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포항 촉발지진 4년] 흥해읍 주민들 아픔 극복

"피해 주민 내남없이 위로, 힘냈다"
지진 진앙지 충격에서 서서히 치유해 나가는 상처
‘불안한 마음 봉사로 극복해’ 따뜻한 이웃의 정이 가장 큰 치료제

최근 수리불가 판정을 받은 포항시 북구 흥해읍 한미장관맨션. 사람의 접근을 막는 시설물들과 안정망이 위태롭게 보인다. 포항시 제공
최근 수리불가 판정을 받은 포항시 북구 흥해읍 한미장관맨션. 사람의 접근을 막는 시설물들과 안정망이 위태롭게 보인다. 포항시 제공

12일 낮 12시쯤. 포항시 북구 흥해읍 흥해실내체육관의 썰렁한 분위기가 어색하게 느껴졌다.

인기척은 커녕 입구 문은 굳게 잠겼고 '내부 수리로 인한 일시 사용금지'라는 현수막만 떡하니 붙어 있었다.

지난달만해도 체육관에서는 지진으로 집이 무너진 이재민들의 한숨과 공무원·자원봉사자들의 움직임으로 분주했다.

2017년 11월 15일 포항지진이 발생한 이후 체육관이 이재민 구호소로 운영되면서 일상화된 모습이었다.

이러한 까닭에 흥해실내체육관은 '포항지진의 상징물'과도 같은 존재가 되버렸다.

12일 오후 포항지진 이재민 구호소로 사용되던 포항시 북구 흥해읍 흥해실내체육관 입구가 굳게 잠겨 있다. 배형욱 기자
12일 오후 포항지진 이재민 구호소로 사용되던 포항시 북구 흥해읍 흥해실내체육관 입구가 굳게 잠겨 있다. 배형욱 기자

체육관은 지난달 19일까지 이재민들을 위해 쓰였다. 집에 가는 것이 무서워 체육관 텐트를 떠나지 못했던 한미장관맨션 주민들 때문이다.

정부는 뼈대마저 기울었던 한미장관맨션을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소파'(작은 파손)로 구분했다.

이후 수차례의 심의 끝에 '전파'(전부 파손)에 준하는 수리불가 판정이 내려지며 한미장관맨션 주민들은 체육관 생활 1천435일 만에 이재민 주거지원시설로 몸을 옮겼다.

체육관 역시 지진으로 인해 누수 등 크고 작은 몸살을 겪었기에 안전진단 및 시설개선을 거쳐 주민여가시설이란 본래 용도로 돌아갈 예정이다.

체육관을 관리하는 포항시시설관리공단 관계자는 "상황이 금방 끝날 것 같진 않았지만 이재민들이 떠나기까지 4년이나 걸릴 줄은 몰랐다. 마지막에 좋은 결과를 갖고 떠나는 모습을 보게 돼 다행이다"고 말했다.

포항지진이 발생한 이후 4년 간 이재민 텐트로 가득했던 포항시 북구 흥해실내체육관이 12일 오후 텅 비어 있다. 배형욱 기자
포항지진이 발생한 이후 4년 간 이재민 텐트로 가득했던 포항시 북구 흥해실내체육관이 12일 오후 텅 비어 있다. 배형욱 기자

규모 5.4의 지진이 휩쓸고 간 포항시 북구 흥해읍은 지금도 여기저기 그날의 상흔이 남아 있다.

당시 지진의 진앙지가 바로 포항시 북구 흥해읍 남송리이다. 고작 지표에서 7㎞ 떨어진 곳에서 발생한 지진은 다음달인 12월 25일까지 무려 70여회의 여진을 동반했다.

이날 큰 피해를 보인 곳이 흥해읍 대성아파트. 눈에 띄게 기울어져 '피사의 탑'이라 불렸을 정도로 위험했기에 지난해 5월부터 12월까지 6개동이 즉시 철거됐다.

고작 1년도 안 돼 이곳은 어린아이 키만큼의 잡초가 자라난 빈 공터로 남았다. 철거된 아파트 대신 포항시북구보건소와 트라우마센터 등의 주민지원시설이 들어설 계획이다.

포항 지진 당시 크게 기울어져
포항 지진 당시 크게 기울어져 '피사의 탑'이라고까지 불렸던 흥해읍 대성아파트가 있던 자리는 현재 모든 건물이 철거돼 잡초가 무성한 공터로 변했다. 신동우 기자

서서히 제 자리를 찾아가는 건물들처럼 주민들이 마음 역시 그날의 상처를 조금씩 씻어내는 모양새다.

정부의 지원과 여러 봉사자들의 도움이 컸지만 무엇보다 피해 주민들이 서로 상처를 맞댄 것이 가장 큰 위안이 됐다.

지진 초기 전국에서 모여들었던 봉사자들이 서서히 빠지고 체육관의 이재민들과 지진피해 주택 지원에 마지막까지 남은 것은 다름 아닌 동네 주민들이었다.

이들 역시 자신의 집이 피해를 보고 친지들의 신세를 지면서도 체육관 청소와 동네 정비 등의 굳은 일을 자처했다.

흥해읍자원봉사거점센터의 회원인 김순금(69) 씨는 "우리 집도 지진으로 부서져 항상 가슴이 뛰고 불안증상이 생겼다. 도저히 집에 있기 싫어 할 일을 찾다보니 봉사까지 하게 됐다"면서 "혼자 있다 보면 그날의 생각이 나서 하염없이 눈물이 난다. 이렇게 다른 주민들과 상처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몸을 움직이는 것이 겨우 살아갈 힘을 준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현재 흥해읍은 지진특별특별재생사업지구로 지정돼 2023년까지 각종 지원사업이 진행 중이다. 주민들의 주거안정과 희망을 주기 위한 해당 사업에는 2천200여억원의 예산이 투입될 계획이다.

장종용 흥해읍장은 "아예 지진이 없던 시절로 돌아갈 수야 없겠지만, 서로가 서로의 버팀목이 돼주는 주민들에게서 희망을 본다"며 "이제 흥해읍이 지진의 그늘에서 벗어나 포항의 새로운 성장의 상징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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