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지글지글-지면으로 익히는 글쓰기] 수필- (4)의도를 들키지 마시라

장호병 수필가

장호병 수필가
장호병 수필가

"엄마, 1절만!"

영양가에도 불구하고 내용과 의도를 알았다는 뜻이다. 글쓰기도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수필은 사실 중심의 기록이 아니라 의미의 생산이다. 보는 위치에 따라 '문'을 '곰'으로 읽을 수 있듯이 의미는 팩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제시하는 관점에 달려 있다.

그림 실력이 뛰어난 사람도 무슨 공인지 구별되게 그리기는 쉽지 않다. 같은 동그라미라도 탁자 위 그물망을 배경으로 하면 탁구공이다. 하늘에 그려져 있다면 해나 달로 받아들인다.

의미는 그림 자체가 아니라 머릿속에서 구성된다. 관점, 배경지식, 소속 집단의 문화에 따라 의미는 달리 구성된다. 개가 반갑다고 꼬리를 들어 올리면 고양이는 싸움을 걸어오는 줄 안다. 그들이 앙숙이 된 것은 의미를 구성하는 서로의 코드가 다르기 때문이다.

옛 로마에서 있었던 일이다. 전장에서 수많은 공을 세웠던 애꾸 장군이 만년에 자신의 초상화를 하나 남기고 싶어 했다. 측근이 일류 화가를 불러 의뢰했더니 그림은 왼쪽 눈이 찌그러진 실제 모습이었다. 장군의 마음이 편치 않아 다른 화가에게 부탁했다. 이번에는 양쪽 눈이 온전했다. 역시 마음에 차지 않았다. 이를 본 한 젊은이는 왼쪽 눈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옆모습을 그려서 왔다. 넘치는 정기와 수천 병사를 호령했던 카리스마가 눈빛에서 흘러나왔다.

정보 전달을 위한 기록이라면 미흡할 수 있다. 그렇다고 왜곡된 정보는 아니다. "정작 오늘날 필요한 발상의 전환은, 달걀을 어떻게 하면 세울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에 갇혀 그 답을 모색하는 일에서 가능한 것이 아니라, 달걀의 모양새가 왜 타원형인가를 진지하게 묻는 일에서 시작된다. (중략) 문명사적 위기를 극복하려는 마음이야말로 진정한 발상 전환의 출발점이 아닌가." (김민웅, '콜럼버스여, 달걀 값 물어내라' 결미)

밑동을 깨서 달걀을 줄세워 쌓았다는 '콜럼버스의 달걀'이 발상 전환의 예로 회자된다. 그러나 작가는 이런 생각은 제국주의적 팽창 정책을 지지하는 사고의 원형으로 얼마나 많은 나라가 달걀 세우기를 당했는지 비판한다. 달걀이 왜 타원형인지 생명의 섭리에서 발상의 전환을 시작해야 한다는 의미를 재구성하였다.

수필 쓰기는 사실을 기반으로 하지만 작가가 드러내려는 의도가 분명하여야 한다. 배경의 동원, 포커스를 맞춘 묘사, 관점을 달리하는 의미의 재구성이 효과적일 수 있다.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닙니다.", "한 발자국만 앞으로."

남자 화장실에서 흔히 만나는 문구다. 남자 화장실 변기 안에 가짜 파리를 붙여 놓았더니 소변이 변기 밖으로 튀지 않았다. 강요하지 않았음에도 태도 변화를 일으키는 이런 일을 '넛지(nudge) 효과'라 한다. 수필에서도 넛지 효과처럼 애써 설명하기보다는 그리듯이 쓴다면 작가의 의도는 들키지 않으면서 의미는 제대로 전달될 것이다.

장호병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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