우려 '아름다운 성'이라는 뜻의 미라벨이란 이름으로 바꾸었다. 1818년 대화재로 인해 일부가 훼손되었다가 복원해 현재 잘츠부르크시청사로 쓰고 있다. 모차르트가 여섯 살 때 연주를 하기도 했다는 홀로 들어가니 대리석 바닥이 반짝거린다. 오랑게리에는 바로크 예술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호엔잘츠부르크로 가는 길목에 모차르트의 생가가 있다. 게트라이데 거리 중심에서 가장 눈에 띄는 샛노란 외벽이 '역시 모차르트!'를 외치게 한다. 1756년 1월 27일 이 집에서 모차르트가 태어나 1773년까지 살았던 곳이며 이제 그를 기리는 박물관이 되었다. 1층에는 모차르트가 사용했던 침대와 피아노, 바이올린, 자필악보와 서신 등이, 2층에는 오페라 마술피리를 초연 당시의 소품이, 3층과 4층은 가족들의 생활상이 소개되어 있다. 박물관에서 나와 기념품점에서 모차르트 얼굴이 새겨진 포장지로 감싼 초콜릿을 사서 먹었다. 달콤하다.

페스퉁스반 케이블카(푸니쿨라)를 타고 도시 어느 곳에서나 보이는 호엔잘츠부르크로 올라갔다. 너무 아름다운 풍광만 본 탓인지 정작 성 안은 좀 황량해 보였다. 1077년 게브하르트 대주교가 지은 요새로 1차 세계대전 이탈리아 죄수들과 나치 전범들을 수용하는 감옥으로 사용했다니 좀 으스스해 보이기까지 했다. 전망대에서는 잘츠부르크 시내 온 사방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다시 내려와 카페 모차르트에서 멜랑쥐를 마셨다. 달지 않은 크림이 잔뜩 올라 간 비엔나식 커피이지만 피로가 확 풀린다.

논베르크수도원 철문 앞에서 마리아가 견습 수녀일 때 동료수녀들이 부르던 노래를 떠올려봤다. 'She is gentle! She is wild!' 폰 트랩가의 아이들이 그녀를 찾아왔지만 만나지 못한 곳이다. 그곳에서 내려와 들른 돔성당의 은빛 파이프 오르간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되었으며 모차르트의 아버지가 이 성당에 근무하면서 연주했다고 한다. 대성당 뒤편이 폰 트랩 대령이 나치 징집을 피해 일가족이 피신을 한 곳이기도 하다. 나는 회당에 앉아 옛 기억 속의 모든 사람들을 위해 잠시 기도했다.

그곳에서 나와 걷다보니 독일식 가죽멜빵바지 레더호젠을 입은 가이드가 정원이 아름다운 저택 철문 앞에서 무언가 열심히 설명하고 있다. 그가 가리키는 금빛 명패에 검은 필기체로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Herbert von Karajan)과 1908~1989 생몰연도가 선명하게 적혀 있다. 세기의 명지휘자 카라얀의 생가다. 간간이 베를린 필하모닉이란 말이 들린다. 십대 후반 그의 사진 판넬을 방에 걸어두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조수미의 '달의 아이'를 혼자 흥얼거렸다.

헬브룬 궁전
헬브룬 궁전

◆사랑의 유리 누각

잘차흐강을 따라 걷다보면 중세시대 건축물들을 배경으로 마차가 지나갈 때가 있다. 잠시 시간여행을 온 듯 멍하니 섰다가 마카르트다리에 빼곡히 달린 사랑의 자물쇠를 보며 퍼뜩 정신을 차린다. '…푸줏간 주인은 마태수난곡 악보를 고기를 포장하는 데 쓰고 있었다네.…' 아, 마태수난곡은 바흐의 것이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이 가사는 멘델스존의 곡을 개사해서 부르던 어느 영화의 한 장면이었지. 어쨌든 오늘 나는 사랑의 두 가지 유형을 어렸던 내게 각인시켰던 헬브룬궁전의 가제보(유리 누각)를 보러갈 것이다.

중앙역에서 25번 버스를 타고 간 헬브룬궁전은 1616년 대주교였던 마르쿠스 지티쿠스가 지은 여름 별궁이다. 대주교는 장난기 많은 신부님이었던 모양인데, 지인들을 불러 파티를 자주 열고는 곳곳에 설치해 둔 물줄기를 갑자기 틀어 물에 젖는 그 모습을 보면서 즐거워했다고 한다. 그 유리 누각은 그 궁전 안 물의 정원에 있었다.

사랑은 유리 같은 것이란 말이 있다. 소중하게 다뤄야한다는 말일 것이다. 큰딸 리즐이 사랑에 빠져 랄프와 함께 부르던 'Sixteen Going On Seventeen'과 우여곡절 끝에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 마리아와 폰 트랩대령의 'Something Good', 첫 사랑에 빠진 커플과 드디어 그 결실을 맺은 주인공들의 노래가 흐르던 달밤의 유리 누각이 물의 정원 안에 감미롭게 서 있었다.

그곳을 나와 오래된 첫 사랑을 떠올리며 이제는 호텔이 되어 투숙객이 아니면 들어가 볼 수 없다는 레오폴스크론 궁전 옆 호숫가를 걸었다. 폰 트랩대령의 저택이었던 곳이다. 서로의 사랑을 확인했을 때가 그들은 '첫 날 저녁 때 솔방울을 깔고 앉았을 때'와 '바보 같은 호각을 불었을 때'였다고 했다. 내 첫 사랑은 어떻게 시작 되었던가. 그 기억을 더듬어보며 나는 호숫가를 오래 오래 걸었다.

박미영 시인
박미영 시인

박미영(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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