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도조 히데키와 문재인

정경훈 논설위원
정경훈 논설위원

아시아인들에게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안긴 태평양전쟁 A급 전범 도조 히데키(東條英機)의 별명은 '가미소리'(剃刀·면도날)였다. 업무 처리가 신속하고 빈틈이 없었기 때문이다. 공(公)과 사(私)의 구분도 마찬가지였다.

이를 잘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그는 1938년 만주 주둔 관동군 참모장에서 육군 차관으로 승진하면서 참모장 재임 중 기밀비 사용 내역을 빠짐없이 기록한 정산서를 제출하고 잔금을 1엔 단위까지 계산해서 반환했다. 전례 없는 일이었다. 기밀비는 사용처를 밝히지 않는 것이 관례였다.

사용처도 공무(公務)로 엄격히 국한했다. 그는 관동군에서 6천만 엔, 육군성에서 2천만 엔 등 모두 8천만 엔의 막대한 기밀비를 받았지만 이임 때까지 거의 손대지 않았다. 그나마 사용한 기밀비도 일제가 세운 괴뢰국인 만주국 내 친(親)관동군 인맥을 만들거나 중국인 정보 제공자에게 건넨 것 정도였다.

관동군 참모장 중에는 어용 언론인이나 일본의 대륙 침략 첨병 역할을 한 '대륙낭인'(大陸浪人)에게 기밀비를 마구 뿌려 '사병화'(私兵化)하는 방법으로 권력을 강화했던 자도 있었지만 도조는 그런 일에는 돈을 거의 쓰지 않았다고 한다. 도조의 이런 처신을 두고 일본의 논픽션 저널리스트 호사카 마사야스(保阪正彦)는 "도조의 편에서 한마디 하자면 그는 금전 문제에는 깨끗했다"고 평가했다.('도조 히데키와 천황의 시대')

문재인 대통령의 딸 다혜 씨가 아들과 함께 청와대 대통령 관저에서 1년 가까이 거주하고 있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몰염치하다'는 비판이 고조되고 있다. 문 대통령도 이런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유를 불문하고 딸의 청와대 거주를 허용하지 말았어야 했다. 딸이 그렇게 해달라고 애걸해도 단호히 뿌리쳤어야 했다. 그게 공직의 최정점에 있는 대통령이 취해야 할 자세다. 문 대통령은 그렇게 하지 않고 1년 가까이 국민 몰래 청와대에서 딸을 데리고 살고 있다. 그 딸에 그 아버지, 그 아버지에 그 딸이다. 공사 구분만큼은 도조 히데키에게서 배우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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