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죽어볼래…?"
1990년 12월도 저물어가던 날 오후. 당시 정부기관 근무자의 '임의동행' 요청에 따른 것은 그해 12월 17일 대한항공기 폭파범 김현희의 대구문화예술회관 특별 안보 강연 이야기가 18일 본지에 실린 때문이었다. 출입 경비실에서 '여기서 보고 들은 내용은 발설하지 않는다'는 서류에 서명한 뒤 곧바로 2층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한 간부의 욕설이 쏟아졌다.
그의 책상 위에는 김현희 관련 기사가 크게 확대 복사돼 있었고, 기사 내용에 대해 30분 넘는 협박과 상말이 이어졌다. 당시 보도에는 대구경북의 간부 공무원을 비롯해 주로 30, 40대 이상 중년층을 대상으로 한 김현희의 '북한 체제의 나쁨과 남한 체제의 우월성' 등에 대한 비공개 제한 특강이 과연 안보 교육에 도움이 될 것인가라는 지적이 있었다. 침묵으로 버티는 동안 간부의 호통을 들으니 그 나름 이해할 만도 했다.
한국인 등 115명의 실종 희생자를 낸 김현희의 대한항공858 보잉707기 폭파 사건은 1987년 12월 16일 제13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11월 29일에 일어났다. 그리고 선거일 하루 전 12월 15일 김현희는 입이 봉인된 채 국민 앞에 나타났고 국민의 눈과 귀는 그에게 쏠렸다. 이튿날 대선에서는 당시 여당인 민정당 소속 '보통사람' 노태우 후보가 당선됐다.
그리고 그해 12월 23일 김현희는 자신이 북한 공작원이며 여객기 폭파 지령을 북한으로부터 받았음을 밝혔고, 이듬해 1월 15일 정부도 같은 내용의 사건 전모를 발표했다. 결국 김현희는 살인 등 혐의로 1989년 2월 3일 재판에 넘겨졌고, 대법원은 1990년 3월 27일 사형을 확정 판결했다. 그러나 그해 4월 12일 대통령 특별 사면으로 풀려난 김현희는 전국 안보 강의에 나섰으며 첫 강연이 바로 대구에서 있었다.
간부의 설명에 따르면 첫 강연을 마치자마자 마치 '초'를 치는 듯한 기사가 나오고 다른 지역에 예정된 강의가 줄줄이 취소됐으니 화가 날만도 했으리라. 다행히 소문으로만 듣던 악명의 악행은 없었고, 간부도 욕설과 협박만 실컷 퍼부었을 뿐이다. 아마도 '보통사람'이 대통령이 된 민주화 덕분이었으리라. 대구 출신으로 '보통사람'을 자임했던 노태우 전 대통령이 지난 26일 89세로 삶을 마쳤다. 남다른 사연을 남겨준 그의 영면에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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