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창] 아부 사르마드와 자카트

이진숙 전 대전MBC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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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전형적인 이라크의 남성이었다. 짙은 눈썹에 쌍꺼풀진 큰 눈, 콧수염을 기른 얼굴에 큰 키, 바그다드의 거리로 나가면 군중 속에 묻혀 버릴 그런 남성이었다. 아부 사르마드가 그 주인공이다.

1994년 9월부터 1년 동안 필자는 아랍어 어학 연수를 한다는 목적으로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살았다. 1주일 동안 현대건설 캠프에 묵었다. 아무도 범접 못 하던(?) 정주영 회장의 침대에서 잠을 잤던 것도 기억에 남는다. 현대건설 바그다드 캠프는 현대건설에 상징적인 곳이다. 1980년대 우리 기업의 중동 진출이 한창이던 때, 서울과 바그다드 간 직항이 있었을 정도로 왕래가 많았고, 요르단-이라크 국경 지대의 '노맨즈랜드'(No Man's Land) 도로를 비롯해 바그다드 병원과 아파트 등 주요 건물들을 현대건설이 지었다. 그러니 불시에 나타날 '왕회장'을 위한 침실이 마련돼 있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아무튼 아부 사르마드는 일주일간의 캠프 생활을 끝내고 만난 거의 최초의 사람이었다. 티그리스 강 서쪽 카르크 지역에 있던 자신의 아파트를 필자에게 임대를 해준 집 주인이었다. 1994년의 이라크는 사상 유례없는 시기를 겪고 있었다. 1990년 사담 후세인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후세인의 이라크는 수니, 시아, 쿠르드 지역으로 사실상 삼등분이 되었고, 이라크에는 전면 경제제재가 내려져 있었다. 비료나 살충제 등 농사에 필요한 화학물질은 물론, 영유아를 위한 분유조차도 수입이 금지되었다.

이전에 디나르에 3달러로 고정 환율을 시행하던 이라크는 공식 환율은 1대 3이었으나, 암시장은 통제 불능이었다. 1디나르에 3달러가 아닌, 1달러에 300, 3천 디나르로 거래되었다. 텔레비전을 하나 사려면 자동차 트렁크에 100디나르 묶음을 가득 싣고 가서 저울에 달아야 했다. 공식 환율로 치면 수백만 달러(수십억 원)였지만 바닥에 떨어진 디나르의 가치는 휴지에 불과했다.

그런 시절이었다. 아부 사르마드는 1970년대 일본에서 유학했는데 동양에 대한 추억 때문인지, 외국인에 대한 호기심 때문인지 그는 필자의 보호자 역할을 자처했다. 매일 아침 자신의 차로 등교를 시켜 주었고, 수업이 끝나면 바그다드의 역사적 명소에 데리고 다니며 장소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언제나 술에 취해 다니며 시를 썼던 아부누아스의 이름을 붙인 거리에서 마스구프를 먹었고 금요일이면 무타나비 거리에서 '책 사냥'을 했다.

목요일 저녁이면 경매장에서 카펫 경매를 함께 봤다. 초록색을 내기가 어렵기 때문에 초록색이 든 카펫이 귀한 것이며, 완벽한 것은 알라(신)밖에 없기 때문에 유명한 작가의 카펫에는 반드시 일부러 만든 흠이 있게 마련이라는 것도 그를 통해 알았다. 무엇보다도 그는 '위험 지역'에서 내가 사진을 찍는 것도 그냥 넘어갔다. 들키면 그에게 피해가 갈 일이지만 기자라는 것 때문에 어떤 때는 사진을 찍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사담 후세인의 대통령궁은 당연히 보안 건물이어서 외부에서도 촬영이 금지되었지만 그 덕분에 멀리서나마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고, 바빌론에 있던 그의 별장도 그 덕분에 찍을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는 내가 바그다드를 떠난 다음 보안대에 끌려가서 고문을 당했다고 한다. 누가 고발을 했는지 몰라도 그는 이후 급격히 건강이 악화돼 몇 달 동안 휠체어 생활을 하기도 했다.

지난 일은 아름다운 것만 기억한다고 하던가. 그와 함께 바그다드 이곳저곳을 다니던 그 시절, 필자는 30대 초반이었다. 9월 말이면 대추야자 농장에서 갓 딴 대추야자를 냉동고에 넣어 놓으면 아이스케키 못지않은 맛을 냈다. 그의 집에 가서 저녁을 먹을 때면 부인 움 사르마드는 그 부드러운 미소로 "바아드(더 드세요), 바아드"를 속삭였다. 온종일 남편의 시간을 빼앗아서 미안하다고 하면 움 사르마드는 수줍은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는 것(자카트)은 모슬렘의 의무랍니다. 당신은 외국인이고 우리의 도움이 필요해요." 기자로서의 한 시대에 함께해 주었던 아부 사르마드가 지난주 세상을 떠났다.

페이스북에 부고를 띄운 그의 딸 후다는 1994년에 세 살이었는데, 이제 서른 살이 되었고 결혼을 했다. 그의 영전에 그가 좋아했던 밥 딜런의 '바람은 알고 있지'(Blowing in the Wind)를 바친다. 슈크란 와 바락알라피크! 고마워요.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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