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는 1990년대만 해도 한국하면 '북한'을 먼저 말할 정도였죠. 그러던 것이 2000년대 들어서면서 서서히 '삼성' 브랜드와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유행하면서 한국의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여졌어요. 특히 최근엔 젊은층을 중심으로 K-문화에 대해 알고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죠."
재불 판화가 정현(54) 씨의 이력은 독특하다. 경북대 전자공학과(86학번)를 졸업한 이른바 '공대 출신'이지만, 어릴 적부터 꿈꿔온 그림 공부를 위해 1990년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나 현지에서 미술가로 당당히 이름을 알리고 있다.
파리에서 활동하는 그는 위드 코로나를 앞두고 편찮은 어머니를 보기 위해 잠시 귀국, 대구를 찾았다.
정 씨는 유학 초기 파리 시내를 걷다가 우연히 판화공방에 들른 것을 계기로 판화의 매력에 푹 빠졌다. 파리1대학 조형예술과에 입학, 학부부터 시작해 석·박사 과정을 마치고 30여 년째 목판화 작업을 하고 있다. 2018년엔 작업장과 갤러리를 겸한 '정현 아틀리에 갤러리'를 열어 운영하면서 우리나라를 비롯한 중국과 일본 등 동양문화의 전도사 역할도 하고 있다.
그는 공부를 마친 뒤 현지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일해보고 싶던 차에 2002년 1월 파리의 '뮤제 세르누치 파리 동양 미술관'을 찾았고, 당일 채용이 결정된 것을 계기로 '한류 전도사'로 나섰다.
"이곳에서 제 일은 교육 담당입니다. 단체 관람을 유도하고 관람자들에게 전시를 설명하고 실제 작품 제작과정 등을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셈이죠. '뮤제 세르누치 파리 동양 미술관'은 재불 화가 이응노 화백이 이곳에서 동양화를 선보였고 동양 문화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킨 곳이기도 합니다."
정 씨는 이곳에서 파리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국화 및 동양화 전반에 대한 설명과 더불어 문인화의 경우 화제(畫題)를 풀어주거나 서예를 통해 동양문화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십 수년 전만 해도 파리에서 한국작가의 전시는 전무한 편이었죠. 2015년 한불수교 130주년을 맞아 '뮤제 세르누치 파리 동양 미술관'에서 물방울 작가 김창열과 이응노 선생의 전시회를 계기로 한국 문화가 파리에 알려지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죠."
정 씨는 이어 자신의 목판화 작품은 주로 꽃과 꽃잎 등 자연 대상물을 표현하면서 한지에 찍어내고 있기 때문에 귀국할 때마다 많은 양의 한지를 구매해 간다고 했다. 특히 한글을 깨알처럼 써내려간 작품은 현지인들로부터 호평을 얻고 있다. 그는 1995년 파리에서의 첫 전시를 연 이래 지금껏 23차례의 전시를 열었고, 올해 연말엔 프랑스 남부 툴룽 시에서 전시도 계획하고 있다.
"판화가 좋은 이유는 초등학교 시절 밑그림 없이 그림숙제를 제출했다가 선생님에게 혼난 기억이 있기 때문인데, 판화는 내가 원하는 대상을 묘사한 후 밑그림 없이 찍어낼 수 있어서입니다."
그는 박사학위 논문도 '판화에서의 여백의 미'에 대한 것으로 화면 속 여백을 아주 좋아한다고 했다. 2000년 1월 대구 동원화랑과 서울에서 국내 첫 전시를 가진 경험이 있는 정 씨는 올해 연말 툴룽 시 전시를 마치면 국내에서도 전시를 열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며 속내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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