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年 3억 든 ‘이동노동자 쉼터’…이용 대상자는 "그림의 떡"

특수 노동자 환경 개선 목적…대구시, 범어·장기동 2곳 운영
낮은 접근성·바쁜 스케줄 탓 이용 대상자들 반응 시큰둥
市 “접근성 충분히 고려했고, 앞으로 미비한 점은 개선할 것”

지난 9일 오후 6시쯤 이동노동자 수성 쉼터에는 관리인 외에 아무도 없었다. 임재환 기자
지난 9일 오후 6시쯤 이동노동자 수성 쉼터에는 관리인 외에 아무도 없었다. 임재환 기자

이동노동자의 노동환경 개선을 목적으로 문을 연 '쉼터'가 이용자들에게 외면받고 있다. 쉼터가 두 곳에 그쳐 접근성이 떨어지고, 시간에 급급한 이동노동자들이 이용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쉼터 운영에 연간 수억원이 소요되는 것을 두고 예산낭비라는 지적까지 나온다.

이동노동자란 직무 특성상 업무장소가 고정되어 있지 않고 이동을 통해 이루어지는 노무 종사자를 말한다. 예를 들면 ▷대리운전 기사 ▷학습지 교사 ▷택배 및 배달 기사 등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이들 대부분 특수고용 노동자이며, 노동관계법상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해 사회안전망 사각지대에 해당된다.

대구에서는 지난 2019년부터 이동노동자들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쉼터의 필요성이 제기됐고, 올해 3월 김성태 대구시의원(달서3·더불어민주당)이 '대구시 이동노동자 권익 보호를 위한 지원 조례안'을 발의했다. 이에 대구시는 달구벌대로의 수성구 범어동과 달서구 장기동 두 곳에 쉼터를 조성, 지난 5일부터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이용대상자들의 반응은 미온적이기만 하다. 쉼터가 두 곳에 불과한 데다 고정된 장소인 탓에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다. 실제로 지난 9일 오후 6시쯤 수성 쉼터에는 관리인 외에 아무도 없었다.

대리운전 기사 A(56) 씨는 "기사들은 대구 전 지역을 돌아다니는데 달구벌대로에 있는 쉼터들을 얼마나 자주 이용하겠나. 콜 도착지가 변두리인 경우도 많은데, 쉼터를 가기 위해 택시비를 내는 기사도 없을 것 같다. 차라리 인근 편의점에서 쉬는 게 경제적"이라고 말했다.

시간에 급급한 퀵과 택배 등 배달업 종사자들은 이용할 여유가 없다고 입을 모았다.

택배기사 B(49) 씨는 "고객들로부터 '배송 못 받았다', '언제 오는지 알려달라' 등 연락이 쇄도하는데, 여유 갖고 쉼터를 방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하루 정해진 배송 물량이 있는 건 아니지만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일하는 게 택배업의 실상이다. 쉼터는 그저 그림에 떡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자 쉼터 조성을 두고 예산 낭비라는 지적이 나온다. 대구시에 따르면 약 159㎡(48평)의 수성 쉼터와 약 193㎡(58평) 달서 쉼터의 임차료와 인건비 등 쉼터 두 곳의 연간 유지비는 약 3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개소된 쉼터들이 당초 취지와는 거리가 멀다는 일침도 잇따랐다. 이진련 대구시의원(비례대표·더불어민주당)은 "처음엔 접근성을 고려해 카페와 편의점 등 시설과 업무협약을 맺어 쉼터 거점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현재 쉼터는 두 곳에 그쳤고, 이용하려는 노동자들은 많지 않다. 쉼터를 조성할 때 실효성 측면에서 더 고민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구시 관계자는 "카페나 편의점 등 민간영역과 업무협약으로 쉼터를 조성하면 민원이 발생할 소지가 크다. 연간 유지비가 많이 나오는 이유는 접근성이 높다고 판단한 달구벌대로 인근에 쉼터를 조성했기 때문"이라며 "이동노동자들의 업종마다 특성이 있어 전부를 만족시키기는 힘들지만, 운영을 통해 부족한 점들은 보완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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