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시작될 무렵이었을 거다. "얼마 전에 오랫동안 구독해 온 월간지에서 서점에 대한 기사를 보았어요. 보자마자 아내하고 꼭 방문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저희가 부산에 갔다가 올라가면 가능한 날이 월요일이더라고요. 월요일은 쉬시는 것 같은데."
전화기 너머로 어르신의 안타까움이 전해졌다. "네, 월요일은 휴무지만, 그 날은 제가 처리할 일들이 있어서 서점에 나가 있을 것 같아요. 오셔서 전화 주시면 제가 문을 열어드릴게요. 혹시 어르신의 일정에 차질이 생겨 방문하시지 못하시더라도 괜찮아요."
몇 주 동안 서점 업무 외에 다른 일들로 좀 바빴다. 막상 월요일이 다가왔지만, 전화 내용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어르신 한 분이 대문 앞에서 전화를 걸었다. "지난번에 전화 드렸었어요. 월간지를 보고 아내와 방문하고 싶다고 했던."
아! 나는 얼른 서점 문을 열어드렸다. "허허, 쉬는 날인데 미안해요" "아니에요. 저도 일이 있어서 나왔어요. 편하게 둘러보세요." 나는 도로 대문을 닫고, 서점 안에 음악을 켜고, 군데군데 불을 밝혔다. 노부부는 그대로 서서 책 한 권 한 권을 눈에 담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책을 펼쳐 보셨다. 책장을 넘기는 노인의 손길은 따뜻하고, 책을 고르는 노인의 뒷모습은 아름답다. 몇 권의 책을 구매하셨는데, 그 중엔 내가 쓴 책도 있었다. 어르신이 쪽지 하나를 건넸다. 쪽지에는 두 분의 성함과 전화번호, 주소가 적혀 있었다.
"경주에 또 언제 오게 될지 가늠이 안 돼서, 선생의 다음 책이 나오면 꼭 한 권 사고 싶은데, 우리 같은 사람은 그런 걸 알 길이 없어서요. 그때 이 주소로 책을 보내주면 좋겠어요."
휴대폰 하나면 수많은 정보를 알아 낼 수 있는 세상이지만, 누군가에게 그 방법은 무용하다. 그 분들에게 정보는 매일 아침이면 배달 오는 신문과 오랫동안 구독해온 잡지가 가장 유용하며 믿음직스러운 정보였다.
그렇게 몇 주가 흐르고, 황금 들판이 가을걷이로 한창이던 어느 날, 또 다시 전화가 왔다.
"기억하실까요? 지난번 월요일에 아내와 함께 갔었는데, 저는 농사를 짓는 사람이에요. 올해 수확을 마치고, 첫 도정을 한 쌀을 서점으로 보내드렸어요." 어르신들의 안부를 되물을 새도 없이 나는 한사코 거절을 하느라 바빴다.
"우리가 일 년 내 지은 쌀을 보내고 싶었어요. 그냥 우리 같은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 주세요."
그 말을 듣자마자, 뜨거운 무언가가 몸속으로 퍼지는 것을 느꼈다. 지나버리면 그만인 세상 속에서 애정과 호의를 전해 주는 사람들. 이렇게 받기만 해도 되는 걸까.
나도 내가 전해 받은 따뜻함을 소분해 나누고 싶다. 온기가 식기 전에 얼른. 세상은 서로 나눠야 마음의 짐은 가벼워지고, 온정은 더욱 따뜻해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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