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6시, 서울역을 출발한 KTX는 이내 한강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저 멀리 강을 물들이며 떠오르는 보름달은 그날따라 유달리 둥글고 밝았다. 강남의 빌딩숲을 지나는 동안 달은 보였다가 안 보이곤 했다.
평야와 나지막한 산들이 펼쳐진 곳을 지나는 동안 점점 더 높이 떠오른 달은 하늘과 대지를 환히 밝혔다. 간간히 산들에 의해 가려지기도 하고 굴들에 의해 아예 보이지 않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내 마음 속에서는 그의 다양했던 얼굴 표정과 감정, 활동 모습, 힘들어하던 모습이 교차되었다.
내가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학위논문에 집중하던 시절, 그가 그곳으로 왔다. 당시 나는 유학생활 6년차 신부이었기에 아직 신학생이던 그를 돕는 일은 즐거웠다. 학위공부를 마치며 귀국 전에 나의 차를 그에게 준 것을 비롯해 여러가지를 위임했다. 그도 귀국하면 한국사회와 교회를 위해 함께하자고 다짐까지 했다.
몇 년 후 공부를 마치고 귀국해 강화성당에서 주임신부로 일하고 있던 그를 찾아가 저서든 번역서든 1년에 한 권씩은 작업하자고 했다. 그래야 오랜 기간 고생하며 공부한 보람을 살릴 수 있을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나는 그가 전형적인 학자의 길을 걸어갈 것으로 믿고 있었다. 그의 모습과 삶이 나에게 그러한 인상을 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내면에는 다른 능력과 열정도 강하게 있었다. 학자인 그가 '무지개의 원리'를 저술한 후 대중 강연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가 감동시켰다. 실로 놀라운 반응이었고 지속적인 현상이 되었다.
그에 관한 이야기는 이 지면에서 자세히 할 수 없고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지금 얘기하는 보름달은 그런 그가 세상 떠난 날(2019년 11월 12일), 그의 빈소를 방문하고 돌아오던 길에 만난 달이다. 삼십 년의 긴 시간동안 그와 함께 했던 많은 일과 추억이 그 달처럼 내 안에서 떠올랐다가 가라앉기를 거듭했다.
그와 함께했던 기간에 그의 건강 상태는 언제나 우려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그는 매사를 열성적으로 했다. 간이식 수술을 하면 더 살 수도 있었다. 건강한 간을 제공하겠다는 지인도 가까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주어진 것만큼만 살겠다고 했다.
기차가 달리는 동안 수많은 산과 굴이 그 보름달을 가렸다 내놓기를 그 수만큼 거듭했다. 동대구역에서 내려 당시 내가 살던 학교에 도착해 하늘을 보니, 높이 뜬 그 달이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대지를 환히 비추고 있었다. 마치 이제 더 이상 어떤 방해도 없이 언제나 그를 환하게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려는 듯 했다.
그렇다. 그는 여전히 생시와 같이 나와 그를 좋아한 사람들 안에 살아있고 앞으로도 계속 함께 살아갈 것이며 우리들의 대화도 지속될 것이다. 이 지상 삶이 끝나면 오히려 더 진솔하고 분명하게 지속할 것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에는 우리의 인식능력에 제한이 있어서 그날 그 보름달을 보듯 모든 사물과 사람, 그리고 사건을 제한적으로 인식해 혼란과 아쉬움이 늘 함께 할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 반드시 올 그날 이후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보며 모든 것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분명하게 이해하며 오류가 없는 판단과 결단을 해 삶을 행복하게 꾸려갈 것이다.
둘레 4만 km의 지구표면에서 내가 겨우 3백 km를 이동한 그날, 나의 움직임을 달에서 볼 수 있었더라면 한눈에 빤히 보였을 것이다. 이 다음에 맞이할 차원이 다른 삶에서는 이러할 것이다.
이것을 믿고 싶은 것이 내가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가장 큰 이유이고 현재를 살아가는 기쁨과 희망, 그리고 생기의 원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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