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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병 父 굶겨 죽게 한 20대…2심도 징역 4년

법원 "아버지 퇴원하자마자 범행 결심…비난 가능성 높아"
'양형 부당' 피고인 항소 기각

대구고법 전경. 매일신문 DB
대구고법 전경. 매일신문 DB

병원비가 없어 중병에 걸린 아버지를 퇴원시킨 뒤 약과 음식을 제대로 주지 않는 등 굶겨 숨지게 한 20대 아들에게 법원이 2심에서도 징역형의 실형을 선고했다.

대구고법 제2형사부(부장판사 양영희)는 10일 존속살해 혐의로 기소된 A(22) 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피고인의 항소를 기각했다고 밝혔다.

대구지법은 지난 8월 A씨에 대해 징역 4년을 선고했고, 양형 부당 등을 이유로 피고인이 항소를 제기했다.

외동아들인 A씨는 약 10년 전부터 아버지 B(56) 씨와 단둘이 살았다.

그러던 지난해 9월 B씨는 심부뇌내출혈 및 지주막하출혈 증세로 입원 치료를 받았고, 이듬해 4월 23일 병원비 부담 등으로 퇴원을 결정했다.

퇴원 당시 B씨는 팔다리 마비 증상으로 혼자서는 거동을 할 수 없던 상태였고, 코에 호스를 삽입하는 '경관 급식' 방식으로만 음식 섭취가 가능했다.

A씨는 아버지가 퇴원한 다음 날인 지난 4월 24일 "아무런 기약 없이 2시간 간격으로 아버지를 돌보며 살기는 어렵고, 경제적으로도 힘드니 아버지를 사망하도록 내버려 두어야겠다"고 생각하며 B씨를 살해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이에 A씨는 같은 달 24일부터 30일까지 하루 3개를 섭취해야 하는 치료식을 10개만 제공했고, 지난 5월 1일부터 8일까지는 치료식과 물, 약을 모두 주지 않고 아버지의 방에 들어가지도 않은 채 방치해 숨지게 했다.

방에 홀로 있던 B씨는 아들에게 "아들, 아들아"라며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지만, A씨는 이를 모른척 한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1, 2심 재판에서 "살인의 고의는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은 ▷B씨가 퇴원하기 전 A씨의 삼촌이 그에게 생계지원, 장애지원을 받으라며 관련 절차를 알려줬지만, A씨가 주민센터를 방문하는 등 지원을 받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점 ▷퇴원할 때 병원에서 받아 온 처방약을 아버지에게 한차례도 투약하지 않은 점 등을 볼 때 아버지를 죽게 할 마음을 먹고 의도적으로 방치했다고 인정했다.

또 A씨가 경찰 조사에서는 "아버지가 '물, 밥을 주지 말고 그냥 도망가라'고 말해서 시키는 대로 했다"고 주장했지만, 검찰 수사에서는 "존속살해죄로 처벌받는 것이 두려워 사실대로 진술하지 않았다"며 진술을 바꾼 점도 살의의 고의를 인정한 근거로 봤다.

재판부는 "홀로 거동이 불편해 전적으로 A씨의 도움을 필요로 한 아버지를 방치해 살인한 것으로 그 패륜성에 비춰 비난 가능성이 매우 큰 점, 아버지가 입원해 있는 동안에는 A씨가 직접 간병한 적이 없었는데 퇴원 후 직접 간병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자마자 범행을 계획한 점 등은 불리한 정상이다"며 "다만 피고인이 어린 나이로 아무런 경제적 능력이 없는 상황에서 건강을 회복할 가능성이 없는 아버지를 기약 없이 간병해야 하는 부담을 떠안게 되자 미숙한 판단으로 범행을 결심한 것으로 보이는 점, 피고인이 초범인 점 등의 유리한 정상을 종합했다"고 밝혔다.

이어 "존속살해죄의 법정형은 사형, 무기징역, 7년 이상의 유기징역으로서 법률적 감경 사유가 없는 한 법원이 선고할 수 있는 가장 낮은 형은 징역 3년 6개월이다"며 "징역 3년을 초과하는 형에 대해서는 집행유예가 허용되지 않는 점을 더해 보면 원심의 형은 너무 무거워서 부당하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한편, 이번 사건은 어린 나이에 부모나 조부모를 부양해야 하는 부담을 떠안은 '영 케어러'(Young Carer)의 '간병 살인'으로 불리며 주목을 받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자신의 SNS에 "묵묵히 현실을 열심히 살았을 청년에게 주어지지 않은 자립의 기회, '자기든 아버지든 둘 중 한 명은 죽어야만 끝나는' 간병의 문제에 대해 실질적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언급했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는 "한 청년의 삶을 통째로 내던져도 감당하기 어려웠을 비극 앞에서 우리 공동체는 왜 그를 돕지 못했나"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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