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교사 A씨는 올해 초 학부모로부터 아동학대 신고를 당해 담임 자리를 내려놓았다. 수업이 시작됐는데도 한 학생이 복도에서 계속 벽을 치고 있었다. 교실 안으로 들어가라고 학생의 팔을 민 것이 아동학대로 신고됐다. 다행히 아동학대로 인정되지 않았지만 학부모가 학교 측에 요구한 대로 담임 교체를 당했다. A씨는 정신적 트라우마(상처)를 얻었다.
학부모에 의한 교권침해가 늘고 있지만 실태 파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대처 수단도 마땅찮아 학교 현장에서 피해를 호소하는 목소리가 높다.
◆늘어나는 학부모의 교권침해…커지는 교사 스트레스
14일 대구시 교육위원회에 따르면 2019년과 2020년에 확인된 학부모에 의한 교권침해 사례는 9건인데 비해 올해는 1학기에만 12건이 보고됐다. 교권침해 중 학부모에 의한 사례 비중도 2019년과 2020년 전체 232건 중 3.9%(9건)에서 올해는 14.4%로 커졌다.
최근 대구 교육권보호센터(이하 센터)를 찾는 교사도 늘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센터에 따르면 올해 9월 30일까지 이뤄진 교사의 심리 상담 횟수는 603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3년 전 203건과 비교해 3배에 이르는 수치다. 특히 해마다 증가 추세다. 2018년 203건에서 2019년 375건으로 늘었고, 코로나19를 겪은 지난해에도 549건을 기록했다.
현장 관계자들은 경미한 사안에도 학부모가 교사를 아동학대로 신고하는 등 교육활동에 개입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힘을 모았다. 교사들이 분쟁에 휘말리는 일이 늘었고, 이로 인한 스트레스로 심리 상담을 원하는 교사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센터 관계자는 "예전에도 일부 예민한 학부모들이 존재하긴 했으나 요즘은 코로나19로 인한 스트레스와 아동학대에 대한 경각심도 늘면서 그 예민함의 정도가 훨씬 강해진 것 같다"며 "또한 원래 가정이 해왔던 '돌봄' 역할이 학교로 점점 넘어오면서 교사가 책임질 일도 늘고 그만큼 학부모가 교사에게 기대하고 요구하는 바도 커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고 했다.
◆아동학대 무혐의 받아도 상처뿐
아동학대 신고가 아동보호전문기관을 거치지 않고 경찰로 넘어가는 경우엔 학교나 센터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 교사가 무혐의 처분을 받고 학부모를 무고죄로 고소해도 아동학대 정황 자체가 사실이라면 무고죄로 인정되기 힘들다. 수사 과정에서 받은 정신적 스트레스와 업무 상 겪은 불이익 등에 대한 보상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교직에 몸담은 지 20년이 넘은 초등학교 교사 B씨는 "극도로 예민한 학부모 비율이 점점 늘어나는 것 같다"며 "자신의 자녀에 대해 좋은 평가만 듣길 바라고 조금이라도 안 좋은 평가는 받아들이지 못하는 학부모가 많아졌다"고 했다.
특히 "2년이 지난 생활통지표에 일부 부정적인 평가가 포함된 걸 본 뒤 정서적 아동학대로 학부모가 당시 담임교사를 신고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전했다.
교사 중 결국 무혐의 처분을 받는 경우가 많지만 담임 지위를 유지하면서 무혐의를 받아내는 과정이 정신적으로 힘들기 때문에 담임 자리를 자진해서 내려놓는 경우가 적지 않다.

◆미흡한 학교장 역할과 실태 파악…제도 개선 필요
학부모와 교사 간 분쟁이 일어났을 때 학교장의 중재 역할이 미흡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교원지위법에는 교육활동 침해를 안 즉시 학교장이 보호조치를 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으나 현장에선 제대로 지켜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30년 넘게 교사 생활을 한 중학교 교사 C씨는 "대부분 학교장은 몸보신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학부모에게 기본적으로 저자세"라며 "교사가 교육활동에 대해 학부모로부터 부당한 간섭을 받아도 학교장은 학부모 편을 들어 일을 적당히 무마하려고 한다. 학부모가 담임 교체를 요구하면 합당한지 따지지 않고 요구를 받아들이는 사례도 많다"고 했다.
학부모로부터 아동학대 신고를 당해 담임포기서를 작성할 때도 양식이 학교마다 달라 담임 교체 사유 파악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현재 담임포기서는 각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양식을 만들어 쓰고 있다.
한 초등학교 교사는 "우리 학교 담임포기서의 경우 포기 사유 항목을 체크하는 게 아니라 자유롭게 쓰도록 돼있어 학부모에게 담임 교체 요구를 받은 경우에도 그냥 얼버무리려고 '건강상의 이유'로 적어내는 교사가 많다"고 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대구지부에서는 "교권침해를 했다고 인정되는 학생에겐 교권보호위원회를 통해 교내 봉사부터 퇴학까지 징계를 내릴 수 있으나 학부모에 의한 교권침해에 대한 조치는 마땅찮아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교권 침해와 담임 포기에 대한 구체적인 사유를 파악해 교육정책을 효과적으로 수립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며 "충남교육청처럼 교권조례를 만들어 관리자, 교사, 학생, 학부모가 지켜야 할 일을 명시하는 등 구체적인 매뉴얼을 마련하고 학부모 교육의 일환으로 '교권침해예방교육'을 실시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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