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거꾸로읽는스포츠] 51세 '철콘 체력' 자랑하는 대구체육관 운명은?

올해 부분 수리해 한국가스공사 홈구장으로 사용…농구장 마련 후 건립 당시 취지 살린 신축·리모델링 기대

대구에서 11년 만에 다시 프로농구 경기가 열리고 있다. 사진은 지난 1일 야간경기가 펼쳐진 대구체육관 모습. 김교성 기자
대구에서 11년 만에 다시 프로농구 경기가 열리고 있다. 사진은 지난 1일 야간경기가 펼쳐진 대구체육관 모습. 김교성 기자
김교성 디지털 논설위원
김교성 디지털 논설위원

대구에서 11년 만에 다시 프로농구 경기가 열리고 있다. 경기장은 지난 2011년 '야반도주'한 대구 동양 오리온스(현 고양 오리온)가 사용한 대구체육관(대구시 북구 산격동)이다. 인천 전자랜드를 인수한 한국가스공사가 대구 연고지로 올 시즌 새로 출범하면서 대구체육관을 홈구장으로 삼았다.

한국가스공사는 전용구장을 마련할 때까지 이곳에 머물러야 한다. 프로 스포츠 팬 확보 측면에서 인접 경북지역을 포함하면 대구는 300만 명이 넘는 인구를 두고 있으나 3천 석 이상 규모를 갖춘 체육관은 이곳 하나뿐이다. 광주광역시가 프로배구 페퍼저축은행을 유치할 때 배구장으로 제시한 체육관이 3곳이었다고 하니 대구의 초라한 스포츠 인프라가 부끄러울 지경이다.

이런 실정에도 대구시와 한국가스공사는 전용구장 마련에 소극적이다. 각기 나름의 이유가 있기도 하지만, 대구시가 제시한 곳을 마다하고 부동산 요지를 전용구장 터로 달라는 한국가스공사의 속셈에 발목이 잡혀 있다.

대구체육관은 올 시즌 개막을 앞두고 부분 개·보수로 예전 농구장 모습을 되찾았다. 대구시는 우선 지난 9월 한 달 동안 코트 바닥을 단장하고 선수대기실과 샤워장을 수리했다. 시즌이 끝나면 대대적인 보수 공사에 들어갈 계획이다.

1971년 4월 개장해 51년이나 된 체육관이지만, 2003년 대구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등 국제 경기와 프로농구 경기를 위해 여러 차례 대대적으로 개·보수했기에 이번에도 부분 정비로 농구 경기장 구실을 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인 코트 바닥과 이를 연결하는 접이식 관람석 공사를 대구시가 동양 농구단이 도망가기 직전 해에 했기에 짧은 기간에 보수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대구체육관은 노후화와 코로나19 사태 등으로 상당 기간 방치됐기에 고쳐 사용할 수 있을지 우려가 있었지만, 지금까지 큰 문제 없이 사용되고 있다. 한국가스공사는 지난달 10일 안양 KGC인삼공사와 홈 개막전을 갖는 등 14일까지 6차례 홈 경기를 불상사 없이 치렀다.

그러나 대구체육관의 변신에는 한계가 있다. 오래된 세월을 이겨내지 못하고 곳곳에서 노후화된 모습이 드러난다. 천장에서 비가 새는 곳이 크게 두 곳이다. 코트 라인과 떨어진 구석도 있지만, 한 곳은 농구 골대가 위치한 곳이다. 누수 원인을 정확히 찾아내지 못해 보수에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

2, 3층 관람석의 의자가 작고 낡은 데다 통로도 너무 좁다. 전체적으로 개·보수해 사용하기에는 건물이 너무 오래됐다. 철근콘크리트 구조라 당장 안전에는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예전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처럼 관람석 일부가 무너질 수도 있다.

한국가스공사는 대구시와 협의, 프로농구를 우선 사용하는 전용구장 건립 문제를 빨리 매듭지어야 한다. 그래야만 대구시가 대구체육관 신축 또는 리모델링 방안을 수립할 수 있다.

대구체육관(전 경북체육관) 건물 오른쪽에 세워진 건립 당시 기념물. 동판에 건립기금 찬조자 명단이 새겨져 있다. 김교성 기자
대구체육관(전 경북체육관) 건물 오른쪽에 세워진 건립 당시 기념물. 동판에 건립기금 찬조자 명단이 새겨져 있다. 김교성 기자

대구체육관은 지난 1965~1971년 대구시민 등 경북인들의 정성과 애환을 담아 건립됐다. 당시는 대구시가 경상북도에서 분리되기 이전으로 경북체육관으로 불렸다. 1965년 김인 경북도지사(체육회장)를 명예회장으로 경북체육관 건립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체육관설립 취지문을 발표하면서 성금 모금 운동을 펼쳤다.

1966년 9월 27일 착공한 경북체육관 건립에는 총공사비 3억7천567만5천원이 들어갔다. 이 중에는 학생 및 일반모금 984만원, 극장 모금 1억387만원, 찬조금(대구·서울 경제계와 재일교포) 6천168만원이 포함됐다. 총공사비의 절반가량을 성금과 찬조금으로 충당한 셈이다. 공사비가 모자라 1967년 8월부터 1968년 6월까지 10개월 동안 공사가 멈추기도 했다.

1971년 4월 13일 열린 준공식에는 당시 동양 최대의 체육관임을 과시하듯 백두진 국무총리와 홍종철 문교부장관, 민관식 대한체육회장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개장 축하경기로는 한국나일론과 경기대학의 여자 농구경기가 열렸다. 이후 체육관은 농구를 비롯해 핸드볼, 배구, 탁구, 배드민턴, 씨름, 레슬링, 복싱, 역도, 체조, 유도, 검도, 태권도, 펜싱, 바둑, e스포츠 등 전천후 경기장으로 사용됐다. 각종 사회단체와 문화. 종교, 정치 행사장으로도 널리 이용되는 등 체육관은 시민들과 함께 호흡했다.

대구체육관이 오랜 역사성을 살려 현재 자리에서 신축 또는 리모델링 되기를 바란다. 건립 당시 신라 화랑정신 등을 담은 설계 취지와 시민 성금 모금을 통한 건립 방안도 다시 반영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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