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와 커피 한잔] 김운찬 교수 "700년 전 단테도 말했다, 현실은 지옥이야"

김운찬 대구가톨릭대 프란치스코칼리지 교수, 3월 단테 서거 700주년 맞아 재번역본 출간
"신곡에서의 지옥은 예나 지금이나 우리네 삶 반영"
"신곡 등 고전 통해 자신의 삶 되돌아보고 방향 찾을 수 있어"
이탈리아 볼로냐대학 유학서 움베르코 에코 교수 사사

지난 3월 단테 신곡 재번역본을 낸 김운찬 대구가톨릭대 프란치스코칼리지 교수. 대구가톨릭대 제공
지난 3월 단테 신곡 재번역본을 낸 김운찬 대구가톨릭대 프란치스코칼리지 교수. 대구가톨릭대 제공

김운찬 대구가톨릭대 프란치스코칼리지 교수가 자신이 번역한 신곡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대구가톨릭대 제공
김운찬 대구가톨릭대 프란치스코칼리지 교수가 자신이 번역한 신곡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대구가톨릭대 제공

"여기가 더 지옥이야." 세계적으로 팬덤까지 만든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에 나오는 이 대사는 700년 전 이탈리아에서도 유효했던 모양이다. 당시 탄생한 '신곡'에 비춰진 지옥에 대해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큰 관심을 갖는다.

김운찬(64) 대구가톨릭대 프란치스코칼리지 교수는 "단테가 신곡을 통해 보여준 지옥은 우리네 현실의 삶과 닮아있으면서 그런 삶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오징어게임에 나온 대사와 같은 맥락이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저승의 영혼이 바라보는 것은 이승의 현실 모습이며 영혼을 통해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것이 신곡의 매력"이라고 했다.

신곡은 셰익스피어, 괴테와 함께 유럽 문학의 거장으로 꼽히는 이탈리아의 위대한 시인 '단테 알리기에리'의 대표작으로 저승 여행 이야기를 풀어 놓은 장편 서사시다. 작가이자 주인공인 단테가 살아 있는 몸으로 일주일간 지옥과 연옥, 천국 등 저승의 세 곳을 여행하면서 보고 들은 것을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구성돼 있다.

김 교수는 단테 신곡을 이야기할 때 꼭 거론되는 인물이다. 국내에서 신곡 등 이탈리아 문학 번역에 있어서는 단연 으뜸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지난 3월 단테 서거 700주년을 맞아 '신곡' 개역판을 내놓았다. 김 교수는 2007년 신곡 첫 번역본을 출간했지만, 내용 중 일부 마음에 들지 않은 표현이나 부족한 부분을 수정해 재번역본을 낸 것이다.

과거 효성여대(현 대구가톨릭대) 시절 이탈리아학과 교수였던 그는 이탈리아 문학을 깊이 있게 공부해보고 싶어 3년간 이탈리아로 유학을 갔다. 그가 현지에서 입학한 대학이 유럽 최초의 대학인 볼로냐대학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세계적인 기호학자인 '움베르코 에코' 교수를 사사(師事)했다. 김 교수는 "2016년에 돌아가신 에코 교수는 생전에 유머러스하면서도 애연가였다"고 기억했다. 그 인연으로 에코 교수의 저서를 포함해 지금까지 50여 권의 이탈리아 저서를 번역했다.

특히 김 교수는 신곡에 대해 애착을 많이 가지고 있다. "신곡은 보편성인 것 같아요.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 상관없이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죠. 단테가 당시 이탈리아 내 극심한 정치 갈등으로 인해 고통스런 망명 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어려운 삶을 극복해나가고 희망을 찾고자 하는 의지가 신곡 곳곳에 녹아져 있습니다. 결국 신곡은 '저승여행'이며 죽음 이후 세계를 보면서 우리 삶을 되비쳐보게 하는 것이죠."

강연을 많이 다니다 보면 신곡에 매료된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고 전했다. 그것은 신곡을 읽을 때마다 새로운 의미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단테 또한 자기 작품을 읽을 때 문자 그대로의 의미보다 상징적이고 비유적인 다양한 의미로 읽어달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첫 구절에 어두운 숲속 이야기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죄의 구렁텅이에 빠져 있었다', '햇살이 비춘 언덕으로 가려고 했는데 3가지 짐승이 나타나 못 가게 했다' 등의 표현이 나옵니다. 이 짐승들은 탐욕, 허용, 오만함 등을 상징하죠. 이처럼 중첩된 의미가 신곡 여러 부분에서 나와요. 워낙 상징적이고 비유적인 표현이 많다보니 이해하기 어렵다는 독자가 많죠. 이럴 때는 이해가 어려운 부분은 건너뛰면서 읽으면 됩니다. 인내심을 갖고 여러차례 읽다보면 읽을 때마다 새롭게 느껴질 겁니다."

최근 신곡같은 고전 인문학이 각광받는 것에 대해 김 교수는 "살기가 각박해졌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한 상황에서 삶을 윤택하게 하는 길이 '고전 읽기'라는 것이다. 고전이 고달픈 현실 속에서 삶의 방향성을 찾아주는 밑거름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김운찬 교수가 재번역한 단테의
김운찬 교수가 재번역한 단테의 '신곡' 표지.

"인문학적 소양은 무척 중요합니다. 훌륭한 고전 작품들은 우리에게 어떻게 살 것이며 어떻게 죽을 것인지, 심지어 죽는 방법까지 가르쳐 줍니다. 그것이 이 시대 고전이 전하는 메시지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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