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남은 주유소는 달랑 하나다. 거의 모두가 전기차나 수소차로 전환해 충전소를 찾고, 나머지 극소수만 마지막 주유소로 차를 몰아 화석 연료를 주입한다.
주유소는 변두리로 밀려난 지 오래다. 매연 유발 차량은 환경 규제에 막혀 도심으로 진입할 수 없는 데다가 매연이 응집하는 곳을 반길 마을도 없다. 매연은 쓰레기 악취만큼 주민의 반발을 부른다. 마지막 주유소로 안내하는 이정표 역시 모음과 자음 몇 획을 상실한 채 점멸하며 사라져간다.
주유소를 찾는 자는 화석 인간이다. 간혹 옛것이 좋아서, 디젤 엔진 특유의 시끄럽고 공격적인 주행이 마음에 들어서 기름을 갈구하는 자도 있지만, 다수는 어쩔 수 없이 과거의 틀에 갇혀버렸다.
그들도 조용히, 무해하게 이동하고 싶다. 바위 구르듯 굉음을 내며 존재를 드러내거나, 눈살 찌푸리게 만드는 검은 연기 따윈 내뿜고 싶지 않다. 어쩌면 그들은 나무를 심고 가꾸는 취미를 가졌는지 모른다. 녹지를 사랑하며, 산에 오르면 쓰레기를 주워 내려오는 부류일 수도 있다. 마지막 남은 주유소를 향해 필사적으로 차를 모는 이유는 단 하나, 빈곤 때문이다. 정부 지원금을 받고도 그들은 전기와 수소를 연료삼아 이동할 수 없다.
전기차 운전자들이 쇠락한 주유소를 힐긋거린다. 열렸던 차창이 닫히고, 비난과 조소의 눈길이 기름 탱크로 날아가 꽂힌다. '오염 유발원'. 화석 인간은 그렇게 불릴지 모른다.
"매연을 뿜을 바에야 승용차와 트럭을 폐기해버리지, 아니면 공유차나 불러 타든가."
화석 인간은 에너지 전환에 대비하지 못한 낙오자 취급을 받기 일쑤다. 대중교통이 쉽게 닿지 않는 곳에서 자산을 비축하지 못한 채 관성적인 빈곤을 반복하다 보면 한순간 과거에 매몰된 인간이 되고 만다.
친환경 가치를 실현하는 데 갈수록 돈이 든다. 돈이 있어야 운송수단을 바꾸고, 비싼 생분해성 플라스틱 봉투와 음식 용기를 사며, 친환경 보일러를 설치할 테니까. 어느새 친환경 윤리는 실천할 수단을 가진 자의 전유가 된다.
마지막 주유소가 사라지는 날의 풍경은 어떨까. 화석 연료의 퇴출은 조선총독부 건물을 폭파할 때처럼 뻥 뚫리는 속시원한 쾌감만을 안길까. 기후 위기를 부른 인류의 어리석음을 돌아보는 자성의 목소리 앞에서도 화석 인간은 고개를 들 수 없다. 환경 담론 안에서 화석 인간은 소외되고 배제되며, 종종 수치스럽다.
얼마 전 유럽에 사는 친구가 자조적으로 말했다. 9년 뒤 자국에서 새로운 환경 규제가 시행되면 본인의 낡은 디젤차로는 근처 부모님 댁도 방문하지 못하게 될 거라고. 친구는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장기 실업에 허덕이는 클래식 음악가다.
돈과 환경 윤리가 결합하는 기이한 현상을 본다. 무거운 악기를 싣고 마지막 주유소로 향하는 가난한 음악가의 모습은 머지않아 우리가 마주할 자화상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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