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뉴스Insight] 사회악은 모두 부모 잘못(?)이다

결혼 기피 가치관은 부모 영향으로 형성…부모 역할 외면 따른 조손 가정 범죄 확대

10년 가까이 키워준 친할머니를 살해한 혐의(존속살인)를 받는 10대 형제가 지난 8월 31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대구지법 서부지원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10년 가까이 키워준 친할머니를 살해한 혐의(존속살인)를 받는 10대 형제가 지난 8월 31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대구지법 서부지원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잔소리한다는 이유로 친할머니 살해한 대구 고교생 10대 형제'에 대한 재판 기사를 보면서 30대 남성 절반이 미혼이라는 뉴스가 겹치기로 떠올랐다. 결손 가정이 빚은 인륜을 저버린 친족 범죄 행위가 젊은 세대의 달라진 가치관에 따른 결혼 외면 현상과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우리는 좋지 않은 사회악이 발생하면 모두 남 탓으로 돌리고 있다. 남성은 여성, 여성은 남성 탓으로 돌리고 이웃 때문에 피해를 보고 있다는 인식에 사로잡혀 있다. 더 나아가 비뚤어진 사회 풍조, 세대 갈등, 경제적인 양극화, 정치인과 국가의 잘못으로 반사회적인 행위가 남발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들여다보면 모든 사회악은 부모의 잘못에 기인한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경제적인 풍요로움과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부모의 희생 덕분에 누리고 있는 만큼 이 시대를 사는 부모들은 제 역할을 하고 있나. 주위를 돌아보면 헌신과 희생을 외면하고 물질만능주의에 빠진 부모들이 숱하다. 부모 역할을 충실히 하지 못해 자식을 사회악의 구렁텅이에 빠뜨리게 하거나 지나친 사랑으로 자식의 미래를 망치는 부모들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30대 남성 둘 중 한 명은 미혼이다. 통계청의 '2020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30대 남성 미혼율이 50.8%로 2015년(44.2%)보다 6.6%포인트 늘었다. 30대 여성 미혼율(33.6%)보다 17%포인트가량 높다. 이런 추세라면 40세, 50세 이상의 미혼 남성들도 넘쳐날 것이다.

젊은 남성들이 결혼을 외면하는 이유로는 혼자 사는 게 편하다는 개인주의와 부담스러운 집값, 아이 양육 등이 꼽히고 있다. 이성 욕구 등으로 안정적인 결혼을 추구할 나이인데, 왜 젊은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할까. 아마도 성장 과정에서 부모에게 영향받아 형성된 가치관 때문일 것이다.

30대 남성 다수는 풍파를 겪으며 시집살이를 한 어머니의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수시로 들으며 자랐고, 돈 타령과 집 마련에 목숨을 건 부모를 지켜봤다. 손주를 낳아도 키워주지 않겠다는 얘기도 들었다. 번듯한 직장을 다니며 가족을 부양할 경제적인 능력을 갖춘 이들도 부모로부터 영향받은 지나치게 현실적인 눈높이 때문에 결혼을 외면하는 실정이다.

주변을 한번 보자. 60대 중반 여성 A 씨는 1남 2녀 중 작은딸을 시집보내 외손자 한 명을 두고 있다. 문중의 종부임에도 그는 30대 중반의 아들을 장가보내는 데 매우 소극적이다. 40대에 접어든 큰딸이 시집가는 것을 바라지도 않는다. 조상 제사를 모시는 등 유교적인 풍습을 지키고 있지만, 아들을 장가보내 대를 이어야 한다는 생각은 반드시 해야 할 일로 여기지 않는다.

A 씨의 걱정은 따로 있다. 하나 있는 아들이 여자를 잘못 만나 재산을 탕진하지 않을까, 혹여 손주를 낳고 도망가지 않을까를 우려하고 있다. 그는 "주위에 이런 피해로 고통을 겪는 친구들이 여럿 있다. 내 아들도 그렇게 될까 걱정스럽다"며 "아들을 장가보내기 위해 중매를 주선하는 등 우리 세대처럼 살도록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손주를 두고 있거나 둘 나이인 50대 후반 여성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결혼에 대한 가치관이 결혼 적령기의 자식들보다 더 부정적임을 알 수 있다. 다수는 자식이 일찍 결혼하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안타까워한다. 아들이 일찍 결혼해 며느리와 손주에게 속박당하는 것을 걱정하는 것이다.

자신들을 키워준 친할머니를 흉기를 휘둘러 살해한 10대 형제 사건도 부모 역할의 실종에서 비롯됐다. 형제는 검찰 조사에서 잔소리 때문에 할머니를 살해하고 이를 목격한 할아버지까지 살해하려 했다고 한다. 이들은 평소 할머니가 잔소리한다는 이유로 말다툼하는 등 자주 갈등을 겪은 것으로 조사됐다. 범행을 주도한 고교생 형은 조사 과정에서 "웹툰을 못 봐 아쉽다"고 하는 등 생명을 경시하는 태도까지 보였다고 전해졌다.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의아스럽지만 숨진 할머니는 아들 부부 때문에 손자 양육을 떠안았고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했다. 형제는 범행 전날 할머니로부터 "스무 살이 넘으면 나가 살아라"는 말을 듣고 살해하려는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이들이 재판부에 반성문을 제출했다고 하는데 뭐라고 적었을까.

이와 비슷한 사건은 2007년 5월 부산에서도 있었다. 16세의 중학생 손자가 할머니를 살해하고 토막 내는 등 엽기적인 범죄를 저질러 우리 사회를 안타깝게 했다. 부모의 이혼 등으로 인해 조부모가 양육을 맡는 일이 흔해지면서 경제적인 어려움과 사회 무관심 속에 조손 간의 갈등이 끔찍한 범죄로 이어진 것이다.

조부모가 손자를 돌보는 일은 흔한 일이 됐다. 80대 후반의 할머니 B 씨는 30대 중반의 장애인 손자를 돌보고 있다. 외국에 나가 사업을 하는 아들 부부 대신 삼대독자인 손자를 어릴 때부터 직접 키웠다. 손자는 할머니를 부모로 여기며 따르고 있다. 그는 손자를 금지옥엽으로 보살피면서도 마지못해 거둬 키우는 원수 같은 혈육으로 여긴다. 딸들에게는 손자에 대해 저주가 담긴 말을 퍼붓는다.

B 씨는 손자가 장애인이 된 것을 아무 이유가 없음에도 자신의 책임으로 여긴다. 하지만 그의 아들 부부는 잘난 딸들만 챙기고 자랑하기에 급급하다. 장애인 아들이 자신들의 사회적 지위 유지에 방해가 될까 전전긍긍하기도 한다.

불우한 아동을 돌보는 복지기관이나 사회시설 관계자 얘기를 들어보면 B 씨와 같은 사례는 넘쳐난다. 부모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서 일어나는 비극의 씨앗은 우리 사회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사회악을 근원적으로 줄이기 위한 부모의 노력이 필요하다. 자식을 어떻게 키우고 뒷바라지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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