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각과 전망]인공지능 대통령

김수용 신문국 부국장
김수용 신문국 부국장

2016년 3월 9일부터 서울에서 전 세계로 중계된 구글 딥마인드의 인공지능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바둑 대결에서 인공지능이 4대 1로 승리했다. 이른바 '알파고 충격' 이후 인간은 인공지능이 어디까지 진화할지 기대와 우려 속에 지켜보고 있다.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은 2045년에 '특이점'(Singularity), 즉 인공지능이 인간을 초월하는 시기가 온다고 예측했다. 인간보다 뛰어난 사고 능력과 판단 능력을 갖춘 존재가 등장한다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저서 '사피엔스'에서 21세기 인본주의 시대가 지나고 미래엔 인공지능이 삶을 지배할 것이라고 예측했고,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사후 출간된 '호킹의 빅 퀘스천에 대한 간결한 대답'에서 인공지능이 인류를 멸종으로 내몰 수 있다고 했다. 가공할 위협일 수 있지만 인류의 당면 과제를 획기적으로 해결할 '철인'(哲人)의 등장일 수도 있다.

그런 인공지능이 정치에 뛰어든다면 어떨까? 터무니없는 소리가 아니다. 일본에선 시장 선거에 인간이 인공지능을 대신해 대리 출마한 적도 있다. 인공지능 활용 공약을 제시했지만 낙선했다. 미국에선 2025년까지 로봇 대통령 로바마(ROBAMA·ROBotic Analysis of Multiple Agents)를 개발하려고 한다.

특이점을 넘어선 인공지능의 출마에 대해 기성 정치인들은 '인간만 정치를 할 수 있다'며 법 개정을 거부하겠지만 학연과 지역주의, 편협과 이기주의, 무지와 배타성으로 똘똘 뭉친 인간 정치인을 더 이상 참기 힘들다며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촛불을 들면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장담할 수 없다.

인공지능 정치 지망생은 돈이나 이성에 관심이 없다. 대규모 택지개발 계획을 벌여 수익을 도모하지 않을 것이고, 결혼하지 않으니 배우자를 둘러싼 온갖 잡음도 원천 차단된다. 석·박사 학위를 베껴 쓰거나 위장전입은 의미도 없다. 청문회에 나와 '크크크' 할 일은 상상할 필요도 없고, 반려견에게 사과를 건넬 일도 없다. 계파를 만들 일이 없으니 배신자 걱정도 없겠다. 워낙 해박하니 토론회에서 궁지에 몰릴 일은 없고, 도리어 상대 질문의 허점을 파고들어 넋 나간 사람처럼 만들기도 식은 죽 먹기다.

탈원전을 공약으로 내건다면 수만 가지 시나리오를 돌려서 가장 효율적인 에너지 수급 대책을 찾을 것이고, 허둥지둥 원전을 재가동하거나 효율 떨어지는 대체에너지 수단 때문에 골치 아플 일도 없다. 보유세, 거래세만 올리면 부동산 시장을 잡을 수 있다는 유아적 발상은 애초에 하지 않고, 측근 비리에 휘말릴 일도 없다.

이쯤 되면 인공지능 정치를 마다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뭔가 마뜩잖다. 인공지능 학습 과정에서 편견과 배타성을 주입할 수도 있다는 위험성 문제가 아니다. 정치 속성 때문에 인공지능의 정치 입문은 불편해 보인다. 안타깝게도 정치는 가장 선하거나 옳은 답을 찾는 과정이 아니다. 때론 다툼 속에서 인간 이성이 발휘할 수 있는 가장 저급하고 졸렬한 판단의 산물이기도 하다. 그런 결과물에 유권자들은 환호하기도 하고, 뒤늦게 해당 후보를 찍은 손가락을 잘라 강에 버리겠다는 말뿐인 후회도 한다.

그런데도 대선을 앞둔 난장판을 보노라면 인공지능 대통령을 떠올리게 된다. 암울한 미래를 그린 작품에선 인공지능이 독재를 한다. 그런데 인공지능끼리 후보로 나선다면 볼만하지 않을까. 그들도 독설을 내뱉으며 이전투구를 벌일까. 그럴 수도 있겠다. 인간과 정말 닮았으니까. 그래도 인간 이하는 아니니 그나마 나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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