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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도서관을 가다-영남대] 김혈조 선생이 번역한 연암의 열하일기

최의현 교수(경제금융학부)

열하일기(김혈조 번역본). 제공 영남대
열하일기(김혈조 번역본). 제공 영남대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모르는 독자는 아마 없을 것이다. 영남대 도서관에는 다양한 버전의 열하일기가 소장돼 있다. 모두 각각의 출판 의도에 따라 재미있게, 쉽게 또는 원문에 충실하게 집필되었다. 이 중 전 영남대 한문교육과 김혈조 교수가 번역한 열하일기는 현대인에게 친숙한 문장으로 중국에 대한 연암의 시각을 정확하고, 세밀하게 보여주는 장점이 있다.

총 3권으로 구성된 열하일기(김혈조 역)는 모두 1천500페이지에 달한다. 필자가 열하일기를 읽은 지 10년이 넘었지만, 지금까지 완독한 사람을 그리 자주 접하지는 못했다. 많은 사람이 열하일기를 조선시대의 고전문학으로 알고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이 지면에서는 실학자 박지원이 분석한 당대 중국에 대한 종합보고서라는 차원에서 바라보려 한다.

열하일기의 하이라이트는 고생 끝에 다다른 베이징에서 다시 황제를 만나러 열하로 가는 여정과 열하에서 만난 다양한 중국 학자와 교류한 내용이다. 2000년 10월 필자 역시 베이징에서 열하(지금의 청더)로 여행을 간 적이 있다. '빵차'라고 불리는 작은 승합차에 몸을 욱여넣고 구불구불 시골길을 달려 청더에 도착했는데, 박지원 선생의 발자취를 느껴보는 기쁨 이상으로 되돌아갈 끔찍한 도로 사정을 걱정했던 기억이 있다. 그 길을 200여 년 전 연암 일행은 제때 도착하지 못하면 목숨 부지하기 어렵다는 심정으로 갔다.

18세기 강희제가 다스린 청나라는 세계 제일의 강대국이었다. 황제의 70세 생일을 맞이하여 열하에는 중국과 인근국의 모든 정보가 집결되었다. 열하일기 1권은 중국을 관찰한 모습을, 2권은 중국학자들과 정치, 경제, 역사 문제에 대한 논의를, 3장은 약간 객관성이 떨어지지만 나름 가치 있는 정보를 담았다.

오늘날 중국 연구자 사이에서는 중국을 뭉뚱그려 하나로 정의하는 사람은 초보자이고, 지역별로 구분한 다음 그 차이를 분별할 수 있으면 진짜 전문가라고 말한다. 박지원 선생은 18세기 조선 최고의 중국 정치와 경제 전문가였다.

열하일기에 등장하는 중국인과 중국 문화는 오늘날 필자가 중국에서 경험했던 모습과 중첩된다. 특정 지역의 문화적, 사회적 특징은 시간이 지나도 크게 변하지 않는 법이다.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을 쓴 해가 1776년이고, 박지원 선생은 1780년부터 열하일기를 집필했다.

아무도 국부론을 고전문학이라 하지 않는다. 실학(實學)은 허학(虛學=성리학)에 대한 반의어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는 '중국은 그냥 싫어'라는 관념적 반중 정서가 있다. 박지원은 그렇지 않았다. 실사구시(實事求是)의 관점에서 현대 중국을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분석하고, 미래의 한중 관계를 개척해 나가는 것이 연암의 후예가 할 일이 아닐까.

최의현 교수(경제금융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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