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그립습니다] 박진희(청운대 인간과 동물 외래교수) 씨 부친 故 박창수 씨

젊은 나이에 쓰러져 자녀 4명 남겨두고 하늘나라로 떠나셨지요
결혼할 때 아빠 생각나 울었지만 강의하며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1980년 충주 수안보 한 계곡으로 여행을 떠난 아빠 박창수(맨 오른쪽) 씨와 박진희(앞줄 왼쪽 두번째) 씨 가족의 여행 기념 사진. 가족제공.
1980년 충주 수안보 한 계곡으로 여행을 떠난 아빠 박창수(맨 오른쪽) 씨와 박진희(앞줄 왼쪽 두번째) 씨 가족의 여행 기념 사진. 가족제공.


아빠. 그립고 사랑하는 내 아빠. 아빠는 52세 젊은 모습으로 멈춰 있다.

고3. 6월 6일 난 그날을 잊을 수가 없다. 휴일이지만 고3이라 학교를 서둘러 나섰고, 점심시간 집에 들었을 때 아빠는 뇌출혈로 쓰러져서 응급실로 가신 상태였다.

병원에서 아빠는 오래도록 깊은 잠에 빠지셨고, 우리는 기도하며 깨어나시기를 기도했다. 2주 정도 되어서 깨어나셨는데 아빠의 몸은 예전과 달랐다. 집으로 돌아와서 한 주 정도 함께 지냈는데 말도 못 하고 한쪽 몸을 쓰지 못하셨다.

도 대표 씨름선수, 육상선수를 하셨고, 단단한 근육으로 건강하셨던 아빠가...

학교에서 밤 12시가 되어 돌아오면, 나는 아빠와 손잡고 노래도 하고 안아드리며 많은 이야기를 하곤 했다. 아빠를 병간호하는 엄마의 모습이 너무나 안쓰러웠고, 몸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아빠가 너무나 가엾어서 혼자 있을 때는 참 많이도 울었다.

그래도 살아 계셨으면 좋겠다고 기도하고 또 기도했는데... 쓰러지신 지 3주 만에 아빠는 아픔 없는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아빠가 돌아가실 때 엄마 연세 불과 49세. 우리 4남매는 모두 학생이었다.

아빠는 아이들을 좋아하셔서 4남매를 낳았고 우리를 참 많이 사랑하셨다. 재밌고 유머러스하시고 사람을 좋아하셔서 우리 집에는 항상 사람들이 북적북적했다. 엄마는 요리 솜씨가 좋으셔서 오시는 분들 음식 대접을 하였다. 나는 그러한 우리 집이 너무 좋았다. 아빠는 내가 초등학생 때 중동지역 파견근무, 서울 근무를 하셔서 떨어져 살았었다. 아빠가 오시면 4남매가 서로 아빠 차지하겠다고 등에 무릎에 매달리곤 했다. 외국에 계실 때는 편지를 하며 그리움을 달래기도 했다. 아빠의 편지가 그 시절에는 유일한 우리들의 즐거움이먀 삶의 낙이었다.

집에 계실 때는 여행과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셔서 우리를 데리고 많이 여행해 주셨고, 그 기억을 사진으로 남게 해주셨다. 비록 떨어져 있는 시간이 많았지만, 아빠와 함께 있는 시간은 그리움과 사랑을 메꾸기에 충분했다.

너무나 젊은 나이에 아빠가 떠나시고 강해 보였던 엄마가 병이 나셨다. 열이 나고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셨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절절하고 눈물이 줄줄 흐른다. 엄마도 떠나실까 봐, 엄마 마음이 얼마나 아프셨을까... 엄마도 슬프셨을 텐데 표현도 마음대로 못하고 남겨진 4남매에 대한 부담이 얼마나 크고 암담하셨을까... 1주일 정도 엄마가 나으실 때까지 엄마 옆에 꼭 붙어서 안아드리며 기도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것밖에 없었다. 내가 돈 많이 벌어서 우리 엄마 내 엄마 행복하게 해 드려야지... 결심하며 우리 엄마 건강하게 해주세요!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故 박창수(오른쪽) 씨 생전모습. 가족제공.
故 박창수(오른쪽) 씨 생전모습. 가족제공.

엄마는 회복하셨고 1주일 고민 끝에 나는 고3이지만 나의 꿈을 잠시 보류했다. 그리고 사회생활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엄마는 대학교 가라고 하셨지만, 엄마를 설득해서 나의 진로를 변경했다. 그 선택은 지금 생각해도 후회되지 않는 잘한 결정이었다.

아빠는 떠나셨지만, 내 마음속에는 늘 함께하셨고, 일 년에 서너 번은 보여 주신다. 그래서인가 이 세상 하늘 아래 어딘가에 살아계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결혼할 때 아빠가 가장 많이 생각났고 울면서 결혼식을 치렀다. 아빠가 보고 싶고, 고생하신 엄마에게 고맙고 죄송해서 우는 신부가 되었다. 울던 신부는 씩씩하게 참 열심히 잘 살았다. 아빠의 유쾌하고 유머센스 유전인자를 이어받아서 유쾌하게 살았고, 엄마의 기도로 현재 강의하고 심리 상담하며 베푸는 사람으로 잘살게 되었다.

그립고 보고 싶은 내 사랑 내 아빠. 저는 아빠가 떠나시던 그 나이만큼 왔어요. 굵고 짧게 멋지게 살겠다던 아빠! 아빠 엄마가 내 엄마 내 아빠여서 너무 자랑스럽고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저도 멋지게 살다가 아빠 엄마가 계시는 그곳으로 갈게요.

우리 곧 만나요. 사랑해요 아빠. 사랑해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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