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내가 읽은 책] 죽비 같은 시

상처는 별의 이마로 가려야지/ 김남이 지음/ 고요아침 펴냄/ 2021년

코스모스가 흐드러지게 펴 있다. 김용주 제공
코스모스가 흐드러지게 펴 있다. 김용주 제공

죽비 같은 시를 만났다. 김남이 시인의 시집 '상처는 별의 이마로 가려야지'에서였다. 시인의 따뜻한 마음에서, 고달픈 삶의 애환에서 우러나온 시들은 그 원천을 찾아가듯이 따뜻한 위로를 주기도 하고, 아픔을 주기도 한다. 더러는 시인의 소박한 꿈이 무지개처럼 걸리기도 한다. 그중에서 세상을 무디게 살아가는 필자에게 죽비를 내리치는 기분이 들게 한 특별한 시가 있다. '왜 그렇게 살아'이다.

툭 던진 너의 말이/ 내 책상 위로 떨어지자/ 늦은 밤의 보료에/ 활자들이 유리 파편으로 흩어진다

보이지 않는 별을 안고/ 낮과 밤의 경계를 떠도는 나를 너는 모르고/ 밥이 되지 못해 당당할 수 없는 내 어떤 일을/ 너는 도무지 모르고

너의 말이 아니어도 가끔 생각한 적 있다/ 당찬, 맹렬한 같은 말 품고 살았다면/ 코스모스보다 검붉은 장미를 좋아했다면/ 놓인 자리보다 놓일 나를 곰곰 따져보았다면

암각서로 만났을까 이 활자들/ 내 속에 상처를 긋는 파편들/ 네게 보여줄 수 있을까

왜 이렇게 사는지 밤새 횡설수설과 놀아도/ 내일 아침은 또/ '전자 세금 신고'라는 사거리 현수막이/ 한사코 '전세 자금 신고'로 읽히겠지만

그런 아침 문장들은 더 다급하다/ 상처는 별의 이마로 가려야 하니까.

'툭 던지는 너의 말' 속에는 '시를 쓰면 돈이 되냐, 밥이 나오냐'라는 안쓰러움이 숨어 있다. 그러나 화자는 이 말에 상처 입지 않고 오히려 "보이지 않는 별을 안고/ 낮과 밤의 경계를 떠도는 나를 너는 모른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당찬, 맹렬한 같은 말 품고 살았다면/ 코스모스보다 검붉은 장미를 좋아했다면/ 놓인 자리보다 놓일 나를 곰곰 따져보았다면/ 지금 너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을까"라고 반문한다. 비록 '전자 세금 신고'라는 현수막이 '전세 자금 신고'라고 읽힐 정도로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하지만, 그럼에도 시인은 현실의 강을 문장으로 건너간다.

문장을 향한 시인의 이러한 목마름은 '나의 항아리'라는 시에서도 보인다.

"누군지 분명치 않은 얼굴 하나가 항아리에 손대는 꿈을 자주 꾸었다 (…) 쓸데없이 부풀려진 거추장스런 물건이라 했다."

이 시의 항아리는 아마도 문장을 향한 시인의 꿈일 것이다. 물질적 풍요와는 거리가 있는 꿈에 대한 불안이 읽히지만, 마지막 연의 "항아리도 앙다문 입으로 제 근육 움켜쥘 것이다"라는 진술은 불안이 문장에 대한 믿음으로 굳어졌음을 보여준다.

총 4부로 구성된 시집에는 63편의 주옥같은 시편이 실려 있다. 제1부 '초록 속에 초록이 아니어도', 제2부 '흔들리는 팔을 위해', 제3부 '모든 벌떡을 모아 너에게', 제4부 '밉고 그립고 캄캄한' 등으로 구성돼 읽는 이를 감성에 젖게 한다.

생활과 시 창작 사이의 갈등 같은 이러한 삶의 고뇌가 독자를 생각의 숲으로 초대한다. 시인에게 문장은 어떻게 빛이 되는지, 우리는 어떻게 그 빛 속에 함께 설 수 있는지 초대받은 그 숲으로 가보면 알게 된다.

김용주 학이사독서아카데미 회원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