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이상 세대에게 개 식용은 비난받을 일로 여겨지지 않는다. 다수는 우리나라 음식 문화의 하나로 담담히 받아들이고 있다. 이들 세대는 어릴 때 마을이나 집에서 개 도축을 지켜보면서 눈물 지었고, 어른이 되면서 개고기에 맛을 들이는 현시점에서 보면 매우 이중적인 태도를 보였다. 보신탕과 관련한 이야기 한두 가지는 추억으로 삼고 있다.
기자 초년 시절인 1990년대 초만 해도 개고기를 원료로 하는 보신탕을 즐겨 먹는 이들이 많았다. 회사 간부들과 취재원들이 보신탕집에서 점심 약속을 잡기 일쑤였다. 다른 걸 먹어도 되지만, 여러 번 함께 하다 보니 보신탕을 먹게 됐다. 이후 '찾아서 먹지는 않아도 자리가 되면 먹는다'는 식으로 보신탕집을 외면하지 않았다. 동물보호단체 관계자나 애견인들이 비난하겠지만 맛으로만 따지면 개고기는 소고기 이상으로 입에 맞았다.
중국 조선족자치주인 지린성 일대를 몇 차례 취재·여행하면서 경험한 개 식용은 현재까지 진행형이다. 2001년 취재차 들린 지린성 옌볜시의 한 보신탕집에서 특별식으로 나온 권총(개 생식기) 행렬은 끔찍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지린성 일대를 여행할 때도 계곡에서 마을 사람들이 개를 잡아 굽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최근 정치권의 개 식용 금지 논란을 접하면서, 언제 보신탕집을 갔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몸담은 신문사 앞에 자리 잡고 위세를 떨치던 보신탕집은 오래전 어디로 가고 없다. 집 부근에 있던 동네 보신탕집도 자취를 감췄다. 점심때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보신탕을 즐기던 어른들은 세상을 등지고 있다. 보신탕집을 찾는 동년배들은 이제 주위에 거의 없다.
개 식용 금지는 지난 9월 27일 애견인으로 알려진 문재인 대통령이 언급하면서 정치권의 이슈로 떠올랐다. 이전에도 여러 차례 제기된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이다. 동물보호단체들이 문 대통령의 발언을 일제히 반겼고 여야 대선 주자들도 각자 의견을 내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는 이 문제를 놓고 한바탕 논쟁을 벌였다. 이 후보는 지난 1일 '식용 개는 따로 키우지 않나'라고 말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향해 페이스북을 통해 "날 때부터 식용인 개는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식용인 개는 없다. 죽기 위해 태어난 생명, 식용 개를 인정하는 것은 비극적인 일이다"며 "국내 반려 인구가 1천500만 명을 넘어섰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윤 후보의 발언에 상처받았을 국민에게 윤 후보는 사과하길 바란다"고 했다.
윤 후보는 지난달 31일 국민의힘 대선 경선 합동토론회에서 개 식용 금지 문제와 관련해 "저는 개인적으로는 (개 식용에) 반대한다. 하지만 국가 시책으로 하는 데 대해선 많은 분의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하지 않겠나"라고 했다.
이런 논란 속에 김부겸 국무총리는 지난 8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정책질의에서 '개 식용 금지에 대한 정부 입장은 무엇인가'를 묻는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국민 여론에 비추어봐도 개 식용 금지를 추진할 때가 됐다"고 밝혔다.
김 총리는 "지난번에 대통령께서도 내각에서 이 문제(개 식용 금지)를 검토하란 지시가 있으셨고, 이 문제에 관한 여론을 모을 필요가 있어 그 내용을 국민과 여론에 알렸더니 몇 차례 여론조사가 이뤄졌다"며 "국민도 개 식용을 하지 않는 게 맞다는 의견이 훨씬 많이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여론조사기관 알앤써치가 문 대통령 지시 직후인 9월 29, 30일 이틀간 전국 만 18세 이상 1천132명을 대상으로 개 식용 전면 금지에 대한 찬반을 물은 결과, '찬성한다'는 36.3%, '반대한다'는 27.5%였다. '잘 모르겠다'는 응답은 36.1%였다.
그러나 개 식용 금지에 대한 입법화에는 정부와 국민 모두 신중한 편이다. 김 총리는 "이를 법제화하는 데에는 국민이 개인 선택 문제라고 생각해 거부감이 상당하다"고 했다. 여론조사에서도 개 식용을 법으로 금지하는 것에 대해선 반대 의견이 찬성보다 높다.
리얼미터가 지난 2일 전국 만 18세 이상 500명을 대상으로 '개고기 식용을 법으로 금지하는 것에 대해 찬성하냐 반대하냐'고 물은 결과 응답자의 48.9%는 '반대한다'고 답했다. '찬성한다'는 38.6%, '잘 모르겠다'는 12.6%였다. 남성은 개 식용 금지 입법화 반대가 57.1%로 찬성(36.1%)보다 높았고, 여성은 찬성과 반대가 각각 40.9%로 팽팽했다.
개 식용 금지 문제는 해묵은 논란거리로 정부 내에서도 아직 구체적 움직임은 없다. 지난달 18일 동물권 보호단체 '카라'는 기자회견을 통해 "개 식용 산업의 공범이라고 할 수 있는 농림축산식품부, 식품의약품안전처, 환경부는 여전히 이 문제를 외면하고 있다"며 정부와 국회가 조속히 후속 조치를 하라고 촉구했다.
문 대통령의 발언에도 개 식용 금지 법안은 조속히 마련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이를 법제화하겠다고 나설 주무 부처가 없을 뿐만 아니라 국회에서도 개 식용 금지를 위한 동물보호법 개정안이 계류된 상태다. 개나 고양이를 도살·처리해 식용으로 사용하거나 판매하는 것을 금지하고, 이를 위반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한 것이 골자다. 지금은 명시적인 식용 금지 규정이 없다. 이 개정안은 올해 2월 소관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 상정된 이후 별 진전이 없다.
보신탕에 대한 기자 세대의 관심이 끊어지는 실정에 비춰보면 개 식용은 머지않아 자연스럽게 없어질 전망이다. 논란 속에 관련 절차를 밟아 국민 의견을 모으는 데 걸리는 시간을 고려하면 자연적 소멸을 기다리는 게 더 나아 보인다. 대선을 앞두고 이 문제를 정치 논쟁으로 삼을 이유도 없다. 개 식용 금지에 찬성하거나 반대한다는 이유만으로 대통령을 뽑을 국민은 거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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