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대한민국은 모든 권한을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집중시키며 놀라운 성장을 이뤘지만 비수도권은 심각한 인구, 자본의 유출 등으로 고령화와 인구 소멸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특히 얼마 전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는 고(故) 이건희 회장의 유족이 국가에 기증한 문화재와 미술품을 관리할 미술관을 서울 시내에 건설하겠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하며 '서울 중심의 문화정책'이라는 지역의 비판이 이어진 바 있다. 문화의 수도권 블랙홀 현상의 폐해와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문화의 지방분권을 위해 매일신문이 주최한 세 번째 '지방분권 전문가 좌담회'가 3일 매일신문 3층 대회의실에서 진행됐다.
<사회자>
손명숙 대구광역시 지방분권협의회 제도개선분과 위원장
<패널>
이영애 대구광역시의회 의원(문화복지위원회)
김태곤 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
오동욱 대구경북연구원 연구위원

◆손명숙=그동안 이건희미술관 대구 유치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해 오신 것으로 알고 있다. 이건희미술관을 비롯해 문화 분권을 이루고자 노력한 이유와 앞으로의 계획은?

▷이영애=대구 시민의 노력에도 이건희미술관 유치 열기에 응답하지 못해 송구할 따름이다. 중앙정부의 이건희미술관 입지 결정은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라는 뜻의 신조어)였다. 이건희 컬렉션 작품 중 대구에 온 것은 고작 21점이다. 그러면서 정부는 문화분권을 얘기한다. 정부는 국익을 위해 중앙을 택했다고 했다. 그럼 지방을 입지로 선택하면 해(害)가 되는 거냐고 되묻고 싶다. 중앙정부의 모순이다.
이건희미술관 입지 공모를 하지 않는 건 중앙 정부가 대구를 견제하는 것이라 본다. 이건희와 대구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걸 전국이 안다. 삼성라이온즈, 삼성상회, 삼성창조캠퍼스 등 대구는 삼성의 모태다. 이건희 회장이 성장하던 시절, 대구는 대한민국 미술의 중심지였다. 대구시의회는 대구시, 시민단체들과 합심해 중앙 정부의 독선에 맞서고 공정한 입지 선정을 요청한 다른 지역들과 합심해 이건희미술관 공모를 재요청할 것이다.

◆손명숙=지방에서는 문화적 소외와 문화에 대한 갈증이 크다. 문화 불균형 해소를 위한 복안이 있다면?
▷이영애=문화 불균형 해소를 위해서는 문화생태계 유지가 중요하다. 문화생태계가 파괴되지 않으려면 지역문화진흥기금이 마련돼야 한다. 중앙정부에서 관리하는 기금과 달리 오직 지역을 위한 기금으로 지역문화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는 핵심 열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중앙 정부도 문화진흥기금을 배분해야 한다. 떡고물 나눠주듯 조금씩 나눠주는 건 곤란하다. 지역 국회의원들도 자신의 상임위와 무관하게 지역의 문화를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 시민들의 한목소리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민원이 올라오는 것과 안 올라오는 건 천지 차이다. 시민들이 원한다면 탄력을 받을 수 있다. 시민 공감대 형성에도 힘써야 할 것으로 본다.
◆손명숙=문화 일선에 계신 김태콘 큐레이터는 문화 불균형의 현 주소를 누구보다 실감하고 계실 것이라 생각한다. 현재 불균형이 어느 정도라고 보시는가?

▷김태곤=지난 2년간 코로나 팬데믹으로 지역 문화예술계가 활동을 멈췄다. 그럼에도 50여 일간 진행된 이건희 컬렉션 대구 전시에 하루 800명, 총 4만여 명이 대구를 다녀갔다. 깜짝 놀랄 만한 숫자다.
문체부가 발표한 2020년 전국문화기반시설 총람을 보면 전국 미술관이 267곳인데, 비수도권이 163곳이다. 광주가 14곳인 반면 대구는 경북대미술관, 계명대미술관, 대구문화예술회관, 대구미술관 등 4곳 뿐이다. 전국 최하위다. 관람객 현황은 2019년 기준 대구가 65만 명, 광주가 36만 명이었다. 열악한 인프라에 비해 관심도가 높다는 것이다.
대구미술관이 2014년 진행한 야요이 쿠사마 전시에서는 96일 동안 32만 명이 다녀갔다. 관람 수익만 10억원 정도다. 이런 매머드급 전시가 가능했던 건 대구였기 때문이다. 대구는 명실상부한 문화의 도시다. 정책적으로 이건희미술관을 유치하자는 주장이 아니라 실제로 관심도가 높다. 대구아트페어도 진행된다. 국내 3대 아트페어 중 하나다. 이건희미술관은 대구시민과 관련 단체들의 일관된 요구다. 유치 이후에도 많은 관람객들이 다녀갈 것이라 확신한다.

◆손명숙=지방에 많은 사람이 골고루 문화를 향유하고 문화적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현장에서는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시는지?
▷김태곤=지방분권을 위해서는 지역문화가 살아야 한다. 인구가 서울로 몰리는 건 문화 불균형에서 생기는 문제가 아닐까 한다. 대구는 인구 감소, 지방대학 존폐 위기 등을 겪는 중이다. 공공기관 지방 이전처럼 문화기관도 균등하게 이전돼야 한다고 본다. 지역마다 문화적 특징이 있다. 대구는 유네스코 지정 음악창의도시다. 오페라 공연과 축제 등을 성공적으로 이어가고 있다. 음악, 미술 중심 공공기관이 대구에 와야 한다.
대구도 미술계의 염원인 근대미술관을 건립하게 되면 대구근대미술관, 간송미술관, 대구미술관 등 세 곳을 통해 근·현대 미술 모두를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문화는 관광산업이다. 스페인 구겐하임미술관, 일본 나오시마섬 등이 좋은 사례다. 대구 태생의 수많은 미술가만 모아 전시를 해도 대구는 충분히 문화중심도시로 발전할 것이다. 해외여행을 할 때 1~2시간은 쉽게 이동한다. 서울에 문화시설 전부가 몰려있을 필요는 없다. 우리나라의 교통 여건도 좋다. 대구에서 다양한 미술관 투어를 하고 이동하면 된다.

▷오동욱=프랑스에서도 루브르박물관, 퐁피두센터 등 국립문화시설을 활발히 분산하고 있다. 지역이 상생할 수 있는 구도로 가고 있다. 우리도 서둘러야 할 것이다.
◆손명숙=최근 문화관광체육부가 내놓은 전국문화기반시설 통계를 보면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문화 향유 기회의 불균형이 심각하다.
▷오동욱=수도권에 사람이 많으니까 그에 비례해 문화시설도 많다. 전국 공연장 1천29곳 중 35%가 서울에 있다. 519곳은 수도권에 있다. 문화재청을 비롯해 문화정책 수립, 실행하는 곳까지 수도권에 있다는 건 무리가 있다.
문화 향유라는 부분도 마찬가지다. 2014~2017년 국립예술단 공연의 82%가 서울에서 열렸다. 문화의 민주화 개념에 맞지 않다. 지역은 대구, 부산 등 광역시를 다 합해도 18%다. 광역시가 아니면 문화 향유도 어렵다는 것이다. 이건 국립예술단의 설립 취지와 동떨어져 있다. 서울에서 만든 문화를 유통, 소비만 하는 구조가 된다. 문화 분권을 하자고 했을 때 존립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지역은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준비돼 있어야 한다.
◆손명숙=지방분권을 주장하는 이유에는 지역간 문화 불균형을 해소하고자 하는 목적도 포함하고 있다. 문화 불균형 해소를 위해 제도적으로 어떤 개선이 필요한가?
▷오동욱=문화 분권은 글로벌 차원에서 패러다임이다. 이게 보편적 가치라는 공감대 형성이 돼야 한다. 서울에 분원을 두고 지역에 본원을 두면 된다. 역발상을 해보고 시도해야할 것이다. 국립예술단의 경우 유럽에서는 프렌차이즈 시스템으로 지역 순환 계획을 세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매개 역할을 해야할 것이다.
지역에도 실행 기구가 있어야 한다. 지역문화를 놓고 매개하는 기관이 지역문화진흥원이다. 심지어 이것도 서울 종로에 있다. 지방으로 이전해야 한다. 그게 당장 안 된다면 기능을 분산해야 한다. 다만 문화 분권을 서둘렀다가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해외 모범 사례들은 1~2년만에 계획해 실행했던 게 아니다. 길게는 15년도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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