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무엇일까’와 ‘무엇이든 될 수 있다’

김지영 극단 만신 대표

김지영 극단 만신 대표
김지영 극단 만신 대표

나에게는 나이 차가 꽤 나는 동생이 있다. 농담 삼아 하는 말이지만 그 녀석을 업어 키우며(동생의 유치원 원서접수도 내가 했다) 오히려 나이 어린 동생이 툭 내던지는 말에 감동과 깨달음을 얻었던 순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서 그때의 감동과 깨달음 역시 어느새 기억 뒤로 밀려나버렸다.

얼마 전 어느 무용공연의 영상을 관람했다. 그 공연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일상에서 하나의 고정된 존재로 규정되는 대상을 끊임없이 새로이 보게 해준다는 점이었다. 대상은 어떻게 형태를 이루는가. 다른 대상과 어떻게 관계하는가. 혹은 어떻게 움직이는가에 따라 새로운 무언가가 된다.

예를 들어 퍼포머가 빈 페트병 하나를 들고 있을 때 그것은 그저 페트병일 뿐이다. 하지만 똑같은 병들을 특정 형태로 여러 개 붙여놓으니, 이것은 '그저 페트병을 붙여놓은 덩어리'가 아닌 고층빌딩처럼 보인다. 그러다 이것을 상대에게 들이대고 상대가 덜덜 떨고 있으니 이때는 커다란 총이 된 것이고, 무용수들의 등에 매달려 흔들릴 때면 팔다리를 움직이며 춤추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공연을 보는 동안 나의 태도는 조금씩 변해갔다. 처음에는 내가 보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강박 속에 '저건 뭘까', '저건 또 무슨 의미일까'라고 끊임없이 질문하며 공연을 쫓아갔다. 하지만 어느새 '저건 뭘까'라는 질문이 '와, 저건 무엇이든 될 수 있구나'라는 감탄으로 바뀌어 있었고, 그때부터 순간순간 눈앞에 펼쳐지는 공연의 모든 장면은 재미있는 놀이처럼 여겨졌다.

영상 속 어린이 관객들은 나보다 훨씬 일찍부터 공연을 즐기고 있었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쉬지도 않고 깔깔대며 재미있게 공연을 본다.

그것을 보며 문득 '나는 저 아이들과 무엇이 다르기에 이 재미있는 놀이를 뒤늦게 즐길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곤 아마도 '저건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생각 대신 '저건 분명히 정해진 무언가이다'라는 생각에 갇혀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 보게 되었다.

아이와 어른의 세계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한다면, 어른의 세계는 존재와 존재를 명확히 구분하고 정의(definition)내리는 세계인 것 같다. 즉 이것은 이것이고, 저것은 저것인 세계 말이다. 생존을 위해 '사실'들을 손에 쥐고 씨름하면서, 어느새 우리는 상상의 즐거움을 잃은채 살고 있지는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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