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로 활약하다 경찰청장기 무도특채에 당당히 합격해 경찰로 제2의 삶을 시작한 여성들이 있다. 대구 달서경찰서 송현지구대 서지은(27) 순경과 강북경찰서 관문파출소 김해영(26) 순경이 그 주인공들이다.
지난해 나란히 합격한 이들은 10년이 넘는 세월을 오로지 운동에만 전념했다. 다른 사람들이 밖에서 시간을 보낼 때 서 순경과 김 순경은 체육관 안에서 구슬땀을 흘렸다. 그러다 또다른 삶을 찾고자 경찰에 도전했고, 운동복이 아닌 제복을 입게 됐다.
◆ 태권도 국가대표에서 서지은 순경으로

서지은 순경은 알아주는 태권도 선수였다. 그는 지난 2015년 태권도 여자 62㎏급 국가대표선발전에서 1위를 차지한 후 국가대표 활동했다. 전국체전에서 금메달을 거머쥐는 등 눈에 띌 만한 기록도 상당수 보유하고 있다.
서 순경이 태권도 선수로서의 길을 안내해준 건 도장 사범님이었다. 그는 "도장에 동생과 같이 다녔는데 흰띠였던 동생이 품띠 유단자와의 겨루기에서 졌다. 누나로서 동생을 지키고 싶었고, 겨루기 실력을 익혀 제압했다. 이를 지켜본 사범님이 겨루기에 소질이 있다고 말씀해주셨다"고 말했다.
서 순경은 베이징 올림픽 정상에 섰던 손태진 선수가 성장한 경북체고를 거쳐 한국체대로 진학했다. 워낙에 쟁쟁한 선배들이 많았던 탓에 주목받기란 쉽지가 않았다. 그렇게 졸업을 앞둔 4학년이 된 해 2015년.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1위를 차지했다. 서 순경은 "1위로 국대로 뽑힐 줄 몰랐다. 시합을 앞두고 달팽이관 어지럼증이 심해 힘들었는데, 그동안의 노력으로 시합에 참여한 8명 가운데 으뜸이 됐다"고 말했다.
국가대표의 시간은 오래가지 못했다. 선발된 지 1년 만에 왼쪽 아킬레스건이 끊어졌다. 1년에 가까운 재활 치료 끝에 다시 시합에 섰지만, 이전과 다른 성과를 받아들이기란 힘들었다. 그렇게 슬럼프의 시간 속에서 은퇴와 동시에 지도자의 길을 고민했으나 누구를 가르치는 직업이 자신의 성향과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때 제복과 체계적인 업무 질서가 있는 경찰이 눈에 들어왔다. 선수 경력을 바탕으로 2019년 무도특채에 지원했으나 체력검정에서 50점 가운데 41점으로 합격선에서 밀렸다. 서 순경은 "서류를 통과한 9명 가운데 나를 제외하고 대부분 48점 이상이었다. '경찰도 내 길이 아닌가'하는 낙담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이후 대학 시절 조교였던 박명은 경장으로부터 '한 번 더 해보면 분명 잘할 수 있을 거다'라는 격려에 본격적으로 면접 준비와 적성 검사를 준비해 지난해 당당히 무도특채에 합격했다.
경찰이 된 서 순경은 제복이 주는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를 느꼈다고 한다. 그는 "경찰서 실습 도중 변사체를 봤는데 트라우마가 생길 정도로 너무 놀랐다. 겨루기할 때도 다리를 떨어본 적이 없었는데, 다리가 떨릴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제복을 입은 경찰이었고, 시민들의 안전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과감히 트라우마를 극복했다"고 말했다.
◆ 업어치기에 특화된 레슬링 김해경 선수, 이제 경찰 제복이 좋아

김해영 순경은 처음부터 레슬링에 몸을 담은 건 아니었다. 씨름을 했던 아버지가 복싱과 유도를 권유했고, 유도를 호기심에 택했다. 유도 기술도 모르는 초등학생 6학년이었지만 아버지의 운동신경을 물려받은 덕분인지, 중학교에서 스카웃 제의가 들어왔다. 중학교에서는 유도선수로 추계대회와 전국대회에서 1등을 휩쓸었다. 특히 그는 자신만의 업어치기로 상대 선수들을 압도했다.
유도 선수로서 승승장구를 달리던 그였지만 고등학교 2학년 무렵 슬럼프가 찾아왔다. 1등이었던 입상 경력이 그해는 무색해졌다. 자신의 업어치기 기술을 더 발휘할 수 있을 것 같은 레슬링 종목이 눈에 들어왔다. 그의 선택은 탁월했다. 고3이 된 2012년. 그해 레슬링 전국대회 모든 시합의 1등은 김 순경 몫이었다.
레슬링에 불이 붙었던 김 순경은 경북외국어대 레슬링부에 들어갔지만, 입학과 동시에 학교가 폐교됐다. 한창 선수경력을 쌓아야 할 그였지만 운동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레슬링복을 벗어 던지고 잠시 동안 아르바이트에 몸담았다.
그러다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다. 대구시청 실업팀 레슬링부에서 팀에 들어오라는 제의가 온 것이다. 김 순경은 "운동을 쉰 지 2년이었다. 장기간 공백이 있었던 선수에게 스카웃 제의를 하는 건 없기 때문에 믿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2016년부터 대구시청 레슬링부 소속이 된 그는 전국체전에서 메달을 손에 넣었다. 이때유도에서의 업어치기를 레슬링에서 활용했다. 그는 "레슬링의 기술은 밑에서 파고드는 태클이 대부분인데, 유도에서의 경력이 그대로 적용돼 업어치기로 수상을 많이 했다"라고 말했다.
수상경력이 화려해지던 2018년 무릎 십자인대가 파열됐다. 국가대표 선발전도 앞두고 있던 터라 아쉬움이 컸다. 이듬해에도 부상의 연속이었다. 팔꿈치를 크게 다친 그였지만 국가대표를 놓치지 않겠다는 각오로 6개월이 걸리는 재활을 3개월로 당겼다. 그리고 꿈에 그리던 국가대표 자격으로 세계선수권과 아시아선수권에 당당히 참가했다.
국가대표의 꿈을 이룬 김 순경이었지만 십자인대 파열과 팔꿈치 부상으로 예전 기량을 찾는 게 어렵다고 느꼈다. 이에 그는 선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판단, 미래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경찰 제복이 멋있어 보였던 그는 무도특채에 집중하기로 했다.
지난해 무도특채 레슬링 1위로 합격했다. 경찰 신분으로 지내는 현재 보람을 많이 느낀다. 중앙경찰학교에서의 교육 기간 동안 체포술 수업 도중 레슬링의 경력으로 동기생들에게 교육을 했고, 안전하게 제압하는 방법을 전수했다. 그는 "무도특채로 들어온 경찰들은 운동을 했기 때문에 대부분 힘이 세다. 제압하는 과정에서 자칫 상대방이 다칠 수도 있기 때문에 레슬링 기술들을 알려주곤 했는데 동기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어서 좋았다"고 했다.
경찰이 된 김 순경은 한 가지 다짐한다. 필기시험을 치고 들어오는 경찰들과 달리 무도특채로 들어왔기 때문에 공부를 더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김 순경은 "형법과 같은 공부 없이 들어오다 보니, 자칫 현장에서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앞으로 시민을 지킬 수 있는 그런 경찰이 돼야겠다는 마음가짐이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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