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학 도서관을 가다-영남대] <11> 연경(烟經)

조선시대 담배 문화 종합선물세트
정은진 교수(영남대 한문교육과)

연경
연경

담배. 이것은 언제 우리나라에 들어왔고 어떤 역사와 문화가 있었던 것일까. 이에 대해 명쾌히 대답해 줄 고서가 영남대 중앙도서관 고문헌실 남재문고(南齋文庫)에 있다. 그 명칭은 담배의 경전이라는 의미인 '연경'(烟經)이다.

필자가 이 책의 존재를 처음 접한 것은 15년 전, 고(故) 벽사(碧史) 이우성(李佑成) 선생님께서 이끌었던 실시학사(實是學舍) 강독 모임에서였다. 동양의 전통에서 '경'(經)이란 유교 경전이나 불경처럼 불변의 진리를 상징하는 저서에 흔히 쓰인다. 그런데 담배를 다룬 저서에 경을 쓰다니, 그 대담한 인물이 누구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인물은 바로 이옥(李鈺·1760∼1815)으로 그의 본관은 전주(全州)인데, 초라한 무반계 출신 선비였다. 그는 1792년부터 1795년까지 과거에 여러 번 응시하였으나, 번번이 정조의 문체정책에 저촉돼 군역까지 져야 하는 비운을 겪고 경기도 남양에 낙향해서 저술에만 몰두했다.

그의 벗 강이천(姜彝天·1768∼1801)이 이옥을 두고 '붓끝에 혀가 달렸다'고 할 정도로 이옥은 문학적 재능이 뛰어나 다양한 저술을 남겼는데, '연경'은 그 중 일부이다. 이옥의 호를 딴 화석장본(花石庄本)이라는 판심(版心)과 9줄로 구성된 목판으로 찍어낸 한지에 매우 정연하게 필사되어 있다.

이옥은 굉장한 담배 애호가였다. 일례로 이옥은 유배 길에 들렀던 송광사에서 담배를 꺼내 피워 이 절 사미승의 저지를 받자 담배와 향이 공기 중으로 흩어지면 똑같이 실체가 없는 무(無)가 된다는 논리를 펴기도 했고, 자신의 집 축담 앞에 담배를 심고 재배하며 담배를 자라게 도와주었던 강아지풀이 어느 날 담배의 성장을 막는 것을 보며 인간관계를 떠올리기도 하였다.

이처럼 이옥에게 담배는 그를 위로해주고 깨달음을 주는 삶의 동반자이자, 붓끝으로 표현할 수 있는 문학적 소재였다. 지금 시대 커피처럼 이옥이 살던 조선 후기 사회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담배를 즐겼다. 그러나 이옥은 말한다. 당시 사회에 담배가 유통되고 소비되지만, 정작 담배에 대해 모르는 것 투성이라고 말이다.

때문에 그는 생애 말년인 1810년 총 4부분으로 '연경'을 구성하였다. 1권에는 씨 거두기부터 모내기·약치기·잎 따기 등 담배 재배 방법을, 2권에는 담배의 유래와 성질·담배의 등급과 가격·담배 피는 방법 등을, 3권에는 담배 써는 칼을 비롯해 쌈지·받침대 같은 담배 도구를, 4권에는 담배의 효용과 흡연자의 꼴불견·흡연의 품격 등을 기술하였다.

'연경'은 성인 손바닥으로 움켜쥘 수 있는 크기의 25장에 불과하지만, 조선시대 담배 문화의 종합선물세트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담배에 대한 사랑과 관심, 독서와 재배 체험, 일상을 중요시여기는 이옥의 저술 의지가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누구보다 담배를 애호한 이옥이었지만 병자 앞이나 여러 사람이 모인 곳, 담배 연기가 방해되는 곳에서는 피지 말아야 한다고 하며 타인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았다.

책은 천하의 공물(公物)이라고 했다. 사람 발길이 끊긴 책은 썩은 재화에 불과하다. 사람의 손길과 숨결이 닿을 때 그 책은 부활할 수 있을 것이다. 영남대 도서관에는 현재를 있게 한 과거의 기록이자, 미래를 열어 줄 고서가 웅크린 채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다.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만 못하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 가을 똑똑! 문을 두드려 옛 책의 향기에 젖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정은진 교수(한문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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