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병우 성서종합사회복지관 관장 "대구를 장애인체육 모범도시로"

"차별 없는 세상 만들기 위해 최선"
'체육발전 정부 포상' 맹호장 받아…서울장애인올림픽대회서 은1·동2
전석복지재단 사무총장 맡아 활동…대구시장애인복지위원회 위원도

20일 오후 대구 달서구 성서 종합사회복지관에서 김병우 관장이 자신이 진행 중인 휠체어 농구중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통원 기자. tong@imaeil.com
20일 오후 대구 달서구 성서 종합사회복지관에서 김병우 관장이 자신이 진행 중인 휠체어 농구중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통원 기자. tong@imaeil.com

"대구가 장애인 체육의 문턱이 없는 도시가 될 수 있도록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20일 오후 대구 달서구 성서종합사회복지관에 들어서자 휠체어를 탄 중년 남성이 눈에 띄었다. 1988년 열린 서울장애자올림픽대회(현 패럴림픽) 국가대표이자 메달리스트인 그는 김병우(54) 관장이다. 국가대표 생활 이후 그는 25년간 사회복지 영역에서 힘써오고 있다. 김 관장은 최근 장애인 재활 체육을 위한 스포츠센터와 노숙인 복지시설을 운영하며, 자생 능력을 기를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데 노력한 공로로 체육훈장 맹호장을 받았다.

그는 1살에 소아마비를 앓으면서 그 후유증으로 두 다리를 쓰지 못하게 됐다. 세 차례의 수술 끝에 지금은 목발을 짚고 이동할 수 있지만, 어린 시절에는 휠체어 없이는 이동이 불가능했다. 그러나 불편한 것으로 생각하기보다 오히려 그는 장점이라고 생각했다. 워낙 어릴 때부터 휠체어 생활을 한 그는 몸의 일부라고 생각했고, 남들보다 빠르게 이동할 수 있다며 긍정적인 부분을 더욱 찾으려 했다. 하지만 다리가 불편했던 그에게 학교는 혼자 넘는 방문 문턱보다 높게 다가왔다.

그러던 중 특수학교에 진학했고 그곳에서 휠체어 육상대회를 알게 됐다. 남들보다 휠체어를 잘 탔던 그에게 학교 측의 제안으로 1981년 10월에 열린 제1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에 출전, 우수한 성적으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는 당시 차 한 대도 없는 뻥 뚫린 도로를 달리면 아스팔트 열기와 시민들의 함성만 들렸고, 살아있음을 느끼는 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장애인을 바라보는 동정이나 연민이 아닌 스포츠 선수를 응원하는 박수를 받고 있다는 것에 감격했다.

이후 수년간 대회에 참가하며 좋은 성적을 거뒀다. 고등학생이 된 그는 태극 마크를 받고 싶다는 포부도 생겼다. 국가대표로서 최선을 다해 대한민국을 알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3이 되면서 진학 혹은 취업이라는 갈림길에 고민이 깊어졌다. 목발을 짚고 휠체어를 타고 벽을 짚어가며 계단을 오르고 내리며 공부에 매진해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했다.

첫 학기 중간고사를 치른 뒤, 88올림픽 개최 후 연이어 장애인올림픽이 열린다는 소식을 접하게 됐다. 꿈꿔오던 태극마크를 가슴에 걸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으로 생각했다. 우여곡절 끝에 1988년 3월 서울장애인올림픽대회 휠체어육상 국가대표로 태극마크를 달게 됐다. 선발 이후 7개월 남짓한 훈련 기간 동안 쉬지 않고 최선을 다했다. 그 결과 10월에 열린 장애자 올림픽에서 은메달 1개, 동메달 2개를 목에 걸었다. 입상에 따라 체육훈장 백마장도 받았다.

1989년 열린 일본고베장애인 아시아 경기대회에 참가한 김병우 관장이 휠체어를 밀고 있다. 이 대회에서 김관장은 금메달 4개 등 총 7개의 메달을 목에 걸었다. 본인제공.
1989년 열린 일본고베장애인 아시아 경기대회에 참가한 김병우 관장이 휠체어를 밀고 있다. 이 대회에서 김관장은 금메달 4개 등 총 7개의 메달을 목에 걸었다. 본인제공.

이듬해 열린 제5회 일본고베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 휠체어 육상부문에서 한국 대표로 금메달 4개, 은메달 2개, 동메달 1개를 목에 거는 쾌거를 이뤄냈다. 그야말로 메달을 싹쓸이한 것이다. 장애인 대회가 열린 후 한국 사회는 여러 제도적 변화가 있었다. 하지만 학교 등 건물에는 여전히 문지방과 계단 등이 현실의 벽을 만들었다. 그는 포기를 모르는 특유의 근성으로 대학 졸업 후 석사까지 마쳤다.

포기를 모르는 그는 사회복지를 위해 다양한 곳에서 힘쓰고 있다. 전석복지재단 사무총장직도 맡은 그는 대구시사회복지사협회 운영위원, 대구시장애인복지위원회 위원, 대구시장애인차별금지 및 인원보장위원회 위원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한국 휠체어농구연맹이사이자 휠체어농구리그 중계도 하고 있다.

이처럼 바쁘게 김 관장이 활동하는 것은 차별 없는 사회를 만들고 함께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체육 문화를 만들고 싶기 때문이다. 그는 '육상의 도시 대구'에서 나아가 국제 장애인 스포츠대회 축제를 열고 싶다는 포부도 드러냈다. 김병우 관장은 "태극기를 가슴에 걸고 힘차게 내달리던 젊은 시절만큼이나 열정적으로 하루하루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국제적 행사를 열어 대구를 모범 사례로 전 세계에 알리는 데 힘을 써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노력이 긍정적 변화의 바람이 돼 결국 장애인에 대한 인식개선과 시설물 등의 발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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