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광장] 오징어게임과 호모루덴스

김경호 신나는체험학교 대표

김경호 신나는체험학교 대표
김경호 신나는체험학교 대표

영화화된 오징어게임이 유행이다. 오징어게임은 예전의 '가생'으로 불린 놀이들 일부다. '팔자' '사다리' '십자' 가생이 그것이다.

오징어게임의 가장 일반적인 옛말이 '오징어 가이상'이다. 땅에 놀이판을 그려 놓고 겨루는 놀이로 '가이상' '가생'이란 말이 붙었다. 가생은 일본말 '가이상'(かいせん)에서 나왔는데 싸움이 시작되었다는 '개전'(開戰)을 뜻한다. 군국주의 용어가 그대로 1980년대까지 통용되고 아이들은 매일같이 국적 불명의 '가생'을 즐겨 놀았다.

충북 연기황토박물관 임영수 관장은 초등학교에 소개된 놀이 250여 개 중 90%가 일제의 잔재라 했고, 실제 일본의 정신을 전파하기 위한 노래 혹은 놀이로 규정했다. 실례로 어릴 때 즐겨 놀았던 '우리 집에 왜 왔니' 놀이는 일본 '에도시대'에 딸들을 사고팔던 일본 전설에 기초한 '하나이찌몬메' 노래와 같다. 그 외 일본의 영향을 받은 전래 놀이나 노래로는 '여우야 여우야 뭐 하니' '쎄쎄쎄' '고무줄 놀이'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등이 있다.

놀이라는 것이 자생성을 띠는 것도 있지만, 외국의 문화와 결합하기도 해 일본이나 중국, 혹은 외국의 놀이들이 서로 영향을 미치고 섞이는 건 당연하다. 일본 놀이를 도외시하기보다 그 의도와 의미를 알고 노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이다.

놀이의 국적이야 어찌 되었건, 전래 놀이를 갈래별로 나누면 ▷공정한 시합과 협동적인 경쟁을 유도하는 '겨루기 놀이'로 달팽이, 안경놀이, 비석치기, 사방치기가 있다. 사방치기 안에 오징어, 동서남북, 이랑타기, ㄹ자 놀이가 있다 ▷질서, 규칙, 협동심을 통한 친밀감과 신명을 북돋워주는 '공동체 대동놀이'로는 강강술래와 단심줄놀이(길쌈을 하며 담소와 가무를 즐기는 놀이로 여러 색의 줄로 땋고 풀고 하는 놀이) 등이 있는데 모두가 하나 되는 단합의 의미가 있다 ▷한국 놀이의 긍지와 자부심이 담긴 윷놀이와 고누놀이 등도 있다 ▷신체놀이를 통해 순발력과 민첩성, 배려심 등을 키워주는 '잡기놀이'로는 짝꿍술래잡기, 황새뱁새, 꼬리잡기, 소외양간, 얼음땡 등이 있다 ▷도구를 직접 만들어 성취감을 높여주는 놀이로는 딱지, 제기, 실팽이, 죽방울 등이 있다 ▷자연에서 아무런 재료가 없어도 놀 수 있는 놀이로는 산가지놀이, 공기놀이 등이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공부에 밀리거나 디지털 문명에 의해 아날로그식 전래 놀이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4차 산업혁명과 같은 고도화된 디지털 문명에서 인간의 역할은 '잘 노는' 것이다. 미래에 로봇이나 AI가 노동집약적 산업에서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면, 사람은 창의적인 일에 종사하고 노동시간이 줄어든다. 그 줄어든 노동시간은 바로 사람만의 특권인 놀이와 취미로 대신한다. 21세기를 놀이의 시대인 '호모루덴스'(Homo Ludens) 즉, '놀이하는 인간'의 시대라고 말하는 근거이다.

코리아의 '호모루덴스'가 한류라는 이름으로 지구촌을 열광케 하는 것은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다. 오징어 게임이 성공한 여러 이유 중 하나는 놀이의 초월성 때문이다. 놀이는 남녀노소, 정치, 사상, 종교, 이념과 인종, 언어, 국가를 초월한다. 오징어게임에 전 세계가 열광하는 이유이다.

놀이의 의미와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특히 우리 고유의 '전래 놀이'를 전문으로 하는 민간단체나 테마공원 등과 같은 '잘 노는' 놀이터의 확대와 학교에서 전래 놀이 시간이 보장되는 제도가 필요하다. 사람은 놀이를 통해 집중하게 되고 창의성은 오롯이 집중할 때 발현된다는 이론에 근거해서 '잘 노는' 일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전래 놀이는 과거로부터 온 미래의 블루오션이며 트렌드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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