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내가 읽은 책] 엄마이기 때문에

숨은 눈/ 장정옥 지음/ 학이사 펴냄/ 2018년

단풍이 든 나무 사이로 계곡물이 흐르고 있다. 신복순 제공
단풍이 든 나무 사이로 계곡물이 흐르고 있다. 신복순 제공

소설은 엘리베이터 천장을 살피는 것으로 시작된다. 우리가 가는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CCTV.

"언젠가부터 횡단보도를 건너는 인파들 사이, 혹은 버스정류장이나 카페 곳곳에서 숨은 눈이 나를 따라다녔다. '널 지켜보고 있어.' 그까짓 카메라 렌즈쯤이야. 뱃속에 돌을 품고도 살아내는데."(9쪽)

이 소설은 한 편의 경장편 소설과 여섯 편의 단편소설로 구성돼 있다. 표제작 '숨은 눈'은 2019년 김만중문학상 소설부문 대상을 받은 작품이다. 지금 이 시대에 걸맞은 여성 서사란 무엇인지에 대한 가능성을 제시한 작품이라는 호평을 받으며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작품집에 등장하는 여자들의 인생은 힘들고 불행하다.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 거기에 딸려 오는 새 가족과 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소설 속의 여자들은 굴곡 많은 삶을 산다. 소설에서, 믿었던 가족은 배신을 하고 도움이 되기보다는 고통을 얹어준다.

숨은 눈에서는 남편이 바람을 피워 이혼을 했음에도 딸과의 관계 때문에 내키지 않아도 전 남편을 간병하는 여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섬'에서는 암에 걸린 여자가 음식을 못 먹고 피를 토하는 고통 속에서 차라리 죽기를 바라지만, 10살 된 딸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으로 다시 버티고 일어선다는 이야기다.

이처럼 수록된 작품에서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상처입고 비틀거리는 여자들의 삶을 통해서 결혼생활의 부조리와 허상을 꼬집는다. '여자에게 결혼은 무엇이며, 가족의 의미는 무엇인가'라는 정체성을 돌아보게 한다.

하지만 모두 흔들리고 갈등하며 거친 비바람을 맞아도 다시 일어선다. 그 힘은 '엄마'라는 이름에서 나오고, 그래서 쓰러지지 않고 스스로를 지켜낸다.

"인간은 전지전능한 신의 능력을 믿으며 경배하고, 신은 자신을 닮은 인간들이 평화롭게 살기를 바란다고 믿은 것이 인간의 일방적인 환상에 불과한 것이었는지. 신과 인간의 관계가 두 개의 벽처럼 그렇게 막막한 것이라면, 극단의 고통에서 기어 나온 인간이 신의 재단에 엎드려 두 손을 모을 때 신이 어떤 얼굴로 인간을 바라보는지."(121쪽)

장정옥 작가의 문장은 힘이 있고 흐트러짐이 없다. 섬세한 감정선을 살리는 심리묘사 또한 잘 드러낸다. 그래서 읽는 이를 쉽게 빠져들게 한다.

작가는 이 작품집에서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나무가 해를 향해 넓게 가지를 뻗는 것은 살아남기 위한 몸짓이라며, 사람이고 나무고 스스로 영역을 넓히고 제자리를 굳건히 지켜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작가는 말한다.

매일신문 신춘문예와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당선돼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한 장정옥 작가는 다시 태어나도 다른 글이 아닌 소설을 쓰고 싶다고, 소설에 대한 지극한 애정을 어느 인터뷰에서 드러냈다.

이 책을 덮으며 생각해봤다. 나는 어떠한 엄마로 기억될까. 누구나 엄마가 되지는 않지만 누구든 엄마를 갖고 있다. 엄마라는 것은 의무와 굴레를 씌우기도 하지만 살아지게 하는 힘을 주기도 한다. 몹시 헌신적이었던 엄마를 기억하며 슬프게 읽은 책이었다.

신복순 학이사독서아카데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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