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내멋대로 그림읽기] 황우철 작 'rainy day picnic' 90x120cm 2020년

에두아르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식사'를 보면서 언뜻 이해하지 못한 것 중 하나는 등장인물 중 한 여인이 옷을 홀딱 벗은 나체로 있다는 점이다. 2명의 남성은 구레나릇 수염에 검은 정장차림인데 유독 여인 둘 중 한 명은 옷을 걸치지 않았고, 또 다른 한 여인은 왜 알몸이 비치는 잠옷차림일까.

이에 대해 마네는 "밖에 나가 어떤 대상을 보게 되면 그림 속 누드를 보듯 어둠과 밝음의 미세한 변화를 데생할 때처럼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에 착안해 그렸을 뿐이다"고 했다. 그야말로 그는 "보이는 대로 그린 것이다"고 항변했다. 마네는 단지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화폭에 옮긴 잘못(?)밖에 없다손치더라도 왜 누드인가.

황우철 작 'rainy day picnic'도 왜 하필 비오는 날 소풍을 나섰나하는 점이다. 우산 가장자리에 빗물이 흘러내리는 양으로 봐서 지나가는 비도 아니고 엄청 많이 내리는 비다. 그럼에도 가족인 듯한 세 사람은 도시락과 스케치북, 그림 도구를 담은 가방을 놓칠세라 꽉 틀어지고 있다.

비에 젖은 그림자는 화면 아래쪽 땅에 드리워져 있고, 화면 위쪽 하늘은 자주색과 암청색으로 낮게 깔려있다. 하지만 이 작품의 화면의 절반 이상은 아주 밝은 색의 노랑이 점령하고 있어 우중충한 날씨인데도, 그림 전체의 분위기는 왠지 모르게 즐거운 기분이 들게 한다.

이처럼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식사'의 '누드'나 황우철의 '비오는 날의 소풍'에서 '비'가 의미하는 상징성은 매일 매일의 일상 속에서 화가의 시선에 잡힌 특정 순간의 영상이자 삶의 모티브이다. 마네의 '누드'가 빛의 변화에 따른 오브제의 전환이라면, 황우철의 '비'는 새로운 형상을 만들어내려는 작가적 사유의 결과물로 볼 수 있겠다.

황우철의 눈이 삶의 풍경에 가닿는 순간, 파렛트라는 용광로에서 녹여낸 그의 그림은 붓끝에서 피어나는 터치와 색을 통해 삶의 실존적 조건들이 빚어내는 마법을 펼쳐낸 것이다.

현재 중국 상하이교통대 교수로 재직하며 드로잉, 회화, 조각, 시, 시나리오, 영화 등 자신의 작품세계를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며 멀티플 아티스트로 활동하는 황우철은 자신의 삶과 꿈을 작품에 반영하며 강렬한 감각적 요소를 사용해 특유의 스타일의 빛과 색채로 작업하고 있다.

서울대 서양화과를 다니면서 연극반 동아리 활동을 했고 지금도 대부분의 삶을 유목민처럼 짧게는 1년, 길게는 5~8년씩 외국에서 생활하며 문화적 환경의 변화 속에 사는 작가에게 예술이란 그가 배우며 살아가는 장소를 몸소 체험한 그 자신의 에토스(원칙이나 규범)와 파토스(열정과 고뇌)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황우철 작 'rainy day picnic'이 주는 메시지는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비오는 날에도 소풍 가듯 스케치북과 그림도구 가방을 챙겨나서는 건 화가의 삶의 전부다. 삶이란 늘 화창한 날씨만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흐리고 바람불고 뇌우가 치는 거친 날들도 많다. 이런 날에도 화가라면 그림을 그려야 한다. 삶이 예술이고 예술이 곧 삶인 실존적 상황에 처한 작가라면 피할 수 없는 운명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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