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아파트 경비원에 갑질 없어질까?…처우 개선 없이 '글쎄요'

20일부터 공동주택관리법·스토킹 처벌법 시행…최대 과태료 1천만원 실효성 의문
업무상 범위 명시 됐다지만 "재계약 처지에 거절 힘들어"
일부는 "업체 갑질이 더 심각"

아파트 경비원. 연합뉴스
아파트 경비원. 연합뉴스

아파트 경비원에게 '갑질'할 때 최대 1천만 원의 과태료를 내야 하는 법이 시행되는 가운데 이를 둘러싸고 현장에선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19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새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이 공포돼 21일부터 적용된다. 시행령은 아파트 등 공동주택의 경비원이 경비 이외에 할 수 있는 업무 범위를 ▷낙엽 청소 ▷제설작업 ▷재활용품 분리배출 정리 및 감시 ▷위험 발생을 방지하기 위한 차량 이동 조치 ▷택배·우편물 보관 등으로 제한했다.

이에 따라 경비원은 택배 물품을 각 가정에 배달하거나, 대형폐기물을 수거해 운반하는 등 개별 세대와 개인 소유물 관련 업무를 할 수 없게 된다. 대리주차 역시 금지다. 이를 지키지 않은 아파트 주민은 지자체의 시정 명령을 이행하지 않을 시 최대 1천만 원의 과태료를 내야 한다. 위반한 경비원이 소속된 경비업체는 허가 취소까지 가능하다.

이처럼 '입주민 갑질'을 금지한 법이 전격 시행되지만 현직 경비원들은 시큰둥한 분위기다. 경비원의 불안정한 고용지위에 변화가 없는 한 법이 제대로 지켜질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다.

대구 북구 아파트의 경비원 A(70) 씨는 "인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도 민원이 들어가는데, 3개월마다 재계약을 해야하는 처지에 법이 생긴다고 해도 주민이 부탁하는 것을 면전에 대고 거절하기는 힘들다"고 했다.

수성구의 한 아파트 단지 경비원 B(29) 씨는 "법적 다툼으로 한 아파트에서 경비 일을 그만두게 된다면 경비업체나 아파트 동 대표들 사이에서 블랙리스트가 돌아 새로 일자리를 구하는 게 아예 불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근본적인 처우 개선과 함께 경비업체의 갑질이 더 심각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7년 동안 달서구 한 아파트 단지에서 경비 일을 하는 C(72) 씨는 "대리주차나 개별 세대 배달 같은 부탁은 들어본 적이 없다. 정부가 과도한 몇 개의 사례만 보고 보여주기식으로 만든 법 같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경비원들이 쉴 수 있는 숙소가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다는 게 문제다. 경비원 10명이 근무하고 있는데, 5명이 근무할 때 나머지 5명은 한 방에서 휴식을 취한다. 그런데 5명이 들어가기에는 방이 너무 좁아 나는 그냥 지저분하더라도 아파트 지하실에서 쉰다"고 했다.

경비 일을 시작한 지 1년 4개월 됐다는 D씨는 "입주자의 갑질보단 경비업체의 갑질이 더 심각하다"며 "순찰 업무 스케줄에 지장이 생긴다는 이유로 휴가를 쓰지 못하게 한다. 또 1년이 지나면 퇴직금을 줘야 해 10, 11개월 단위로 계약을 하는 경우도 많다. 심지어 재계약 때 업체에서 30, 40만원 정도의 뒷돈을 요구하는 일도 있다"고 했다.

한편 일부 시민은 일상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선행까지 '갑질'로 비춰질 수 있어서 우려된다는 반응을 보였다. 남구의 한 아파트에 살는 E(65) 씨는 "이곳은 몸이 불편한 노인들이 많이 살아 경비원이 선의로 물건을 옮겨주는 일이 있다. 이를 '갑질'로 보고 금지하는 건 매정한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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