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권주자들 "정부조직 손 보겠다" 공언에 정부세종청사 안절부절

이재명 "기재부 나라냐" 호통 속 국민의힘, 여가부·통일부 폐지 목소리…'한 지붕 세 가족' 산자부 등 불똥 우려

대선이 가까워오면서 정부 출범 때마다 되풀이돼온 정부조직 개편이 어떤 식으로 이뤄질지 정부세종청사 공직사회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사진은 정부세종청사 전경, 정부청사 관리본부 홈페이지 갈무리.
대선이 가까워오면서 정부 출범 때마다 되풀이돼온 정부조직 개편이 어떤 식으로 이뤄질지 정부세종청사 공직사회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사진은 정부세종청사 전경, 정부청사 관리본부 홈페이지 갈무리.

대권 대진표가 5일 완성되는 가운데 정부조직 개편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면서 정부세종청사의 긴장지수가 치솟고 있다. 대선주자들이 벌써부터 특정 부처를 거론하며 군기잡기에 나서거나 폐지를 거론하고 있어 해당 부처의 한숨 소리가 깊어지고 있다. 대선 국면이 본격화되면 보다 구체적 방안이 거론될 것으로 보이자 내부적으로 방어논리 개발에도 부심하는 모습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집권에 성공하면 관료·검찰 등 '선출되지 않은 권력' 집단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강화할 것을 예고하고 나섰다. 특히 기획재정부를 향해 "이 나라가 기재부의 나라냐", "너무 난폭하다"며 불신을 드러낸 바 있어 정권 재창출 시 재정당국의 힘을 완전히 빼는 대대적 개편에 대한 부내 우려가 크다. 이 후보는 내년 지역사랑 상품권 예산을 대폭 삭감한 재정 당국의 결정을 비판하는 등 기재부에 날을 세워왔다.

이 후보는 지난 달 10일 "따뜻한 안방에서 지내다 보면 진짜 북풍 부는 들판의 고통을 알기 어렵다"며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을 몰아세웠다. "기재부가 예산편성권을 가지고 너무 오만하고, 너무 강압적이고 지나치다. 각성하길 바란다"는 경고도 했다. 이 후보는 정부와 경기도 간 광역버스 준공영제 사업 합의와 국민재난지원급 지급을 놓고도 갈등을 빚었다.

지난 달 27일 이재명계 의원들의 싱크탱크인 '성장과 공정포럼'이 마련한 이 후보의 국가관 및 국정운영 방향을 홍보·논의하는 자리는 '이재명 정부'의 밑그림을 엿볼 수 있게 했다. 그룹 내 정치행정분과를 맡고 있는 박상철 경기대 교수는 '통합정부론'이라는 주제 발표에서 기재부를 정조준했다. 박 교수는 "문재인 정부가 인수위원회 없이 출범해 이명박·박근혜 정부 조직이 안고 있는 문제를 제거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국무총리로부터 예산권을 박탈해 기재부로 권한을 이양·통합시켜 책임총리가 불가능하게 했다"며 "예산과 재정을 한 손에 움켜쥐고 있는 경제부총리에 얹혀 있는 게 현 정부의 총리였다"고 꼬집었다.

기재부는 설마 설마하던 '기재부 해체' 발언이 이 후보 측에서 사실상 공식화되자 "올 것이 왔다"는 분위기다. 기재부의 한 직원은 "고된 업무 강도에도 자부심을 갖고 일해 왔는데 한 순간에 조직을 가르고 권한을 축소하겠다니 힘이 빠진다"고 털어놨다.

얼마전 있었던 국토교통부 제9대 노조위원장·수석부위원장·사무총장 선거에서는 '대선 이후 일방적 정부조직 개편 저지'가 관심을 끌었다. 단독후보로 출마해 찬반 여부를 묻는 선거였지만, 정부조직 개편 문제가 첫 번째 공약으로 제시될 만큼 핫 이슈가 됐다. 정부 조직을 수술대에 올리더라도 '일방 통행'은 안 된다는 위기의식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국토부의 경우 과거 건설교통부에서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인 2008년 국토해양부로 이름을 바꿨고, 2013년 3월 국토부로 개편됐다. 이 때 해양 관련 사무를 해양수산부로 넘겼고,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2018년 6월에는 수자원 보전 이용 및 개발 기능을 환경부로 이관했다. 그럴 때 마다 조직은 술렁였고, 효율적인 개편이었는지 의문 부호가 잇따랐다.

앞서 여성가족부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가 폐지 카드를 꺼내들면서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윤 후보는 "여가부가 양성평등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홍보 등으로 국민에게 실망감을 안겨 줬다"며 "다양성을 포용하고 남녀의 실질적인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양성평등가족부로 개편하고 업무 및 예산을 재조정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9월에는 유승민 후보가 19대 대선에 이어 여가부 폐지를 공약했다. 2001년 여성부로 출발한 여가부는 2005년 몸짓을 불렸으나 이명박 전 대통령 당시 그 기능을 축소하고 여성 업무만 전담하게 하는 여성부로 되돌아갔다가 2010년 다시 가족 관련 사업 일부가 추가되면서 여가부 명칭을 되찾는 등 온갖 우여곡절을 견뎌야 했다.

통일부도 곤혹스런 입장에 빠졌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외교부·국가정보원 등과의 업무 중복성을 들어 문제 제기를 한 것을 계기로 '통일부 폐지론' 불씨가 커지는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지난달 18일 국정감사에서 "그런 견해들이 일부에서 나오는 것에 대해 굉장히 책임감을 느낀다"면서도 "통일부 자체를 유지하는 것에 찬성하는 의견이 많다는 점도 외면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방어에 나섰다. 통일부 폐지론은 이명박 정부 출범을 앞두고도 나왔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남북관계 개선 등의 명분으로 위상이 다시 강화되는 추세였다.

'한 지붕 세 가족'인 산업통상자원부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중소벤처기업부 역시 정부조직 개편에 대한 대권주자들의 구상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2008년 지식경제부로 재편된 산자부는 2013년 3월 현재의 이름을 얻었지만 당시 미래창조과학부와 기획재정부, 외교통상부 등과 업무를 주고 받으면서 적잖은 혼선을 겪었다.

1998년 과학기술부 승격 꿈을 이룬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017년 현재의 이름으로 출범했다. 그 과정에서 교육인적자원부와 통합하고, 지식경제부·정보통신부 등에 업무를 이관하면서 조직 개편 회의론이 고개를 들었다.

채장수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후보들이 지지세를 확보하고자 특정한 이슈를 들어 부처 폐지나 조직개편을 거론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라며 "새로운 국정 운영 차원에서 조직개편이 불가피하다면 큰 틀에서 부처를 진단하되 국정의 연속성까지 감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